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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장손인 남편이 호박전 부치자 벌어진 일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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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을 펴낸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

명절 음식을 사서 차례를 지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언제부터인가 ‘전을 부치는 것’은 명절 노동의 상징처럼 된 듯하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어릴 적 명절 풍경이 있다. 엄마와 큰엄마, 작은엄마들이 모여 앉아 부침가루와 달걀을 묻혀 팬 위에 올려놓으면 다른 분이 그걸 뒤집으시고 나와 동생, 사촌들은 그 옆을 어슬렁거리며 이제 막 완성된 부침개를 날름 집어 먹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기억이지만, 실제로 내가 결혼을 하고 명절에 전을 부쳐보니 일하지 않고 먹는 자에게만 따뜻하고 고소한 추억이었다. 한 자리에 우직하게 앉아서 팬에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적절한 온도에서 전을 알맞게 익혀 부쳐내는 것.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보기엔 꽤 숙련이 필요한 노동이었다.


올해로 결혼 5년 차. 9월 추석이 지나고 결혼했으니 첫 명절은 이듬해 설이었다. 당시 임신 초기여서 입덧이 심해 시가에 가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남편은 “요리든 뭐든 내가 다 할 테니 마음 편하게 다녀오자”라고 약속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도 부침개를 참 잘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에서 남편은 꽤 능숙한 솜씨로 팬을 휘두르며 파전을 공중에서 회전시켜 모두의 환호를 받았다. 이제는 환호해주는 이는 5살 아들뿐이지만, 그는 명절마다 제사마다 시가에서 파전뿐 아니라 동태전, 버섯전, 배추전, 애호박전, 동그랑땡 등 각종 전을 쉴 새 없이 부친다. 


나는 명절이 영 자신 없었다. 명절 음식을 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결혼하면 많이 할 테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부엌에 서 있지도 못하게 했다. 내내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갔고,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다가 취업했고, 그러다 결혼이란 걸 했다. 음식을 만들겠노라 하는 날이면 칼에 베이는 건 다반사였고 살림이 소꿉놀이 같이 느껴졌다. 어차피 남편이 나보다 요리도, 청소도 잘했다.


애초에 결혼 시작부터 가사 분담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건 나를 위함이었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자’가 우리 부부의 가사 분담의 핵심이었다. 남편은 학생 시절부터 직접 음식을 만들었고, 아무거나 다 잘 먹는 나와 달리 입맛도 예민하고 맛있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마침 집에서도 남편이 요리는 도맡아 하던 차였다.


드디어 첫 명절. 전을 부칠 시간이 됐다. 남편은 거실 가운데 앉아 전을 부쳐냈다. 나는 따끈하고 맛깔 나는 전을 여기저기 친척 어른들에게 날랐고, 명절 준비를 하시는 어머님, 아버님들 말씀에 추임새를 넣는 등 흥을 돋우며 내가 잘하는 걸 했다.

당연한 것들이 나는 불편했다

그러나 남편은 남편일 뿐 시가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공간이었다. 어머님을 비롯한 여성 친척 어른들은 나까지 들어가면 민망할 정도로 좁은 주방에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식을 장만하셨다. 아버님을 비롯한 남성 친척 어른들은 명절 준비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일’은 하셨지만, 그 외에는 주로 텔레비전을 보시거나 혹은 집 밖의 일을 돌보셨다.


그러다가 차례상 배치를 주도하시거나 밥 먹을 때가 되면 음식의 간에 대해 한마디씩 하셨다. 종일 음식을 만드신 여성 친척 어른들은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차례 참석은커녕 잠시 쉴 틈도 없이 아침 밥상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셨다. 


게다가 남편은 장손이었다. 결혼을 준비할 때도 사람들이 ‘남편이 장손인데 괜찮겠냐’고 물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 ‘장손’, ‘장손 며느리’가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시가에 가보니 남편이 장손이라는 게 확 와닿았다. 도대체 장손 며느리는 어때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괜한 마음에 주방 일을 하겠다고 나서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장손 며느리의 탈을 써도 못하는 건 못하는 거였다. 


