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희 폭행'으로 다시 보는 빙상연맹 역대급 뻘짓 모음

조회수 2018. 12. 19. 15: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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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빙상연맹이 또 해냈습니다!

* 2016년 2월 12일 직썰에 게시된 글입니다.

여러분 빙상연맹이 또 해냈습니다!

그렇다. 빙상연맹이 기어코 또 뻘짓크리를 터뜨리고 말았다. 2016년 2월 1일 SBS 단독보도에 따르면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015년 사업보고서와 수지결산서 내역 공개를 거부했다고 한다. 2015년 빙상연맹 총 예산 102억 원 중 48억 원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 혈세! 당연히 사용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있는 빙상연맹은 '배째'라며 패기 넘치는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논란은 예상보다 큰 파장을 일으키진 못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올 만큼 큰 사건이 아니어서였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알고 있다. 빙상연맹의 화려한 전적으로 볼 때 이 정도는 그리 대수롭지도 않은 뻘짓이란 것을!

왠지 모르게 설득력 있어...

그렇잖은가. 헛소리도 계속 듣다 보면 웬만한 뻘소리는 그냥 넘어가게 되듯이(대통령님, 주어는 없습니다) 빙상연맹이 그 동안 하도 스펙타클한 뻘짓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셔서 ‘혈세 48억 사용 내역을 공개 안 했다구?!!! 거기 어딘데?! 아 빙상연맹? 아~ 거긴 인정~’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빙상연맹의 빙상짓에 일종의 면역이 돼 있다고 볼 수 있는 셈.


대체 빙상연맹이 그간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판타스틱 쇼크를 선보였기에 이 지경이 된 걸까?

1. 이상화 – 빙속여제 국가대표 탈락하다?!

명실상부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부문 세계 최강자 이상화 선수.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그런 레전드급 선수가 안타깝게도 이번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5차대회와 201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본인이 원해서였냐고? 그럴 리가~


때는 2015년 9월 빙상연맹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 선발규정’을 개정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월드컵 1~4차 대회에서 국내랭킹 1위에 오른 선수는 우선 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우선 선발하더라도 국내 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 참가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그냥 국내랭킹 1위면 별 조건 없이 다음 세계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는데 이젠 국내랭킹 1위더라도 국내 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 반드시 출전을 해야만 국가대표로 선발되게 된 것이다. 마침 무리한 훈련 일정으로 휴식이 필요했던 이상화 선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이번 국내 대회에 불참했고 이에 따라 월드컵5차대회와 2016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프린트선수권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빙상연맹은 즉각 ‘개정 내용을 충분히(?) 공지했다!’며 해명에 나섰으나 확인 결과 이상화 선수도, 해당 에이전시도 관련 내용을 안내 받은 바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아무리 세계적인 선수라 하더라도 규정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단호박 같은 입장을 관철해 국민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재주까지 선보였다.


그러나 월드급 스타는 역시 달랐다. 당사자 입장에서 복창이 터질 만도 한데 이상화 선수는 시종일관 남탓을 시전하던 빙상연맹과 달리 ‘어쨌든 규정을 숙지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며 대인배의 면모를 뽐내 보였다. 아쉽지만 이상화 선수 입장이 그러하다니 더 할 말은 없다 하겠다. (지난 1일, 이상화 선수 없이 치러진 월드컵5차대회에서 노메달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한 건 생략하는 걸로.) 


2. 유영 – 국가대표 하기엔 네가 좀 어리구나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는 피겨스케이팅 신동이다. 헬조선 척박한 땅에 김연아라는 천재가 태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동인데 그 뒤를 이을 인재가 혜성처럼 등장했으니 이 벅찬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참고로 유영이 누구야? 하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 간략히 소개해 드리자면, 올해 나이 만 11살 8개월로 지난 1월에 열린 피겨종합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김연아 선수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운 장본인이다. (김연아 선수 종전 기록은 만 12세) 김연아 선수가 ‘내가 초등학생일 때보다 훨씬 잘한다’고 극찬했을 정도니 그 수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아름다운 스토리는 여기까지. 이런 선수가 해당 우승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국가대표에서 제외되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유? 당연히 빙상연맹 때문이다. 사연인즉 빙상연맹이 올해 1월 종합선수권 대회 종료 후 즉시 개정된 국가대표 선발 기준이 적용되게끔 공표했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만 13세 이하는 국가대표로 뽑지 않게 돼 있었던 것!

