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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사살하는 시범 보인 5.18 계엄군의 만행

조회수 2019. 4. 25. 19: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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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우발적으로 시민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출처: ©연합뉴스
17년 10월 공개된 계엄군 발포 지시 문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의도적으로 사살했다는 기록이 확인됐다. 지금껏 전두환 씨와 신군부는 자위권(자신을 지키기 위한 권리)을 위해 발포했다고 주장해왔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가 1985년과 1988년 작성한 ‘11공수 상황일지’에는 “시민 1명이 버스를 몰고 분수대를 돌아나가려 할 때 그 자리에서 사살, 폭도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당시 공수부대원의 수기는 상황을 더 자세히 묘사했다. 버스가 다가오자 대대장이 ‘저건 죽여도 좋다.’고 사살 명령을 내렸다. 중대장은 병사에게 실탄을 줬고, 병사는 조준 사격으로 운전하던 시민을 사살했다.


‘폭도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라는 문건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사살은 시민들이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지 못하게 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교수도 “멀리서 시민들한테 본보기로 확인 사살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감히 도청을 향해 돌진해오지 못했다는 뜻.”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출처: ©연합뉴스
5·18 당시 헬기 사진

이번에 발견된 문건은 5·18 진상규명의 핵심인 ‘최초 발포 명령자’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1985년에 작성된 문건을 보면 도청 앞 분수대 기준으로 4개 대대가 있으며, 80년에 작성된 원본에는 ’61, 62대대는 전열, 63대대는 15m 후방, 35대대는 도청 울타리 벽에 있다.”고 적혀있다. 이중 어떤 대대장이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는 파악되지 않으나 이 부대의 지휘관들을 조사한다면 최초 발포 명령 혐의가 있는 인물을 좁힐 수 있다.


한편 이번 발견된 문건에는 ‘오후 3시 30분에 경계 헬기 1대가 왔다.’는 내용이 발견됐다. 일지에는 20사단과 교체 예정이니 헬기장을 확보하라 적혔으며, 근처 빌딩 옥상에 경계병력을 세웠다는 내용도 적혀있다. 이 시간은 조비오 신부와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시각과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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