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통합진보당 해산은 ‘민주주의’를 위한 일이었을까?

4년이 흘렀다.
직썰 작성일자2018.12.29. | 100  view

▲ 정당해산 결정이 난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에서 이정희 통진당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source : ⓒ민중의소리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2013년 정부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인용(해산)했다. 헌재는 재판관 8(인용) : 1(기각)의 의견으로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그 소속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정부가 위헌 정당 해산제도에 따라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고 헌법재판소에서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것도 최초였다. 제1공화국 시기에 진보당이 정부의 처분으로 해산됐지만, 통합진보당은 불운하게도 위헌 정당 해산제도에 따라 해산되는 첫 정당이 됐다.

헌재 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결정

사상 초유의 결정이 내려진 이 심판 사건은 이른바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으로 비롯됐다. 이는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가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모임(2013년 5월, ‘RO회합’)에서 ‘한반도 전쟁에 대비해 국가 기간시설의 파괴를 위한 준비를 하자’는 등의 발언을 했다”며 이 의원을 내란음모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었다.


이 사실이 처음 보도될 때만 해도 실소를 일으키는 이른바 운동권의 시대착오적 만용 따위로 이해된 이 사건은 국정원에 의해 증폭되기 시작했다. 국정원은 지하혁명 조직(Revolutionary Organization, RO)이 대한민국 체제전복을 목적으로 합법·비합법, 폭력·비폭력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른바 ‘남한 공산주의 혁명’을 도모한 사건으로 이석기 등을 검찰에 송치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 전에 언론에 샅샅이 공개된 이른바 ‘회합 녹취록’은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의도적으로 오녹취해 가공됐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국의 자료를 충실히 베껴 써놓고도 언론은 사후에 이를 제대로 바로잡지 않았다. 


이석기의 혁명조직 RO가 북한과 연계해 내란을 음모했다는 설은 검찰의 공소장과 법원 판결에서 분명하게 부정됐다. 그러나 이 ‘북한 연계설’ 보도도 역시 바로잡히지 않았다. 결국 내란음모의 전제가 되는 핵심 근거가 부정돼 내란음모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됐지만, 이석기 전 의원에게는 내란선동죄로 중형이 선고됐다.

▲ 수원지법에서 열린 통진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2014.2.3.)

source : ⓒ연합뉴스

2013년 9월 검찰이 이석기 등을 구속기소하면서 사건은 가파르게 치닫기 시작했다. 11월 5일 국무회의는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 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의결하고 헌재에 통합진보당의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2014년 2월 17일 1심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징역 4~7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8월 11일 서울고등법원의 2심 재판부는 내란죄를 저지르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이석기에게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1심보다 형을 낮춰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이석기 등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한 이후 헌법재판소는 심판 청구가 이뤄진 지 409일 만인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그 소속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심판 결정의 주문은 두 문장이었다.

1.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2.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 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이석기는 의원직을 상실한다.

청구를 인용한 의견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강일원, 김창종, 서기석, 안창호, 이정미, 이진성, 조용호 헌법재판관 등 8명이었다. 안창호, 조용호 헌법재판관은 정당 해산 결정에 대한 불가피성을 피력한 보충의견을 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청구인의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 해산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보았다.

8(인용) : 1(기각), 유일하게 김이수 재판관만 기각

▲ 통합진보당 해산, 소속 국회의원 의원직 상실

source : ⓒ오마이뉴스

또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 결정은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고 위헌 정당의 해산을 명하는 비상상황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으므로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위헌 정당 해산제도의 본질로부터 인정되는 기본적 효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수의 인용 의견과 달리 김이수 헌법재판관만이 기각 의견을 냈다. 김이수 재판관은 정당 해산의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피청구인에게 은폐된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가 없고 피청구인의 강령 등에 나타난 진보적 민주주의 등 피청구인의 목적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경기도당 주최 행사에서 나타난 내란 관련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만, 그 활동을 피청구인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고 그 밖의 피청구인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가 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하자 통합진보당은 정당해산심판에서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는 조항 등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재는 2014년 2월 27일 정당해산심판에서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강제 해산됐고 김미희(성남 중원), 오병윤(광주 서구을), 이상규(서울 관악을), 김재연(비례), 이석기(비례) 등 5명의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공석이 된 지역구에 보궐선거가 시행될 때 피선거권이 제한되지 않았던 김미희, 이상규가 재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헌재의 위헌 정당 심판 결정에 따라 해산되는 원내 정당인 통합진보당을 바라보는 좌우, 진보와 보수의 의견은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보수우익단체는 헌정 파괴 집단에 철퇴를 내렸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고 진보단체에선 내란조작, 공안탄압이라 규탄하기도 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한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사설은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언론이 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역시 엇갈리기는 하지만 두 매체는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잣대로 이 문제를 천착하고 있어 흥미롭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민주주의 저격’

