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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

그 일 이후,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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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태어나서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한 교회에서 보냈다. 교회에는 내가 기저귀도 못 떼고 기어 다니던 갓난애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기까지를 여실히 지켜본 어른들이 있었고, 오랜 시간을 울고 웃고 다투며 친자매처럼 지낸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게 가족 같은 존재였고, 나는 내가 그 울타리 안에서 평생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가끔 의문을 느끼곤 했다. 왜 교회에서는 여성들만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는 걸까? 왜 나는 내가 가진 능력에 상관없이 목회자가 될 수 없을까? 왜 대부분의 신도가 여성임에도 중책은 남성만이 맡는 것일까? 명확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고, 나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을 ‘원래 그런 것’으로 학습하면서 자라났다.

교회 내 성폭력과 크리스천 여성들에 대해 다룬 웹툰

출처ⓒ에끌툰 비혼주의자 마리아(린든 작가)

무언가 크게 잘못됐음을 깨달은 건 18살 때의 일이다. 중학생 남동생을 둔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불러냈다. 친구는 남동생에게 들었다며 교회 남학생부 안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A의 주도로 나와 그 친구를 두고 어떤 종류의 성희롱이 오가고 있는지 털어놓았다. 그들은 내 얼굴이, 몸매가, 허벅지가 어떤지 조각조각 나눠 평가했고 나는 순식간에 도마 위에 올라간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와 친구는 고민 끝에 이 일을 어른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우리가 그냥 덮어 넘긴다면 다음 타깃이 누가 될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 깊이 아끼는 어린 자매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또 항상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강조하는 교회가 이런 일을 묵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A는 하나님 앞에 맹세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난감해하던 어른들은 명망 있는 집사님인 A의 어머니에게 사건의 해결을 떠넘겼다. A의 어머니는 몇 마디의 말로 상황을 간단히 ‘쌍방의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로 매듭 지었으며, 친구는 A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A는 ‘괜찮다’고 웃으며 사과를 받아주었고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나에게도 관대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출처ⓒ에끌툰 비혼주의자 마리아(린든 작가)

그 뒤로 나는 남학생들이 앉은 자리 앞을 지나갈 때마다 아래위로 훑어보는 노골적인 시선과 키득거림을 견뎌야 했다. 친구의 남동생은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고, 친구는 계속해서 교회에 다니기 위해 그 일이 정말로 자기가 오해했던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 점이 제일 슬펐다. 나는 아무것도 잊지 않고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았지만, 내가 교회에 발길을 끊는 순간 사람들이 내가 잘못했던 거라고 생각할까 봐 꾸역꾸역 교회에 나갔다.  


그 후로도 수많은 일이 있었다. 교회 남청년이 여학생들에게 집적거리는 일이 생기자 여학생들의 행실 단속이 심해졌다. 우리는 남성 신도들 앞에서 실실 웃고 다니지 말아야 했고 발목이 보이는 슬랙스도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입지 못하게 됐다. 전도사님은 내가 교회에 전처럼 열성적이지 않다며 ‘여자애들은 좀 때려야 말을 잘 듣는데 부모님께 그러라고 해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무 살이 된 A가 목사님의 추천으로 목회자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는 더는 전처럼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교회에 남은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한국 교회에서 여성 신자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밖으로 나온 사람의 입장에서, 어디선가 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다. 더는 내가 믿음이 부족한 것인지, 내가 잘못된 것인지 자책하지 말라고. 바뀌어야 할 건 한국 교회의 여성 혐오적 문화이지 당신이 아니라고.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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