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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엄마→친정엄마→시어머니… 돌봄노동에 갇힌 여성들

엄마가 엄마를 착취하는 세상, 언제쯤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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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을 펴낸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

출처ⓒS-OIL 광고 캡처

나의 엄마는 1955년생. 결혼 후 오빠와 나를 낳아 길렀고, 다시 맞벌이하는 오빠네 딸을 아홉 살까지 키웠다. 자식, 그리고 자식의 자식을 돌보는 동안 엄마는 훌쩍 예순다섯이 됐다. 나는 재작년 첫 아이를 임신했다.

“엄마 고생하시기 전에 빨리 이쪽으로 이사 와.”

오빠가 말했다. 맞다. 엄마는 그럴 사람이다. 먼 동네 살아도, 몸이 혹사당해도, 딸 산후조리를 위해 밥 해주고 청소해 주려고 겨우 쉬는 주말을 포기할 사람. 거기가 어디든 자식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올 사람. 


추운 겨울, 배가 부른 몸으로 거처를 옮겼다. 오빠가 그랬듯 나도 육아를 위해 부모님 댁 근처로 온 것이다.  


밤낮 우는 생후 2일 신생아를 데리고 집에 온 날, 남편과 나는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신생아 시기인 한 달간 내 하루 평균 수면은 3시간. 잠 없는 아기였다. 젖이 부족했는지 끊임없이 울어대 십 분이 멀다고 젖을 물렸다.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 보조 산후도우미 서비스가 구세주였다. 도우미는 3주간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했다. 우리 부부의 세끼 식사와 빨래, 청소를 돌봤다. 엄마는 도우미가 오지 않는 주말, 도우미 계약이 끝난 뒤부터는 산후 백일까지 매일, 두세 시간씩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 없으면 안 돼요

우리 부부에게 점심밥을 먹이면 엄마의 큰 임무는 일단락된 것이다. 국물이 흘러넘친 가스레인지를 박박 닦고, 시간 나면 무릎 꿇고 거실 바닥도 슬슬 닦는다. 바닥은 그냥 두란 말에 “괜찮다, 괜찮다” 하다가도 엄마는 말한다. 

“너희 집 오면 이상하게 힘들어.”
“설거지 좀 해놔. 오면 일이 너무 많아. 집에 가면 힘들어 죽겠어.”

내가 아기 낳고 설거지를 한 적은 손에 꼽았다. 할 시간이 없었다. 가끔 남편이 설거지했지만, 엄마가 느끼기에는 정말 가끔이었을 것이다.


작고 마른 엄마는 정기적으로 보건소 골다공증 검사를 받는다. 그런 몸으로 늘 많은 짐을 갖고 다닌다. 반찬이 든 밀폐 용기와 아이스팩, 엄마 집 15kg 세탁기에 넣고 돌려주려는 우리 집 이불 빨래, 삶은 행주... 빨간 장바구니 카트는 엄마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엄마, 계단 내려갈 때는 우리 남편한테 들라고 해. 무겁잖아.”

엄마는 연신 괜찮다며 카트를 갖고 마당 돌계단 한 칸 한 칸 조심스레 내려간다. 나이 들어 넘어지면 큰일이니까. 그럴 때면 제 방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사위가 얄밉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먼저 사위를 시키지 않는다. 엄마는 사위를 손님이라 생각한다.

▲ 엄마가 부엌에서 조리를 시작하고 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 부부는 이런 밥상을 받았다.

출처ⓒ조슬기

나는 남편과 엄마 두 사람에게 이것저것 잘 시켰다. “물 좀 줘”, “화장실 가니까 아기 잠깐 안아줘”, “기저귀 좀 갈아줘”.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페미니즘 글쓰기 모임 시간, 다른 엄마들의 아우성이 빗발친다.

“그걸 왜 친정엄마 시켜요?”
“착취 아니에요?”
“돈 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일제면 한 달 최소 이삼백만 원인데.”
“이제 오시지 말라고 해요.”

쭉 듣던 내 입에서 한 마디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엄마 없으면 안 돼요!”

내 말이 부끄러웠지만, 생각해 보면 오래전부터 우리 집은 엄마 없이 일이 안 돌아갔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30년 전 그때부터.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재봉사로 취직했다. 일을 다니면서도 점심시간이면 꼬박꼬박 내 밥을 차려줬다. 손녀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렇게 20년간 직장 일과 육아, 가사노동을 해온 엄마는 딸인 내가 좀 컸을 때 설거지를 처음 시키려 했다. 


“오빠는 안 하는데 왜 나만 해?” 볼멘소리가 나오자 아빠도 오빠도 나도 안 하는 집안일을 엄마가 하던 대로 혼자 다 했다.