중앙일보는 폭력적 방법으로 체제 전복을 모의한 통합진보당이 우리 사회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헌재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당연한 결정을 한 것으로 보았다. 헌재의 결정을 냉엄한 남북 분단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받아들이면서도 정당 해산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해하는 정당에 대해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극단적 조치라는 점을 우려했다.


중앙일보는 통진당 문제는 표현과 결사의 자유라는 보편성과 남북이 대치한 예외적 상황에서 민주질서 수호라는 특수성의 측면이 충돌하는 경계 지점에서 일어났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결정으로 다양하고 비폭력적인 진보 가치의 표현과 활동이 위축돼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통진당 해산이 법의 판단에 따라 이뤄졌고 정당 활동은 헌정 질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므로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민주질서 수호의 과제는 이제 시민들의 몫으로 남았다며 통진당 해산 결정을 민주질서와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의 논조는 중앙일보와 대척점에 서 있다. 한겨레는 헌재의 결정을 ‘사법사에 남을 큰 오점’이라 규정하면서 그 근거로 통합진보당 등이 대의민주체제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한겨레는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에서 해방된 민주주의의 징표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진보 소수세력에 대한 축출 선언인 이번 결정은 그런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것으로 판단했다. 


정당의 해산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헌재는 당 강령 등에선 그런 위험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진정한 목적’이나 ‘숨은 목적’을 추정해보면 그런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산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특히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해산과 의원직 상실까지 결정한 것은 헌법적 판단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월권으로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관용과 상대성의 민주주의 정신을 스스로 부정한 상처는 오래 남을 것이라며 이는 헌재가 자신을 자해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를 저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두 매체 모두가 민주주의를 전제로 논리를 개진하고 있지만, 그 결론은 명백히 갈라진다. 한쪽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고육책이라고 본 데 반해 다른 쪽은 ‘민주주의를 저격한 결과’라고 본 것이다. 2015년 연례 인권보고서를 통해 이석기 사건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규정한 국제앰네스티나 ‘자의적 구금’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한 미국 국무부의 의견도 후자에 가깝다.


보수와 진보, 이념적 좌우를 떠나 민주주의를 삶과 사회의 원리로 믿고 의지하는 대다수 시민의 정서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헌재의 결정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휘둘렀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이다. 진실로 정당 해산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이 나라 민주주의는 얼마나 튼튼하고 안전해졌나.

▲ ‘재판 거래’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18.6.1.)

source : ⓒ연합뉴스

헌재 결정 이후 2015년 1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선동’ 사건에 내려진 징역 9년의 원심을 확정했다.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뿐 아니라 6명의 지방의회 비례대표도 의원직을 상실했다. 최근 사법농단 수사 결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이 의원직 확인 소송을 제기해 1심이 선고되자 법원행정처가 그 결과를 몇 가지 경우로 나눠 쟁점과 근거를 검토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법원행정처가 2015년 9월에 작성된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행정소송 예상 및 파장 분석’ 문건에는 재판장에 선고 연기를 요청하고 인용(지방의원직 유지) 판결에 대비해 대응 논리를 모색한 것도 드러났다. 이 밖에도 행정처는 통합진보당 소송과 관련해 당시 하급심 재판장이었던 노정희 현 대법관에게 의견서를 전달해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석기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에 협조한 사건 중 하나였다. 법원행정처 문건은 이를 ‘자유민주주의 수호 판결’이라고 분류해 적시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은 재판부 배당을 조작하면서까지 박근혜 정권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진상한 것이었다. 지난 12월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56개 시민단체, 2만여 명의 시민이 이석기 전 의원을 사법 농단 최대 피해자로 규정하면서 ‘사법적폐 청산! 종전선언 촉구!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를 연 배경이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결정 이후 4년이 흘렀다. ‘내란을 선동’한 이석기 전 의원은 지금 6년째 독방에 갇혀 있다.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그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의원직 상실로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한 지금, 대한민국은, 그 민주주의는 얼마나 더 튼튼해졌는가를 다시 자문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직썰 추천기사>

해시태그

Recommended Tags

#떡볶이

    Top Views 3

      You May Lik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