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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1992년부터 지금까지, 제1369차 맞이하는 ‘이 집회’

“일본군성노예제 문재 해결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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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 8일 작성된 글입니다. 여기에 최근 소식을 업데이트했습니다.

1992년 1월 8일 첫 시위를 시작하다

▲ 1212번째 수요시위. 소녀상 옆에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 동상이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2015년 12월 28일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일본군 ‘위안부’(여기에 따옴표를 쓰는 이유는 아래 ‘관련 기사’를 참조)합의 이후 전 국민적 분노와 규탄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 간 합의를 계기로 사람들은 이 해묵은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배상 요구가 정당한 요구인 만큼 그것을 짓밟은 이 합의의 부당성을 제대로 따져보게 됐다.


2016년 1월 6일에도 변함없이 수요시위가 열렸다. 당시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의로운 세계 행동”의 일환으로 일본 도쿄, 히로시마, 캐나다 토론토,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뮌헨 등 12개국 45개 지역에서 연대 행동으로 진행됐다. 


이 시위는 1212번째 시위였다. 그 숫자의 크기에 놀랄 일은 없다. 단일한 요구와 주장을 건 최장기 시위로 수요시위는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애끊는 주장이 펼쳐진 시간이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것은 그 당사자들이 화답하지 않는 끔찍한 침묵의 세월이 그만큼이었다는 뜻으로 읽혀야 옳기 때문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최한 첫 수요시위가 열린 게 1992년 1월 8일이다. 바로 24년 전 오늘이었다(2019년 기준 27년). 정작 그 첫 시위에는 주인공인 할머니들은 없었다.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시작된 이 시위는 여성운동가들의 집회였기 때문이다.

▲ 2016년 1월 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연대 수요 집회가 열렸다.

출처ⓒ뉴스프로

2차 대전이 끝난 후 무려 반세기 가까이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일본의 전쟁범죄, 그 끔찍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91년 8월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있었다. (관련 기사: 생존자 80명…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고백, 이후 24년

정기 시위로 발전한 이후 수요시위는 정대협이 주최하고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학생들, 풀뿌리 모임, 평화단체, 종교계 등 시민들의 기획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서 방문한 평화활동가를 포함해 외국인들의 참여도 많았다. 그리고 스물네 해가 지났다. 이 시위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라고 불리게 된 까닭이다.


1,200회가 넘는 수요시위로 점철된 24년. 그것은 전쟁범죄의 당사자인 일본의 침묵과 나라의 구실을 나 몰라라 한 우리 정부의 직무유기로 이어진 시간이다.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다 하나둘 숨져간 동료들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삼켜야 했던 할머니들이 인고로 삭여온 시간이다. 


그러나 정작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기까지는 그것을 밝힌 24년보다 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1945년 해방을 맞고 더러는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온 소녀’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피해자가 오히려 숨죽여야 했던 시간들, 일본군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시간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했다.


1992년 1월부터 시작된 수요시위는 그러니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갈무리해온 아름답고 경이로운 용기와 희망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이들이 겪었던 고통과 통한의 세월로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그 오욕의 역사, 인류사적 범죄를 확인하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자 한 날이었다. <제이티비시(JTBC)>의 ‘내일’이 지적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1212차 수요집회까지
그녀들은 ‘과거’를 물은 게 아니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여성과 약자를 어떻게 착취하는지
전쟁하는 국가를 왜 반대해야 하는지
그녀들 삶을 통째로 희생해
우리에게 ‘미래’를 묻고 있는 것이다.

- <제이티비시(JTBC)>의 ‘내일’(2016.1. 7.) 중

졸속 합의, 정치적 담합

그러나 지난 세밑에 한일 정부 사이의 합의는 그저께 수요시위 참여자들이 성명서에서 밝힌 대로 “24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요시위에서 외쳐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한 채, 졸속합의와 정치적 담합으로 끝나버렸다.”


양국 정부 간 합의에 정작 피해자의 목소리는 없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한 합의라고 강변하고 일본에는 ‘국제사회에서의 비판과 비난 자제를 약속’했다. 이는 ‘정치적 담합’으로 끝난 이 협상을 피해자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가해 행위’로 규정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38명이다. 그건 물론 피해자 전체 숫자가 아니라 고통스런 과거를 마주하겠다는 용기를 낸 할머니들의 수효일 뿐이다. 수요시위가 1212회에 이르기까지, 24년이 흐르면서 통한을 안고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이 192명이다. 살아계신 할머니는 46명이지만 이들의 평균 연령은 89세고 아흔이 넘은 이들이 20명이나 된다. (2018년 12월 기준 생존자 25명) 


더 이상 문제 해결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이유다. 가까운 시일 안에 그걸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을 수 없다. 89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앞장서기 딱 좋은 나이’(이용수 할머니)라는 할머니들의 의지가 여전하고 전쟁 범죄를 규탄하고 인권과 정의를 추구하는 여론과 세계적 연대는 굳건하기 때문이다.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낮 12시 정각에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립니다. 참가하실 분들은 사전 참가신청 없이도 시간에 맞춰 오시면 됩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 단체 참가 방명록 작성과 자유발언 순서 참여 신청이 가능하며, 수요시위 주관을 희망하실 경우 미리 정대협으로 연락주세요.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3호선 안국역(6번 출구)이며, 5호선 광화문역을 이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누리집'에서

한 번이라도 수요시위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은 늘 생각에 그치기만 했다. 교사 정년퇴임을 하는 3월 이후에는 언제 맞춤한 시간에 상경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시위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시간을 다시 아프게 상상해 본다.

2019년 오늘

윗글을 썼던 2016년으로부터 3년이 흘렀다. 수요시위는 계속되고 있지만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수요시위를 시작했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조직과 사업을 통합해 운영하기로 하고 2018년 7월 조직의 명칭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바로 가기)로 정하고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뒤 2016년 6월 정부는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으로 여성가족부 산하에 화해 치유재단을 설립했다.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들은 정부 조치에 즉각 반대했고 학생들은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이제 25분만 남았다

그리고 2017년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퇴진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3년여에 걸친 투쟁의 결과로 정부는 2018년 11월에 화해 치유재단 해산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합의 폐기는 이뤄지지 않았다.

▲ 2019년 1월 2일, 제1368차 수요시위는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주관으로 열렸다.

출처ⓒ정의기억재단

2016년에 피해자 할머니 46분이 생존해 있었지만, 2018년에만 8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25분밖에 남지 않았다. 소녀상 농성 공동행동이 농성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정의기억연대가 화해 치유재단 해산 절차를 진행하라고 촉구하는 이유다.


2019년 1월 9일에는 1369차 수요시위가 열린다. 매주 차수를 더하는 수요시위는 언제쯤 종료될 수 있을까. 한일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인한 과거사 갈등이 군사 분야로까지 번지면서 한일관계가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 2019년 현재, 시야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2016년 2월에 학교를 떠나 얽매이는 일상에서 벗어났건만 수요집회에 참석하겠다는 다짐을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두어 차례 서울에 들렀을 때마다 다른 일이 겹치고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다. 올에는, 하고 마음을 추스르지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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