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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의 '연애대상'이 갖는 특별한 의미

조회수 2018. 12. 25.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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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출처: ⓒKBS 화면 캡처

캐롤은 한 달 전부터 울리기 시작했고 거리엔 사람들이 가득하다. 연말 분위기에 빠질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각종 시상식이다. 누가 어떤 상을 받을지 ‘궁예’하는 건 꽤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12월 22일 <KBS 연예대상>에서 이영자가 대상 트로피를 끌어안게 됐다. 앞으로 다른 방송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이 남아있는 와중에 대상 수상자를 궁예 해보라면 또다시 이영자가 아닐까 싶다. 올해의 코미디언으로, 올해의 대상 수상자로, 그녀만큼 활약한 코미디언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신동엽, 김구라, 전현무, 유재석, 강호동과 같은 남성 코미디언의 존재감은 작년에 비해 다소 희미했고 박나래는 ‘나래바르뎀’을 제외하곤 화제성을 가져가지 못했기에 이영자가 강력한 수상 후보자라고 생각된다. 올 한 해 그녀가 걸어온 행보를 다시 되짚어 보자.

수영복을 입은 이영자

출처: ⓒ올리브TV 화면 캡처
수영복을 입은 이영자

지난 8월 9일 TV 프로그램 <밥블레스유>의 ‘여름 피크닉’편에서 이영자가 수영복을 입고 나온 장면이 화제가 됐다.


시청자들은 해당 장면을 보고 ‘수영복 입은 모습이 귀엽다’, ‘생각보다 날씬하다’, ‘나이를 뛰어넘었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호의적인 시선으로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타인의 몸을 향한 평가이기에 달갑지만은 않다. 한국 사회에선 유독 여성이 수영복을 입으면 너도나도 시선을 던지며 ‘날씬하다’, ‘배가 튀어나왔다’, ‘노출이 심하다’라는 평가를 쏟아내기 바쁘다. 


실제로 이영자는 타 방송을 통해 ‘내 몸이니까, 스스로 더 당당해지자’는 마음에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고 밝혔다. 덕분에 통통한 여자와 나이 든 여자가 수영복을 입어도 자연스럽게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중에게서 나올 수 있었다. 파급력 있는 인물이, 파급력 있는 프로그램에 나와 여성의 몸에 대한 평가적인 시선을 거두도록 장려한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방송가에서, 한국 사회에서 입지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탓에 ‘여성 코미디언’의 발언과 행보에는 힘이 실리기가 어려운 경향이 있다. 그런데도 최대한 본인이 가진 화제성과 입지를 활용해 여성의 몸에 대한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용기 있는 일이었고 대중은 그 용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절절하게 와 닿는 그녀만의 맛 설명 ⓒMBC 예능연구소

출처: ⓒMBC 예능연구소
절절하게 와 닿는 그녀만의 맛 설명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을 본 시청자라면 프로그램의 핵이 이영자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일시적으로 그녀가 출연을 중단했을 때 시청률에 제동이 걸린 적이 있었다. 그녀는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이다.


매회 방영 후 화제를 휩쓸어간 ‘먹방의 신’으로서의 이영자는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게 됐다. 그녀의 먹방은 단순히 대식가로서 ‘많이 먹는 사람’으로만 조명되지 않았다. 매 순간 진심을 다해, 정성스레 설명해주는 섬세한 먹방은 우리가 봐 오던 기존의 투박한 먹방과 달랐다. 이동하는 밴 안에서 매니저에게 음식에 대해 효과음을 넣어가며 열정적으로 맛을 설명하는 부분은 명실상부 모두가 기대하는 장면이다. 


그렇게 먹방 하나만큼은 성별을 떠나 모두가 따라 하고 싶어 하고 무한한 존경을 보내는 이영자가 됐다. <전참시> 전 이영자는 단순히 ‘식탐 있는 여성 코미디언’으로만 소비됐다면 현재는 존경 어린 눈빛과 함께 ‘클라스가 다른 이영자’로 통한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과 같이 ‘신(神)’으로 추앙되는 남성 코미디언 반열에 그녀도 오르게 됐다. 이를 계기로 다른 여성 코미디언들도 존경의 아이콘으로서 국민 MC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을지 모른다. 그녀가 일종의 물꼬를 튼 셈이다. 

달라진 2018년, 여전히 좁은 여성의 ‘노는 판’

태초에 <택시>, <안녕하세요>의 이영자가 있었다. <택시>에서 이영자는 남성 게스트에게 관심을 들이미는 역할을, 게스트는 그런 그녀를 은근 피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역할극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건 여성 코미디언이 할 수 있는 전형적인 개그 코드였다. 다소 부담스럽고, 이성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은 캐릭터로 그려지는 그녀들은 방송에서 ‘개그우먼치고 예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예사다.


반가운 소식은, 이 전형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밥블레스유>에서 이영자는 여태껏 방송에서 보이던 모습과 뭔가 달랐다. <밥블레스유>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절친한 여성들이 모인 프로그램이다. 출연진 간 나이 차이는 나지만 위계서열을 매기는 권위적인 개그는 구사하지 않으며 서로를 향해 여성 비하적인 개그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존중을 전제로 한 유쾌함만이 깔려 있다. 그 속에서 이영자이기 전에 세심한 성격을 가진 ‘이유미’가 보였다.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곁들이는 와중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주기도, 우린 알지 못했던 아기자기한 취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떤 방송에서도 볼 수 없던 이유미, 그리고 이영자 그 자체였다. 


<밥블레스유>는 여성 코미디언을 향한 저평가와 비하적인 개그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여성들만이 모였기에 무의미한 ‘여성 코미디언’ 꼬리표는 사라졌고 ‘사람’으로서 면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 데뷔한 지 어언 27년이 넘은 그녀를 미뤄 봤을 때 여성 코미디언은 다양한 매력을 펼치지 못한 채 정형화된 틀에 맞춰 왔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대중은 새바람을 원한다

2001년 박경림이 받은 한 번과 이번 해 ‘KBS 연예대상’을 제외하곤 2000년대에 들어서 여성 코미디언에게 돌아간 대상은 전무했다. 인재가 부족해서일까 인재를 조명해줄 환경이 부족해서일까.


만약 이영자가 대상을 받는다면 그 의미는 크다. 대중은 계속해서 성적 편견이 담긴 식상한 개그에 불편함과 권태감을 느낀다고 표현해 왔다. 만일 이영자에게 또 다른 대상이 돌아간다면 이젠 새로운 방송 판을 원한다는 대중의 강력한 메시지라 볼 수 있다.    


방송국은 그만 대중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여 여성 코미디언을 더욱 방송가에 불러들여야 한다. 기존 남성중심주의 예능 판에 여성 코미디언을 적극 영입하는 것은 분명 새바람이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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