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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권해효가 걸어온 삶이 재평가받는 이유

조회수 2019. 2. 18.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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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배우로만 머물지 않는다.
출처: ⓒ연합뉴스
배우 권해효

작품 속에서 배우 권해효를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가 맡은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칭찬인지 고도의 까인지 헷갈릴 필요 없다. 단언컨대 극진한 칭찬이므로. 권해효는 분명 그 자리에 있었고, 방금 전까지도 거기에 머물렀지만, 굳이 발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애써 자신의 존재감을 강조하지 않고 과시하려 들지 않는다.


작품을 하나의 물줄기에 비유하자면 권해효는 물길을 바꾸거나 유속을 변동시키는 요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존재다. 권해효는 스스로 물줄기가 되기를 선택한 배우다. 처음부터 그런 초연함을 갖기가 쉽진 않았을 것이다. 1990년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로 데뷔한 권해효는 초창기만 해도 ‘한국의 짐 캐리’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의 소유자였다. 다채로운 표정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출처: ⓒSBS <질투의 화신>

배우의 길을 걸은 지도 어느덧 29년이다. 공백 없이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온 권해효가 출연한 작품 수만 해도 100편이 훌쩍 넘었다. 허나 그 수많은 작품 속에서 권해효를 찾는 건 숨은 그림 찾기마냥 간단치 않다. 1990년대 중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카페 주인으로 등장했던 그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효’? 극 중에서 거의 이름을 딴 말장난이 유행처럼 번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KBS <겨울 연가>(2002)에서는 ‘욘사마’ 배용준이 연기한 강준상의 친구로 출연했고 MBC <내 이름은 김삼순>(2005)에서는 삼순이의 둘째 언니 김이영(이아현)과 러브라인을 그려내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서도 권해효를 기억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시청률과 화제성이 높았던 작품들이었지만, 그래서 또렷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권해효는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렸다.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권해효는 금세 사라져 버린다.  


근래에 출연했던 작품들을 살펴보자. KBS2 <빅맨>에서 재무팀장, SBS <딴따라>에서는 예능국장, SBS <질투의 화신>(2016)에선 보도국장, MBC <자체발광 오피스>(2017)에서는 팀장, KBS2 <란제리 소녀시대>에서는 아빠였다. 주인공의 가족·직장 동료로 주변인물화되는 것이 중년 배우들의 숙명이라지만, 그는 감초 연기로 주목받는 다른 배우들처럼 남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출처: ⓒtvN <왕이 된 남자>
“대한민국에서 내가 악역을 할 수 있다는 꿈은 버렸다. 현실이 드라마를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더 나쁜 놈을 어떻게 만들지 싶다. 이 작품은 국가와 권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같다. 질문을 던지는 자의 역할을 맡아 열심히 하겠다.”

2018년 개봉했던 <국가부도의 날>에서도 무능력한 한국은행 총장으로 한시현(김혜수)이 날아오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그래서 tvN <왕이 된 남자>에서 데뷔 20년 만에 악역을 연기하는 그가 새삼 신기하고 놀랍다. 그가 맡은 신치수는 임금 이헌(여진구)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허나 권해효는 오버하지 않는다. 착실히 그의 몫을 연기할 뿐이다. 돋보이는 건 여진구과 김상경이다. 오히려 그가 품은 질문에 주력하는 듯하다.


작품 속에서 배우 권해효가 스스로 물줄기가 되기를 선택했다면 사회 속에서 배우 권해효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역사의 물줄기에 용감히 온몸을 부딪쳤고 유속을 변화시키고 흐름을 바꾸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목소리를 내야 할 곳에서 존재감을 증명했고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도드라지게 행사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했고 목소리가 작은 이들을 위해 소리를 질러왔다.

출처: ⓒJTBC <뉴스룸>

* 권해효는 “지난 적폐 수사 과정에서 검찰 쪽으로부터 연락은 받은 적이 한 번 있다”며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던 사실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사회에 헌신하는 이들을 만나면서 자극을 받고 공부하며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사IN, 권해효가 있어다행이야)

권해효는 호주제 폐지,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안티조선 운동을 비롯해 반값등록금 1인 시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 대추리 평화를 위한 문화인 연대, 세월호 참사 농성 지원 등 여러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배우라는 민감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를 꺼리지 않았다. 게다가 단지 말뿐이었던 게 아니라 행동에 옮겨 왔다.


처음에는 ‘배우가 무슨 사회적 발언이야?’라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대중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일관된 권해효의 진정성이 이끌어낸 변화다. 소셜테이너(socialtainer)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한몫했겠지만, 사실 소셜테이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나간 주인공이 권해효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런 권해효에게 ‘개념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여 줬다. 


최근에는 일본 내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몽당연필의 대표 자격으로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권해효는 어떻게 조선학교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겨울연가>에 출연한 것이 인연이 돼 일본을 방문하면서 재일동포 사회의 중심인 조선학교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만 쏙 빼버려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어 관심과 응원이 절실하다는 그의 말에 절실함이 느껴진다. 

출처: ⓒ연합뉴스

그뿐 아니다. 권해효는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을 통해 독립영화 신인배우를 발굴하고 창작자와 배우 사이의 교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권해효는 이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상금까지 후원했다. 다양한 사회 분야에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업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권해효는 “80년대 대학에 다녔던 이로서 부채의식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방관자 ‘범생이’ 사회참여 늦바람이 무섭다) 대학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마음으로 동조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 권해효는 누구보다 뜨겁게 행동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의 존재감이 다시 한번 빛나고 있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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