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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어렵단 남편의 말, "내가 가부장제의 산물인데 어쩌라고!"

조회수 2019. 5. 6.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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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의 기적, 이제야 아빠가 됐다.

*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을 펴낸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

출처: ⓒtvN ‘미생’ 캡처

남편의 퇴사 계획의 시작은 우리 가족의 해외 살이가 목적이지만, 나의 개인적인 목적은 혼자만의 가사, 돌봄 노동을 그만두고 가정 내 노동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함이 가장 컸다. 


나는 맞벌이였지만, 대부분의 가사와 육아는 나만의 몫이었다. 가부장제도 안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남편은 당연하게 내게 떠넘겼고, 창업해 시간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일은 내가 하게 됐다. 


나의 불만 제기로 해결방법을 같이 고민하려 해도 남편의 근무시간과 근무지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 방안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가는 내게, 남편의 시간과 노동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 사회가 우리 가정에 남편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남편이 자발적으로 가정 안으로 들어오고자 발버둥 치지 않는다면, 내게 남은 마지막 돌파구는 남편의 퇴사뿐이었다.   

맞벌이일 때는 혼자, 남편 퇴사 후엔 반반

출처: ⓒKBS ‘고백부부’ 캡처

남편 퇴사 3일 후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부싸움을 했다. 아이의 등하원 담당을 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1주일에 등원을 2번, 하원을 1번 맡겠다고 하니 남편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화를 낸 것이 원인이었다. 남편은 등하원 담당을 반반 나눠 하기를 원했다. 맞벌이하면서도 내가 100% 맡아 했던 등하원을, 일을 아예 쉬고 있는 남편이 나보고 똑같이 하자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남편은 가사와 육아를 하려고 퇴사한 게 아니라며 억울해 했다. 집안일과 육아를 하려고 그만두지 않은 것은 나도 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남편의 새로운 인생 설계를 위해 퇴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계획은 독박육아를 벗어나는 것이기도 했고, 이제는 우리 가정의 경제적 문제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 나에게는 최소한 7~8시간가량의 근무시간이 필요하니, 집안일은 맞벌이 때와 똑같이 하더라도 아이의 등하원은 남편이 대부분 맡아줘야 한다. 그런데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가 주체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남편. 

“내가 가부장제의 산물인데 어쩌라고!!”

남편이 화내면서 한 말이 너무나 웃겼지만, 슬프기도 했다. 나 또한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 퇴사 전후로 나는 가사와 육아의 주도권을 남편에게 완전히 넘겨도 될지 고민했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꼭 내가 할 일을 떠넘기는 것과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외벌이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가사와 육아를 잘해나갈지 걱정하기도 했다.


평일 오전에 운동하고, 낮엔 공부하거나 여행 준비를 하는 여유로운 남편의 일상에 대한 불만은 없다. 아이를 6~7시까지 돌봄을 시키며 비용을 내고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는 남편의 선택 또한 괜찮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내가 편히 일할 수 있게 등하원을 주로 맡아서 해주는 것뿐이다.  

야근하는 자유는 여전히 없다

워크홀릭인 내가 남편 퇴사 후 가장 기대했던 건 ‘야근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6년 만에 야근해도 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고 설렜다. 일도 더 할 수 있고, 사람도 더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육 및 세미나 참여도 가능해진다.


드디어 기대하던 마음 편하게 야근할 수 있는 날이 됐다. 한밤중에 조용한 사무실에 혼자 앉아 클래식을 들으며 일하는 것은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야근을 즐길 수 있다니. 이때까지만 해도 밤 10시가 되기 전 달려가야 하는 신데렐라가 될 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 엄마~~ 엉엉~~ 엄마한테 갈래~~ 엉엉~~~”

조용했던 사무실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화상전화를 통해 울고불고하는 아이 얼굴까지 보이니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정신이 혼미했다. 남편은 화상전화를 걸어 나와 아이를 연결해준 후 존재감 없이 가만히 있었다. 20분이 훌쩍 지나고 30분이 되기 전에 노트북을 끄고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야근하는 날은 화상통화를 켜놓고 마이크를 꺼봤다. 10분이 지나도록 아이가 울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이때부터는 나는 모성애라는 감정과 싸워야 했다. 아이를 달래는 일이 함께 있는 남편이 아닌 나의 몫이 되어버린 지금 이 순간이 혼란스러웠다. 남편은 왜 아이를 달래지 않는 걸까? 남편은 왜 아이를 보듬어 주지 않는 걸까? 두 번째 야근 날도 우는 아이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서 노트북을 끄고 집으로 향했다. 


세 번째 야근하는 날은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2, 3번 전화가 오더니 더 이상 오지 않길래 해결된 줄 알고 편하게 일에 집중했다. 아이는 남편과 잘 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밤 11시가 넘어서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로 올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내가 바보였다. 


세 번째 야근을 경험한 후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빠가 가까이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라는 것에 공감했다. 남편은 아이를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는 야근이나 저녁 약속이 있어도 밤 10시 전에 달려가야 한다. 밤 11시든 12시든, 내가 갈 때까지 남편은 아이를 재우지 못한다. 늦게까지 야근할 수 있는 날은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사무실에 있는 날이다.

이제야 남편 그리고 아빠가 된다

출처: ⓒMBC ‘워킹맘 육아대디’ 캡처

함께 부모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관한 일들은 모두 엄마인 나만의 일이었다. 아이의 기저귀나 밥그릇을 사는 간단한 일조차도 남편은 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하루가 벅차고 힘겨웠는데, 남편의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남편은 육아에 관해서는 “모른다”, “못한다”로 일관했는데 나 또한 모르는 일투성이였고, 해본 적 없는 일투성이였기 때문에 남편을 입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를 안는 것을 두려워하던 남편 대신 내가 항상 안고 다녔고, 아이를 재우지 못하겠다는 남편 대신 항상 내가 재웠다. 이유식도 모두 내가 만들었고, 놀이 방법도 찾아보고 함께 놀아줬다. 육아에 대해 ‘안 해도 그만’이라고 일축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꼭 해야 하는 사람이 됐다. 


내가 외벌이를 시작하고 2~3달이 지나니, 남편이 가사와 육아의 60~70%를 고스란히 가져갔다. 주부로서, 엄연한 주양육자로서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나의 삶을 바라봐 주는 것 같았고, 우리 가정 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가사와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남편에게 일상이 됐고, 서서히 적응해 나가는 듯하다. 


주말 아침 편히 늦잠을 잘 수 없는 것은 예전과 다를 바 없지만, 이유가 바뀌었다. 이제는 아침을 먹자고 아이가 깨우는 바람에, 또는 남편이 청소나 설거지를 하는 소리에 일어난다. “아침 먹자”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입에 군침을 흘릴 때도 있다. 남편이 해주는 아침식사는 별것 없지만 고급 레스토랑의 브런치와 같은 느낌이다.  


남편이 아침식사를 항상 챙겨주지는 않는다. 다행히 아이가 초코볼 시리얼을 아주 좋아해 1주일에 서너 번은 초코볼 시리얼 먹는다. 어느 날 아침, 아이는 어김없이 초코볼을 한두 개 떨어뜨렸다. 나는 그것을 줍기 위해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는데, 나의 시선보다도 빠르게 남편이 치우고 있었다. 남편이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신속하게 줍고 닦고 치운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이에게 ‘흘리지 말고 먹자~’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훈육하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남편이 퇴사하고 많은 게 변했다. 남편은 가사나 육아처럼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함께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남편과 아빠가 되려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1.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페미니스트야” 

2. “당신, 페미니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3. 돈 벌어오라는 남편, 그래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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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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