아오~! 이걸 진짜!

빙상연맹은 ‘어린 선수들을 지나친 경쟁과 부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매우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13세가 되지 않으면 주니어대회에 출전할 수 없으니 차라리 대회에 나갈 수 있는 13세 이상의 선수만 뽑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에는 마땅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무튼, 진짜 문제는 유영 선수가 국가대표에서 제외됨에 따라 태릉 빙상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인데 월드급 피겨 유망주가 제대로 된 시설에서 훈련을 하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 자체로 어마무시한 손실이었다. 더군다나 국가대표 빙상장이 아니면 딱히 훈련을 할 만한 다른 시설도 없는 한국에서!


그렇게 전국적으로 극딜을 당하던 빙상연맹은 다행히(?) 정신을 차렸는지 지난 달 17일, 긴급 상임이사회를 열어 유영과 같은 빙상 영재에겐 국가대표급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뭔가 아름다운 결말로 끝맺는 듯한데.. 항상 이런 의문이 남는다. 왜 미리미리 지원방안을 마련할 생각은 못했을까? 


참고로 빙상연맹이 위 결정을 내리며 언론을 통해 ‘향후 유영과 같은 빙상 영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훈련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국민들로부터 향후 마련하지 말고 지금 마련하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3. 김나영 – 중학생보다 못한 빙상연맹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08년 아시안 피겨스케이팅 트로피 여자 싱글 2위, 2009년 제63회 전국남녀 피겨스케팅 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부 1위를 차지한 선수로 명실상부 장래가 촉망한, 당시 국내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굳건한 2인자였다. (희대의 천재 김연아 선수의 그늘에 가려 크게 조명 받지는 못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사건의 발단은 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릴 예정이던 COR(Cup of Russia) 대회에서 두 선수가 부상으로 기권을 한 데서 시작됐다. 국내 모든 선수들이 그렇지만, 당시 김나영 선수에겐 세계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아주 절실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온 것이었다. COR에 두 선수가 빠졌으니 신청만 하면 바로 참가할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정작 빙상연맹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더랬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귀인들의 도움을 받아 천신만고 끝에 COR에 참가하긴 했는데, 그 귀인이 누군고 하니.. 바로 김나영 선수 팬클럽 회장을 맡고 있던 중학생 양 모 군과 디시인사이드 ‘피겨스케이팅 갤러리’ 네임드 유저들이었다.


이들은 COR 출전 선수 중 두 명의 선수가 부상으로 기권한 사실을 발견하자마자 빙상연맹에 이 사실을 알렸는데 빙상연맹으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그렇다. 빙상연맹은 생각보다 훨씬 무능했던 것이다. 결국 직접(!) 러시아 빙상연맹에 연락해 대회 참가신청 서류를 갖춰 빙상연맹을 통해 러시아 빙상연맹에 관련 서류를 제출, 단 하루 만에 COR에 김나영 선수를 참가시키는 쾌거를 이룬다. ㄷㄷㄷ. 왜 빙상연맹은 중학생도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말이 나왔으니 한 사건을 더 소개해 드린다. 혹시 빙상연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대한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엔 국제빙상연맹(ISU) 규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게시판이 마련돼 있다. 근데 얼마나 관리를 안 하는지 제대로 된 한국어 번역본도 없고 심지어 2014년에 ISU 규정이 바뀌었는데도 1년 넘게 2010년 ISU 규정집이 그대로 걸려 있을 정도였다.(2015년 8월 SBS에서 취재를 하자 그제야 2014년판 ISU 규정을 업로드해 놨다.)

출처: ⓒ SBS
2014 ISU 규정집을 번역하겠다고 나선 문정중학교 학생들과 방상아 SBS 해설위원. 실력도 출중한 걸로 알려졌다.

그 상태가 얼마나 답답했던지 작년 경기도 용인 문정중학교 학생 4명이 방상아 해설위원의 감수를 받아 2014년 ISU 규정을 직접 번역해 빙상연맹에 무료로 기증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빙상연맹 측은 ‘아직까지 중학생들이 번역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ISU 규정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은 우리 경기인들이 할 일이다’며 아무것도 안 한 양반들이 대체 뭔 자신감에서 나오는 건지 모를 아주 울화통이 터지는 소리를 내뱉고 만다.


