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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한 대통령 인사가 논란이 된 이유

조회수 2019. 3. 25. 11: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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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결례 논란이 뜨거웠다.
출처: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

결국 참사도 무능도 언론의 몫이었습니다.


최근 외교 결례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지난 3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슬라맛 소르’라고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했다는 건데요. 말레이시아에서는 ‘슬라맛 쁘땅’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사말이라고 하네요. 이를 두고 ‘한국에 온 외국 지도자가 곤니치와라고 인사를 한 셈’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KBS 팩트체크K의 팩트체크 결과는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인사말이 ‘슬라맛 쁘땅’인 건 맞지만, ‘소레’ 역시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라는 거죠. 말레이시아 한인회 측에서도 ‘어차피 비슷한 말이고 사투리 정도로 보면 된다’고 확인해주었습니다. 


뉴스톱에서도 현재 인도네시아에 거주 중인 칼럼니스트 김정호 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이 칼럼의 결론도 팩트체크K의 팩트체크 결과와 거의 같습니다. 거기에 문 대통령이 시간대에 맞지 않는 인사를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지에서는 시간대를 원래 정확히 구별해서 인사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낮에 오후 인사를 하기도 하고 오후에 저녁 인사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현지인들에게 이번 ‘외교 결례’ 문제에 대해 설명했더니 다들 피식 웃으며 어이없어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하지만 이 문제가 처음 언론에서 촉발된 3월 19일 당시에서는 그 어떤 언론도 제대로 된 팩트체크를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외교 결례’ 지적이 나왔다”고만 기사화를 했죠.

출처: ⓒ연합뉴스 기사 캡처

대표적으로 연합뉴스의 기사가 있습니다. ‘문대통령, 말레이시아서 인니어 인사… 외교 결례 지적 나와’라는 기사를 봅시다. 이 기사에서 문 대통령이 외교 결례를 저질렀다는 근거는 단 하나, 이경찬 영산대 교수의 페이스북 글뿐입니다. 복수의 전문가에게 크로스 체크를 한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이경찬 교수 본인에게 직접 사실확인을 받은 부분도 없고 그냥 페이스북 글을 쌍따옴표를 이용해 계속 복붙하고만 있습니다. 이건 ㅇ사 등 유사언론 사이트에서나 쓰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더 큰 참사는, 수많은 유력 일간지들이 심지어 사설에서까지 이를 소재로 문재인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는 겁니다. 


늘 1등 신문임을 자임하는 조선일보부터 봅시다. 제목은 “말레이서 印尼 말로 인사, 반복되는 실수는 무능이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안녕하세요” 대신 “곤니치와”라고 한 셈”이라며, “오랜 기간 경험과 능력이 검증된 외교관들을 ‘적폐’로 몰아 내치고 코드 인사들을 꽂아 넣어서” 발생한 참사라고 말하고 있네요. 


세계일보도 “말레이시아서 인도네시아 인사말, 나사 풀린 정상외교”란 사설을 썼고, 문화일보도 “말레이 가서 印尼 인사말, 文정부 外交수준 상징한다”며 정부의 외교 역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심각한 문제라 주장했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이 ‘안녕하세요’ 대신 ‘곤니치와’라고 일본말로 인사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유는 여기서도 또 나오네요. 


문 정부가 절대선도 아니고 못하는 게 왜 없겠습니까. 낙하산 공관장 문제, 비판할 것들은 비판해야죠. 하지만 비판의 날에 엄밀함과 정밀함이 없으면 오히려 언론의 그 참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조선일보 사설(위)과 문화일보 사설(아래)

조선일보 사설을 봅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말레이시아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략) 대통령이 해외 공개 석상에서 한 실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확인했나요? 확인 안 했잖아요. 확인’됐다’는 말로 팩트체크의 주체를 대강 뭉개버리는데, 그 책임은 조선일보에 있습니다. 확인 안 하고 사설로 밀어버린 데스크가 까일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들 사설들의 논조가 이상할 정도로 비슷하다는 겁니다. “외국 정상이 ‘곤니치와’라고 인사한 셈”이란 비유는 조선일보와 문화일보가 똑같이 썼고, “경험과 능력이 검증된 외교관들을 ‘적폐’로 몰아 내쳤다”는 표현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가 똑같이 썼어요. ‘낙하산 공관장’ 이야기는 세계일보와 문화일보에서 똑같이 썼고요. 완전히 겹치는 표현만 그렇고, 사실 세 사설의 마지막 문단은 서로 바꿔 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내용이 다 똑같습니다. 


물론 같은 소재, 같은 주제로 쓴 사설이니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긴 한데… 실질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저는 이게 ‘게으름’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SNS 시대의 속도 경쟁에서 완벽한 팩트체크를 기대하는 건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서도 이게 그렇게 어려운 팩트체크는 아니잖아요? 전문가가 필요한 문제도 아니고, 현지인에게 확인만 해 보면 되는 건데… 유튜브와 페북, 트위터에 넘쳐나는 가짜뉴스와 비교해 기성 언론을 더 신뢰해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리는 거죠. 심지어 사설까지 동원한다면 사실 이건… 의도가 투명하게 보일 정도고요.

* 외부 필진 임예인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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