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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혼전순결주의자'였다

조회수 2019. 2. 21.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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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전만 해도!

중학교 때의 나는 혼후관계, 그러니까 ‘혼전순결주의자’였다. 결혼도 전에 ‘그걸’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건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랑만 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학생이여, 웰컴 투 더 뉴월드!

출처: ⓒMBC <라디오스타> 캡처

고등학생의 나도 ‘혼전순결’을 지향했다. 하지만 과연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사랑하고 미래를 함께할 사람과만 관계를 갖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인터넷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의 글쓴이는 연인과의 성관계 고민을 토로했고 댓글은 조언으로 가득했다. 가끔은 ‘대학생 10명 중 X명 성 경험 있다’와 같은 제목의 뉴스 기사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자 신세계가 열렸다. 학교 커뮤니티의 연애상담 게시판에는 ‘19금’이라는 말머리가 있었다. 페이스북 대나무숲(익명 커뮤니티)에서도 괜히 뒤를 경계하게 되는 제보 글들을 꽤 볼 수 있었다. 이런 엄청난 상황에 잠시 적응을 못 하기도 했지만, 내가 너무 온실 속에서만 자란 걸지도 몰랐다. 하기야 학창시절에 연애라는 것을 익숙하게 접해보지도 못했거니와 보수적인 천주교 고등학교에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나는 곧 내가 대학 입학 전 6년을 우물 안에서만 보냈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애인과의 관계 시기는 언제쯤이 좋을지, 어떻게 해야 상대를 더 만족시킬 수 있는지 등등 나는 대학에서의 첫 학기를 아주 새로운 정보들을 탐닉하며 보냈다.

신세계는 모니터 속에만!?

하지만 짜릿한 신세계는 인터넷 속에만 존재했다. 내가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섹스 이야기는 술자리에 간혹 있던 음담패설뿐이었다. 특히 애인이 생긴 뒤에는 답답함을 크게 느꼈는데 주변 친구들에게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대학에서 여러 사례를 접하며 섹스가 나쁜 게 아니란 걸 알게 됐고 혼전 관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려웠다.


어느덧 내 방엔 애인의 칫솔과 옷가지가 놓였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는 걸려있던 그의 옷을 옷장에 잘 개어 넣었고 칫솔도 서랍 구석에 넣어뒀다. 애인이 내 집에서 자고 갈 때면 그는 룸메이트에게 댈 핑곗거리를 찾느라 고뇌에 잠기곤 했다. 그의 옆에 누워있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올 때도 있었다. 전화를 받기 전 엄마의 이름이 뜬 수신 화면을 애인에게 보여주면 그는 옆에서 숨죽이며 없는 체를 했다. 이 모든 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단 한 번도 미리 합의한 적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애인의 흔적을 숨기자고 한 적도, 그가 외박하는 이유에 대해 거짓말을 하자고 이야기한 적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당연하게 비밀로 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왜 ‘섹스’를 말하지 못하나

출처: ⓒUnsplash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섹스는 이름도 없이 ‘그거’라고 불린다. 최근 들어 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도 있고 젊은 세대들이 점점 개방적으로 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성과 섹스가 편하게 말하기 어려운 주제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테다. 우리 대부분은 섹스를 통해 태어났고 또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섹스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말을 꺼내기조차 어렵다면 여기엔 분명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분명 더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애인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을 집에 이야기할지에 대해 토론을 했다. 어차피 자취하니 집을 며칠 비워도 부모님은 모를 거다, 그렇지만 말도 없이 여행을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외박은 그냥 하면서 무슨 상관이냐, 외박과 여행은 다르다 등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토론이었다. 하지만 결국 ‘행여나 내가 객사라도 하면 우리 엄마아빠가 내가 왜 거기 있는지는 알아야지!’라는 문장으로 토론은 종료됐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엄마와 전화를 하던 중 애인과 여행을 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엄마 나 오빠랑 부산 여행 갈 거야.”
“부산? 당일로?” 
“아니 1박 2일로.” 
“…. 방은 두 개 잡을 거고?” 
“학생이 돈이 어디 있어. 하나로 해야지.”

큰맘 먹고 한 말이었다. 엄마는 짐짓 태연한 척 손만 잡고 자는 거냐는 농담 같은 진담을 던졌고 나는 천연덕스럽게 그럴 리가 있겠냐고 대답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고 전화는 끊어졌다. 며칠 뒤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걱정되는 것들이 많은데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는단다.


이제 곧 3월이다. 대학에 들어가는 누군가는 나처럼 새로운 정보를 탐닉할 테고 또 누군가는 연애라는 것을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섹스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부모님께 섹스를 했다고 말하는 게 큰맘 먹고 하는 선언이 아닌 사회, 성관계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혼자서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다가 누군가가 물어보면 “응, 나 섹스했는데 왜?”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사회 말이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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