(참고로 2010년에도 ISU 규정 한국어 번역판이 없어 대원외국어고등학교 학생 5명이 직접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 이야기까지 하면 여러분 모두 오늘 화병 나서 잠을 못 잘 것만 같으니 이 정도로 생략하겠다.) 


아무튼.. 그렇다. 중학생보다 못한 빙상연맹이다. 사실 이 사건들은 따지고 보면 빙상연맹이 어떤 뻘짓을 저지른 건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했을 뿐이다. ㅎㅎ.

4. 장수지 – 국제 룰보다 우리 규정이 우선이야!

2012 유스 올림픽 은메달, 2016 ISU 주니어월드컵 금메달에 빛나는 자타공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망주다. 이쯤 되니 위에 써놨던 걸 Ctrl+c, Ctrl+v 하고 싶은데 이 선수도 이번 국가대표에서 탈락됐다. 누구 때문? 빙상연맹 때문! (같은 말 반복하는 게 귀찮아 말이 점점 짧아진다.)


당시 장수지 선수는 ISU 월드컵5차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3위의 성적을 거두며 무난하게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여자 장거리 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총 5명을 뽑으니 뭐 천재지변이 일어나지만 않으면 당연하다시피 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천재지변보다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바로 빙상연맹의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멜로디는 보너스

사연인즉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따르면 장수지 선수는 1,500m와 3,000m 경기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정한 기준점수를 통과해야만 했는데, 3,000m는 조건을 충족했지만 1,500m에서 빙상연맹이 정한 기준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거였다. 쉽게 말해서 공무원 시험볼 때 각 과목마다 하한 점수가 걸려 있는 걸 떠올리면 되겠다.


근데 문제는 이 황당한 규정이 국내에만 있다는 거다. 국제 룰로 적용되는 ISU 규정엔 그런 엄격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ISU 규정에 따르면 1,500m나 3,000m나 1개 기준점수만 통과하면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다.) 유능한 선수들 못 떨어뜨려 안달이 난 것 같은 빙상연맹. 이 같은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빙상연맹은 이런 답변을 내놓는다. 

“ISU 룰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내 선발 규정이 우선이다.”

ㅎㅎ.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을 지경인데 이어서 이런 말도 했다.

“지금까지 2개 종목 모두 기준 기록을 통과한 선수만이 국제 대회에 출전한 게 관례였다. 내년부터 오해를 막기 위해 대표 선발 규정에 ‘반드시 2개 종목 모두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도록 하겠다.”

그렇다. 관례였다고 한다. 그리고 관례를 잘 확인할 수 있도록 규정에 명시해 놓겠다고 한다. 독자분들 입장에서 ‘보통 그게 잘못된 걸 알면 지우거나 고치거나 그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그렇지 않다. 잊으면 안 된다. 상대는 빙상연맹이다.

5. 이승훈 – 유니폼 사이즈 하나 맞추는 게 그리 어렵더냐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대표 간판스타 이승훈 선수. 그도 빙상연맹의 마수를 벗어날 순 없었다. 세계랭킹 1위에 빛나는 이승훈 선수가 2015년 11월 캐나다 캘거리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실격 처리되며 랭킹 7위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누구 때문에 실격 됐을까~? 빙상연맹? 정답이다.


실격 이유도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데 경기 시작 전 유니폼이 찢어져서였다. ISU 규정에 따르면 유니폼이 찢어진 선수는 자동 실격되게끔 돼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세계 최정상급 선수가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고 0점 처리되는 촌극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8월 ISU가 선수들의 복장 규정을 변경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선수들 간에 몸싸움이 종종 벌어지기도 하는 만큼 스케이트 날에 부상을 입지 않도록 앞으로 유니폼은 모두 특수 소재로 제작, 착용하라는 게 변경된 규정이었다. 문제는 빙상연맹이 이 규정을 알고도(사실은 몰랐다는 의혹도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손 놓고 있었다는 거다. 


빙상연맹은 2015년 10월 30일, 이승훈 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돼 캐나다로 출국한 뒤에야 부랴부랴 네덜란드의 S업체에 특수 소재 유니폼을 제작 주문한다. 하지만 이게 무슨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주문하는 것도 아니고 제작 신청하자마자 바로 나올 리 만무한 그런 아이템이었으니 말 그대로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이었다. 새 유니폼은 제작 기간만 2주에 달하고 배송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당장 대회는 15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승훈 선수가 새 유니폼을 입고 적응훈련(피팅 테스트)을 할 시간이 아예 없었다는 거다.