너도 네 엄마 같은 엄마가 되겠지

엄마에 대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첫 댓글이 달렸다.

“너도 네 엄마 같은 엄마가 되겠지ㅎㅎ”

뭐라고? 내가 바랐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그다음 댓글은 동료 아기 엄마.

“육아하는 1순위는 엄마, 그다음은 친정엄마, 그다음은 시어머니, 그다음은 어린이집 여교사. 세상이 여자들 돌봄 없이 돌아갈까 싶네요.”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글쓰기 모임 사람들의 말처럼 “엄마가 너무 희생하고 있다, 이건 맞지 않다”며 남편에게 화냈다. 싸움이 늘자 그는 말했다.

“내가 오시라고 한 거냐고! 어머니 이제 오시지 말라고 해.”
“그럼? 엄마 안 오면 집에 냉장고에 뭐가 있는데? 자기가 먹을 거 안 만들어 놓잖아! 나는 굶어야 돼 그럼!”

남편은 전보다 설거지를 자주 했고, 나도 산후 백일이 지나며 집안일에 손을 보탰다. 아기 200일, 300일이 되는 동안 엄마의 발길은 뜸해졌다. 우리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첫째 손녀가 방학이었고, 또 감기였다.


엄마가 우리 집 부엌에 있을 때 묘한 죄책감을 느꼈는데, 반대로 억울한 마음도 늘어갔다. 출산하고 아기 돌보느라 손목, 손가락 관절, 족저근막염인 발 등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육아로 삶이 파탄 난 내가 지상 최대 피해자 같은데, 가해자라니. 외치고 싶었다.

“친정엄마 도움받는 게 그렇게 잘못이에요?”

처음에는 남편 때문에 엄마가 우리 집에서 힘들게 일한다 생각했다. 20년간 자기 엄마에게서 밥, 빨래, 청소 서비스를 당연하게 받아온 것처럼 내 엄마에게도 똑같이 군다고. 내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숟가락도 안 놓고 행주질도 안 한다고. 그 쉬운 것조차 안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내가 육아로 못하는 가사의 대부분,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여겼다.


페미니즘 글쓰기 모임에 나간 후 남편만 가리키던 손가락을 안으로 돌려 이제 나를 봐야 했다. 한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나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아이를 낳고 집에 온 후 몇 달간 남편에게 자주 화내고 소리쳤다고.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고.  

“아니, 옆에서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면서도 그렇게 몰라? 정말 눈물 나! 그런데 내가 남편을 어떻게 이해하게 됐는지 알아? 내가 그랬더라고. 우리 엄마랑 삼십몇 년 살면서도 엄마 힘든 걸 몰랐더라고. 눈앞에서 보면서.”

언제쯤 이 이야기가 끝날까요

▲ 만화 ‘며느라기’의 한 장면. 명절에 대가족이 모이고 어린 딸이 행주질하자 엄마가 화를 내고 있다

출처ⓒ수신지 ‘며느라기’

만화 ‘며느라기’에서 봤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 딸이 행주질하려 하자 엄마가 화를 내며 못하게 막았다. 내 엄마도 비슷했다. “시집가면 많이 할 텐데. 됐어. 하지 마.” 힘든 엄마, 언젠가 그 자리를 이을 딸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세대를 이어가며 계속돼야 하는 걸까?


내 엄마는 언제쯤 자기 삶을 즐길 수 있을까? 손주들이 자란 10년 후? 딸과 사위, 남편과 아들이 제 할 일을 할 때? 엄마 생각이 변할 때? 답은 간단치 않다. 이 사회 구조에 대해 말하지 않고선, 이 땅의 수많은 엄마가 부딪히는 황혼 돌봄노동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슬기야, 엄마 많이 도와드려. 엄마 힘들어.”

초등학교 때 앞집 아줌마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내가 태어난 4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엄마들 삶은 어렵다.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여자들 몫이다.


게다가 온 가족이 아이를 돌보던 백 년 전 대가족 제도와 달리 지금은 엄마 한 명이 온종일 아이를 책임지는 ‘독박육아’의 시대다. 왜 저출산 사회가 된 것인지 아직도 번지수를 못 찾는 대한민국의 육아복지정책은 할머니 세대와 젊은 엄마들 모두를 돌봄노동의 수렁에 밀어 넣는다. 

“옛날 엄마들이야 힘들었지, 요새 엄마들은 얼마나 편하냐?”

이렇게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옛날 엄마와 요즘 엄마, 그 둘은 분리돼 있지 않다고. 여성들은 끊임없이 힘든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 외부 필진 부너미 님의 기고 글입니다. (글 조슬기)


**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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