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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남자아이한테 간호사 되라니... 너무한 거 아냐?”

성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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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을 펴낸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

출처ⓒJTBC 소셜스토리

아이와 함께 나들이하러 가는 날이었다. 남편이 미리 차를 끌고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차를 보면서 “아빠 차다! 아빠 차야”라며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이에게 “왜 아빠 차야, 엄마 차이기도 한데?”라고 농처럼 대화를 건넸고, 아이는 나에게 “’빠방이’는 남자가 하는 건데?”라고 대답했다.


나도 운전을 하고 주변에는 정말 많은 여성 운전자가 존재한다. 그런데 왜 이제 겨우 3살인 아이는 ‘운전은 남자의 영역’이라는 성역할을 습득한 것일까. 


아이의 그림책을 살펴보며 아이가 왜 ‘운전=남성’을 기본으로 두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림책의 남녀 표현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에서 방과 후 놀이용으로 보내준 책에도 굳어진 성별 이미지가 등장한다. 


일단 남자아이의 이미지가 기준이고 여자아이는 고정된 남자아이의 이미지에 머리를 땋거나 속눈썹을 붙여주는 방식으로 설정된다. 마치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만들어졌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인간 이미지의 기준은 남자이다. 남자로부터 파생된 여자는 남자의 이미지에 여성적인 기표를 덧씌워 완성된다. 운전이 남자의 영역이라는 성역할을 깨는 게 먼저가 아니었다.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인 내가 운전을 했다.

“엄마가 운전한다. 운전은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아이는 아직 3살이기 때문에 ‘빠방이는 남자가 하는 거야’라는 말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모르는 만큼 내가 한 말의 의미도 정확히 이해하진 못한다. 하지만 아이가 정확한 의미를 알아차리기 전부터 모든 일에 대해서 남녀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려주고 싶다.

애한테 간호사가 되라는 건 너무해

▲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

출처ⓒKBS 안녕하세요 캡처

최근 아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꼬마의사 맥스터핀스’에 푹 빠져서 한동안 역할 놀이에 심취했다. 멀쩡한 장난감을 가지고 오더니 “얘가 다쳤어, 승현이가 할게”라고 크게 외치며 조막만 한 손으로 장난감을 퉁탕거렸다. 남편은 그 모습이 또 좋아서 스마트폰으로 ‘의사 역할 놀이’를 열심히 검색했다.


아이에게 병원 놀이 장난감을 사주기로 했다. 남아용은 파란색, 여아용은 분홍색으로 나뉘어 판매되고 있었다. 심지어 여아용 중에는 분홍색으로 된 간호사 세트가 따로 있다. 나는 아이에게 간호사 세트를 사주자고 했다. 남편은 내가 하는 행동에 불만이 있는 눈치였다.

“여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건 좋은데... 아이한테 간호사 역할 놀이를 주고 간호사가 되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잠시 여러 생각이 오갔다.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원한다면 간호사가 되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는 뭐야?”

“간호사를 남자가 하면 어떤지 알잖아. 애가 좋은 쪽으로 되길 바라야지.”

사실 남편이 이런 불만을 드러냈을 때 나 또한 아이가 간호사가 돼도 좋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진 못했다. 남편이 아들에게 간호사 놀이를 선물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직업군의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소방관, 과학자, 의사는 남성으로 간호사, 유치원 교사는 여성으로 분류하는 직업 교육 콘텐츠에 분개하면서도 정작 아들이 간호사나 유치원 교사를 꿈꾸는 것은 두려워한다.


여자아이들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남자아이들에게도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의미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가르쳐야 한다. 

엄마도 나한테 뽀뽀하잖아!

어느 날은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아기가 너무 예쁘다 하시며 무작정 안고 뽀뽀를 하셨다. 아이와 부모인 나에게 묻지 않고 스킨십을 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어르신에게 그런 기색을 내비치긴 싫었다. ‘남자아이인데 뭐 어때’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들보다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놀러 나왔다. 아들은 그 아이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달려가서 껴안고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쳤다.

“안 돼! 여자아이한테 함부로 그러는 거 아니야. 동생에게 안아도 되냐고 물어봐야지!”

“엄마도 나한테 뽀뽀하잖아! 안 물어봤잖아!”

화가 난 아들은 짧고 어눌한 발음으로 반박했다. 할 말이 없었다.


여자에게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남자아이에게만 상대방의 의사를 반드시 확인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치면 충분할까? 남자아이도 자신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자기를 만지려고 할 때 원하지 않는 스킨십은 거부할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 젠더감수성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놀이터에서 아이와 한바탕 싸우고 난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아들에게 달려가서 “아들 뽀뽀!”를 외친다. 정말 난감하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싫다고 난리를 쳤고 남편은 이제 세 살인 아들에게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여과 없이 보이며 죄책감을 심어준다. 


아이가 잠들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에게 강제로 혹은 조건 없는 스킨십을 요구하지 말자고 했다. 남편은 부모가 돼서 그 정도 스킨십도 요구하지 못하냐며 불평을 했다. 그날 우리는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이 훗날 아이의 젠더 감수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여야 했다.

엄마 페미니스트, 젠더를 넘어서

▲ 친구와 공주 놀이 중인 남자아이 시하

출처ⓒS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캡처

관습화된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가끔 나조차 남녀로 이분화된 개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다는 걸 느낀다. 남자와 여자라는 기존 성역할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항하기 위해 페미니스트가 됐지만, ‘여성 외에 젠더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나의 아이를 가르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가’라고 나 자신에게 질문하면 부끄럽게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젠더에 대한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남녀 이분법에서 벗어난 젠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이분법의 경계에 서서 살펴보면, 우리가 본래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페미니즘을 통해서 대단한 이론가나 사상가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는다. 그저 아이와 나의 젠더 감수성을 공유하며 현실에서 마주하는 구체적인 쟁점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 외부 필진 부너미 님의 기고 글입니다. (글 유보미)


**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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