그래도 여기까진 양반이다. 어찌됐든 사이즈라도 맞으면 그래도 명색이 세계 최정상 선수이니 약간의 핸디캡쯤 어찌 극복해 낼 수도 있겠다 싶은데(물론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거지만) 그마저도 안 맞았다. 그냥 조금 안 맞은 게 아니라 허리를 숙이자마자 부욱- 하고 찢어질 정도로 훨씬 작았던 것이다.


대체 빙상연맹의 무능은 어디까지일까.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으니.. 사과라도 하면 좋으련만 우리 빙상연맹은 그럴 생각이 없었나 보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그들은 이런 해명을 또 내놓는다.

‘우리나라만 늦게 주문한 게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다 그때쯤 해서 주문했다.’

그러니까 다른 애들도 다 비슷하게 뻘짓했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소리다. 왠지 모르게 설득력 있는(?) 변명 같지만, 이것도 SBS 취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네덜란드 S업체 측에 문의해 보니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늦게 주문을 했고 너무 촉박하게 신청한 터라 의아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ㅎㅎ. 참으로 빙상연맹스러운 결말! 이젠 화가 나지도 않는다. 

6. 안현수 – 세계 최정상급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하기까지

레전설 김동성과 용호상박을 이루는 대한민국이 낳은 쇼트트랙 슈퍼스타다. 물론 낳기는 한국이 낳았는데 지금은 러시아 부모님 슬하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왜 그렇게 됐냐고? 다 같이 외쳐보자. ㅂㅅㅇㅁ!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빙상연맹도 할 말이 많다. 다들 알다시피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에 귀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팀 내 파벌과 열악한 훈련 환경 때문이었다. 안현수는 2010년 12월 성남시청 쇼트트랙팀이 해체되며 사실상 집을 잃은 신세가 됐는데 하필 그때가 성적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라 새로운 팀을 구하지도 못했더랬다. 그러다 2011년 4월 16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태극마크를 다는 데도 실패하고 만다.(4위 안에 들어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한국 쇼트트랙 전설급 국가대표로서의 화려한 막이 저물 즈음 러시아에서 아주 달콤한 제안이 들어온다. 러시아로 귀화하기만 하면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수준의 훈련 환경을 지원해 주겠다는 아주 파격적인 내용의 제안이었다. 마침 빙상연맹에서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고 있던 때였는데 타국에서 운동선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니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안현수 선수는 결국 빅토르 안이 되는 걸 택한다. 


빙상연맹이야 뭐 ‘아니 본인이 선택한 걸 갖고 어쩌라구?’라며 내내 둘러대기 바빴지만, 대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연맹에선 뭘 하고 있었느냐는 질타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더군다나 안현수와 같은 인기종목 세계 최정상급 선수가 이럴 정도면 다른 빙상스포츠의 훈련 환경은 어떠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거였다. 첨언하자면, 당시 안현수 선수의 귀화가 결정됐을 때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재능 있는 자국 선수들을 조금만 고장 나도 버리는 장난감처럼 대한다.”

아주 열이 뻗치는 발언이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안현수가 귀화를 선택했을 때 빙상연맹에서 그를 붙잡기는커녕 오히려 러시아 빙상연맹 측에 전화를 걸어 ‘그 선수 문제가 많은 선수니 귀화 받지 말아라.’라고 앞길이 창창한 선수 뒷담화나 할 지경이었으니 말 다한 거 아니겠는가.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가 끝난 직후였다.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 국기를 달고 금메달을 거머쥔 것이었다.(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신다운과 이한빈은 해당 경기에서 실격 처리됐다.) 국민들은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와 같은 민족의 인간승리 역사를 맞이하는 감동이 교차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빙상연맹 홈페이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에 이른다. 게시판엔 온통 빙상연맹을 향한 비난 글로 도배되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날 밤 빙상연맹 서버가 마비되고 만다. 그런데 여기에도 숨은 반전이 있었으니, 단순 트래픽 과부하로 서버가 마비된 줄 알았는데(실제로 빙상연맹도 트래픽 과부화 때문에 마비됐다고 해명했다.) 네티즌들의 집요한 수사 결과 빙상연맹 홈페이지가 마비된 건 트래픽 과부화 때문이 아닌 빙상연맹이 직접 홈페이지 소스코드를 삭제해 버렸기 때문인 걸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이걸 짤 하나로 요약하자면 대략 이런 거겠다.

