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준영 논란' 때 '1박 2일'이 폐지됐더라면

조회수 2019. 3. 18. 13: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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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이 반복됐다.
“KBS <1박 2일> 방송 및 제작 중단을 알려드립니다.”

결국 KBS가 <1박 2일>의 무기한 중단을 발표했다. 그러나 마냥 잘했다고 박수칠 일은 아니다. 결정 자체는 잘했다고 볼 수 있지만, 시기와 방식 등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상황을 짚어보자. 3월 11일 SBS가 정준영의 불법촬영물 유포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12일 경찰이 정준영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입건했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KBS는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1박 2일>팀은 15윌 오전 10시 무렵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정상적인 촬영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는 정준영을 제외한 6명의 멤버들(김준호·차태현·김종민·데프콘·윤시윤·이용진)이 모였다. 촬영은 ‘평소와 다름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고 한다. KBS는 <1박 2일>의 정상 방송을 예고한 상태였다.  

출처: ⓒ연합뉴스
검찰 출석 중인 정준영
“특히 가수 정준영이 3년 전 유사한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 당국의 무혐의 결정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출연 재개를 결정한 점에 대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기한 중단’은 얼핏 강력한 대응처럼 보이지만, ‘폐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소극적이다. 왜냐하면 KBS와 <1박 2일>에겐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에도 정준영은 여자친구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혐의로 고소를 당해 수사를 받았다. 당시에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현재 그 결과에 대해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당시 무혐의 처분도 정준영이 수사기관에 휴대전화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증거불충분’으로 결론지어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KBS는 정준영의 복귀를 도왔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유일용 PD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제작진 논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1박2일> 멤버들의 의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멤버들의 의견은 이미 방송을 통해 계속해서 표출됐었기에 짐작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정준영이 빠진 첫 방송에서부터 멤버들은 “6등분 했는데 준영이가 없네”(김준호), “너의 독설이 그립다”(데프콘)며 계속해서 그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4개월 후 KBS는 정준영을 <1박 2일>로 다시 불러들인다. 심지어 제작진은 지리산 등반 미션을 통해 정준영을 배려했다.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정준영을 조기 복귀시킨 KBS의 책임은 크다. 그리고 당시의 안일했던 태도는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방송을 중단하고 자숙에 들어가는 등의 단호한 대응을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제작진 및 관계자들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정준영을 하차시키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자 했다.


그러나 이쯤에서 한 가지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KBS를 비판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2016년에도, 2019년에도 KBS가 유심히 살피는 건 여론이다. 그런데 2016년에만 해도 그 여론이 지금과 달리 정준영에게 호의적이었다. 이 시점에서 당시의 댓글들을 살펴보는 건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의미한 일이다. 

“진짜 한 사람 인생 망치는 거 쉽다. ‘그 동생’ 어서 복귀해요.” (공감 17371개 / 비공감 2098개)

“막내의 빈자리가 너무 허전해. 빨리 돌아와.” (공감 13972개 / 비공감 176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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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당시 여론은 정준영의 빠른 복귀를 희망했다. 비난의 화살은 정준영이 아니라 오히려 정준영을 고소했던 피해자에게로 향했다. KBS가 눈치 보지 않고 정준영을 재빨리 데려올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준영의 복귀를 터준 건 KBS가 맞지만, 당시의 여론도 이를 도왔다.

출처: ⓒ서울시립청소년문화센터 '아하'

정준영 불법촬영물 최초 보도 후 무려 5일이 지나서야 제작 중단을 발표한 KBS가 반성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걸로 만족하고 끝낼 수는 없는 일이다. 책임은 대중이라는 이름의 우리에게도 있다. 만약 지금의 사회적 공분이 2016년에도 존재했다면 악순환을 미리 끊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불법촬영 피해자가 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피해자가 누구인지 찾아내는 데 관심이 쏠려있고 존재하지도 않는 ‘정준영 동영상’을 검색한다. 2차 가해가 무분별하게 이뤄졌다. 자의적인 잣대로 이슈의 경중을 나누고선 ‘이슈가 덮인다’고 야단했다. 또, 이번 사건을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승리와 정준영 등 카카오톡 대화방 멤버들만의 특별한 일로 여기는 시선도 포착된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예외가 아니다. 


이번 사태가 명징하게 보여주는 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 도구화 현상이다. 누구도 그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국 곪고 곪았던 문제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그저 KBS를 비난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승리와 정준영 등을 연예계에서 제거하는 선에서 멈춘다면 결국 제2, 제3의 승리와 정준영이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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