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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생전에 남긴 혐오들

분명 그는 위대한 디자이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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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샤넬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1933~2019)가 2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샤넬은 곧바로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비르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 부수석 디자이너가 승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패션계에 가히 혁명적인 존재였던 만큼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의 대단했던 컬렉션들은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 살아 숨 쉴 것이다. 또한 그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패션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분명 그는 위대한 디자이너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까? 그렇지 않다. 위대했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그 화려했던 이력만큼이나 패션계에 길고 긴 그림자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른바 ‘Fat-phobic’ 또는 ‘Fat-Shaming’이라고 일컬어지는, 소위 규범적 외모를 벗어나는 여성에 대한 조롱과 혐오 및 스키니한 여성 모델에 대한 정당화를 일평생 추구하면서 이를 하이패션계의 표준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미소지니스트라 할 수 있으며 그가 만들고 유지시킨 트렌드는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트렌드에 쏟아지는 지적에 대한 칼 라거펠트의 생전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지난 2009년 독일의 잡지 <포쿠스>(Focus)와의 대담에서 “사람들이 마른 모델이 걸친 옷을 더 선호할 뿐이며, 마른 모델을 욕하는 여성들은 텔레비전 앞에 널브러져 감자칩이나 씹어대는 뚱뚱한 여자들뿐이다”라는 이야기로 스키니한 모델을 고집하는 본인의 견해가 그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비롯됐을 뿐이며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은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또한, 그는 본인이 창조하고 유통시킨 유행으로 인해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다는 지적(‘칼-라거펠트 다이어트’라는 개념이 서구에서 한때 유행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에도 “프랑스에는 거식증 여성은 통계적으로 고작 1%이지만, 무려 30%가 넘는 비만 여성들이 있는데 대체 무엇이 더 문제라는 것인가”라는 말로 언론들의 지적을 일축했다. 난민에 대한 비난이나 성추행 디자이너에 대한 옹호 등은 솔직히 덤이다. 


재능은 뛰어났을지 몰라도 이렇게 소수자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했던 칼 라거펠트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자니 공교롭게도 3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난 언어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가 겹쳐 보이는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 또한 ‘그리스도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코란을 배척할 수 없다’는 명언으로 사회적 정의 전사들을 명쾌하게 무릎 꿇리는 등 PC 세력과 대립했지만, 그런데도 스스로 평생 민주주의 수호와 인권 보장에 앞장서 행동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좌), 칼 라거펠트(우)

많은 재능 있는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은 결국 나의 재능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가이다. 둘 다 재능이 넘치는 르네상스인이었던 칼 라거펠트와 움베르토 에코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은 이 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라거펠트는 본인이 패션을 창조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유행시켰으나 이로 인한 그림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에코는 이러한 그림자를 먼저 들여다보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패션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에게 21세기형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권 의식까지 장착돼 있기를 우리가 맹목적으로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자신의 힘에 대해 되돌아보기를 바라는 것까지도 너무한 것이었을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칼 라거펠트는 일생을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인한 논란에 시달리며 지냈으나 결국 그의 뒤를 이은 비르지니 비아르 역시 여성이라는 점이다. 칼 라거펠트, 당신이 그저 위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 외부 필진 힝고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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