시가의 전형적인 명절 모습들이 너무 답답하고 불편했다. 나 빼고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했다. 뭔가 나서서 말하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명절을 거부할까 생각도 했다. 결혼 전에야 내가 명절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해도 다들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나의 ‘명절 거부’가 어머님들의 노동 강도만 키우는 게 될 게 분명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명절의 풍경들, 명절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명절 노동의 불합리함에 대해 남편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작년 설, 전 부치는 남편

출처ⓒ이은주

기나긴 대화 끝에 남편은 앞으로도 계속 명절과 제사마다 본인이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로 남편은 명절과 제사 때마다 전을 부쳤다. 물론 나도 쉬지 못하고 일하시는 어머님들을 도왔다. 어느 때는 앞치마를 챙겨가기도 하고 설거지를 도맡기도 했지만, 전 부치기나 만두 빚기 등은 대부분 남편이 도맡아 했다.


시가 어른들은 주저함 없이 나서서 당연한 듯 전을 부치고 음식 준비를 하는 남편을 두고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으셨다. 남편이 설거지도 하겠다고 나섰을 때야 어머님이 ‘이제 그만 해도 된다’고 말씀했다.

달라진 명절이 기대된다

처음 그가 전을 부친 건 그냥 자신이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어느 명절 때의 일이다. 시가에서 돌아온 남편은 내게 종일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털어놓았다. 편히 쉴 수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요리를 계속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지금 당신이 이야기한 게 대부분 며느리가 명절에 느끼는 감정일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는 매우 놀랐다. 결국 남편은 여태까지의 명절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먼저 나서서 행동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선택했다. 여성 친척 어른들이 모두 주방에 서서 계실 때 남성 친척 어른들이 거실 소파에 둘러앉아 계시면 남편은 먼저 일어나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남자 어른들끼리 둘러앉아 모두가 앉기 전에 먼저 식사를 시작하시면 ‘기다렸다가 함께 먹자’고 이야기했고, 남성과 여성이 분리된 밥상을 거부하고 자신은 ‘아이와 함께 다른 상에 앉아서 먹겠다’고 이야기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그대로 상을 두고 앉아서 쉬는 게 아니라 ‘같이 상을 옮기자’고 했고, 그릇을 옮기고 상을 닦았다. 남편이 나서서 하니 남편의 사촌 동생들도 함께 분주해졌다. 결혼 초반 명절 때는 하루에 설거지를 9번을 넘게 했었는데, 다른 구성원들이 나서 설거지를 하니 어머님들이나 나도 앉아서 쉴 여지가 생겼다. 


지난 추석, 남편의 작은 어머니가 눈을 반짝거리며 내게 말씀했다.

“이제 남자들도 같이해야 할 때가 됐어. 그 변화를 우리가 만들어가자.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자.”

아빠가 전을 부치는 동안 파를 다듬는 아이

출처ⓒ이은주

올 설 연휴를 앞두고 어머니께서 손을 다치셨다. 그런데도 매년 설 때처럼 만두를 빚는 건가 싶었는데, 남편이 만두를 사서 먹자고 제안했다. 남편의 작은 어머니께서 마침 맛있는 만둣집을 안다며 만두를 사 오시기로 하셨다. 


매년 설 때마다 500개가 넘는 만두를 만들고 쪄야 했는데, 그 일을 안 해도 된다 생각하니 남편은 벌써 마음이 가벼워지나 보다. 물론 어머니께서 손을 다치신 건 속상한 일이지만. 


남편은 이번 설에 설거지를 걸고 다 같이 윷놀이 내기를 하자고 제안할 생각이란다. 벌써 신이 난 남편을 보니 나도 덩달아 즐겁다. 조금은 다를 올해 설이 기대된다.

* 외부 필진 부너미 님의 기고 글입니다. (글 이은주)


**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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