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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광주 온 전두환을 대하는 광주 시민들의 자세

당당한 표정으로 법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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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9시 5분 제주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광주로 향했습니다. 기상 여건 때문에 지연 가능성도 있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비행기는 제시간에 제주 공항을 이륙했고 무사히 광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광주 공항에서 시내까지 공항버스가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2019년 1월 1일부터 운행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결국 택시를 타고 광주지방법원으로 향했습니다. 


광주지법에 도착하니 정문이 아닌 후문 쪽에 취재진이 몰려 있었습니다. 날이 날이니만큼 대한민국 대부분 언론사의 취재진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법원 옆 도로에는 방송국 차량이 빼곡히 서 있었고 지미집까지 설치돼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헬기와 드론이 떠 있었습니다. 전두환씨에 대한 취재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었습니다.

32년 만에 광주 찾은 전두환의 첫마디 “왜 이래”

전씨를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던 12시 30분, 전씨가 탄 차량이 법정으로 들어왔습니다. 현장에 있던 기자 대부분이 그가 1시 넘어서야 법정에 온다고 예상했던 만큼 전씨의 법정 출석 시간은 빠르고 순식간이었습니다.


광주지법 후문 입구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전씨는 “5·18 당시 발포 명령을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고 대답했습니다. 32년 만에 광주를 찾은 그의 첫 마디였습니다. 이어 그는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건가”라는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법원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이날 전씨의 모습은 알츠하이머 환자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건강해 보였습니다. 특히 전씨는 기자의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나 짜증 난 표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87년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개막식에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했던 전씨는 32년 만에 형사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에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모습은 여전히 당당했고 미안함이나 사죄를 표하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두환 물러가라” 외친 광주 초등학생들

광주지법 후문 도로 건너편에는 동산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전씨가 오기 전부터 동산초등학교 학생들은 창문 밖으로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쳤습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과 시민들은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치는 초등학생들이 신기한 듯 쳐다봤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본 5·18 광주민중항쟁 유가족들은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이 죽으면 여전히 광주 시민들은 폭도나 빨갱이로 몰릴 텐데, 저 아이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저 아이들이 어떻게 전두환씨를 알고 있었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엄마,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겠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진실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아이들과 함께 광주지법을 찾은 아버지. 아이들에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다.

전씨의 재판이 열리는 광주지법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광주 시민도 있었습니다. 한 남성에게 아이와 함께 광주지법을 찾은 이유를 물었더니 ‘광주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전두환씨가 법정에서 광주 시민들에게 진실된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이날 전씨의 사과는 없었습니다.

한과 분노, 울분이 함께 터진 3월 11일 

▲ 전씨는 재판이 끝난 뒤 몰린 취재진과 광주 시민에 쉽사리 승용차에 탑승하지 못했다.

1시간 15분간 진행됐던 재판을 마친 전씨는 오후 3시 45분 무렵 법정 입구에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후문이 아닌 정문이었습니다. 그 탓에 후문에 있던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헐레벌떡 비 오는 법원 경내를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전씨가 법원 계단 앞에 대기하던 차량을 향해 내려오자 취재진과 시민들이 갑자기 몰려들었고, 전씨는 차에 타지 못하고 잠시 이리저리 밀려났습니다. 이때 전씨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표정에서 굴욕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 전씨가 탄 승용차를 막아선 광주 시민들과 유가족. 이날 전씨가 탄 차량은 한 시간 가까이 법원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간신히 차에 탑승한 전씨는 쉽게 법원을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광주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전씨가 탄 차량을 막아 섰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전씨가 탄 차량을 향해 피켓을 흔들고, 욕설을 퍼붓고, 물병을 던졌습니다. 또한, 전씨의 차량이 빠져나갈 수 있게 유가족들을 막는 경찰을 향해 ‘왜 학살자 전두환을 막지 않고 우리를 막느냐’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전씨가 탄 차량은 무려 1시간 동안 광주지법에서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의 도움을 받자 그제야 간신히 서울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전두환이 떠난 자리, 광주 시민들은…

▲ 전두환씨가 떠난 후 광주지법 앞 도로에 있던 쓰레기를 줍는 광주 시민들

전씨가 떠나자 광주지방법원 앞에 있던 시민들은 전씨를 향해 뿌렸던 유인물과 땅에 떨어진 피켓, 찢어진 우비 등의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을 텐데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피켓이 부러졌다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니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어쩌면 광주 시민들은 전씨가 3월 11일 하루 광주에 왔다고 해서 아픈 역사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온종일 광주에 있으면서 느낀 감정은 바로 한(恨)이었습니다. 유가족은 자기 자식을 죽인 학살자가 왜 저리 멀쩡하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가슴속에 맺힌 울분을 풀어내지 못해 숨쉬기도 버거워 보였습니다. 


전씨에게 이날은 굴욕의 시간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에게는 투쟁의 재시작을 알리는 분기점이었습니다. 1980년 시작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씨는 오는 4월 8일 2차 공판을 위해 다시 한번 광주를 찾아올 예정입니다.

* 외부 필진 아이엠피터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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