ㅂㄷㅂㄷ

참고로 홈페이지 마비사태가 일어난 지 일주일쯤 지나서 한 해커에 의해 빙상연맹 홈페이지가 털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관리자 계정 비밀번호가 1234567890이었다고 한다. 정말 빙상연맹스러운 비밀번호가 아닐 수 없다.

7. 김연아 - 개천에서, 아니 하수구에서 용나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스포츠 스타!

피겨의 여왕!

그러나 빙상연맹!

(이제 쓰는 내가 지겨울 정도)


다들 주지하다시피 김연아가 빙상스포츠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한 대한민국에 태어나 세계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선수로 거듭난 건 말 그대로 기적의 미라클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 자체가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스포츠이기 때문인데, 고가에 달하는 피겨 장비들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링크장 대관 등 훈련 비용이 만만치 않아 사실 국가적인 지원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낼 그런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김연아 이전의 피겨 챔피언들은 모두 선진국 출신이었다는 걸 기억하자!)


아니, 그러면 전용 피겨링크장 하나 없는 한국에서 국가지원금 한 푼도 받지 않고 김연아가 어찌 성공할 수 있었냐고? 바로 그 뒤엔 김연아 선수 어머니의 헌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김연아 선수는 가정 형편이 넉넉지만도 않아 훈련 내내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고 훈련할 공간이 없어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실내 링크장을 떠돌며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아무튼 각설하고 김연아 선수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건 200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 마오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부터인데, 이때 김연아 선수가 겪은 그간의 눈물 나는 스토리가 알려지자 ‘아니, 이런 대단한 선수 지원 안 하고 뭐했냐!’면서 빙상연맹은 또 한 차례 극딜을 맞게 된다. 마침 빙상연맹도 할 말이 있었는지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도 지원할 만큼 했다!’면서 맞섰는데 확인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얼마를 지원했냐고?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약 4억 3천여만 원을 지원했다. 1년에 5천만 원 정도. 참고로 이때 라이벌 아사다 마오는 1년에 몇백억 원 수준의 지원을 받고 있던 터라 빙상연맹의 저 해명은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 했다. 


게다가 빙상연맹은 지원 여부와 관계 없이 선수들이 받은 상금의 30%를 의무적으로 떼가는데 당시 김연아 선수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연맹에 납부한 돈보다 지원금이 턱 없이 적어 국민들은 빙상연맹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걸 자랑이라고 내뱉었는지 국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2015년 국정감사에서 빙상연맹이 선수들의 포상금에 대해 초과 원천징수를 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그 금액이 2014년에만 1억 4천여만 원에 달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저 초과 징수 대상자에 당연히 김연아 선수도 들어가 있었다.

......

사실 김연아 선수가 얼마나 갖은 고초를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는 대충 인터넷에 몇 번 검색만 해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나보다 독자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아래 짤 하나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이만 생략하겠다.

ㅎㅎㅎㅎㅎ 역대급 밸런스 인정

나는 진심으로 빙상연맹을 응원한다

알고 있다. 이렇게 길게 까놓고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면 좀 웃기다는 거. 하지만 진심이다. 나는 빙상연맹을 응원한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빙상연맹도 조직 운영이 녹록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출범 이후 만성적인 재정난과 인력난에 시달려 왔다고 하니 어찌 보면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유수의 빙상스포츠를 국민에게 널리 알린, 나름 능력 있는 단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잘못한 일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어느 조직이나 실수를 하고, 미흡한 사후 대처로 욕을 먹기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이 그때마다 손가락질을 하는 건 분노를 해소할 어떤 대상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음 번에는 그러지 좀 말라는 절실한 애증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기에 빙상연맹은 국민들의 질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단지 그것뿐이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이 부디 열악한 환경 탓에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더 좋겠다. 그러려면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한다. 빙상 스포츠 팬들의 관심과 아낌 없는 후원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앞으로의 빙상연맹의 행보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우리 좀 잘해 보자.

(관련기사: 영웅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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