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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남자가 본 일베 '여친 인증 사건'의 진짜 문제

일베 폐쇄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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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일간베스트저장소 게시판 캡처

11월 19일 새벽 일베 게시판에 '여친 인증' '전 여친 인증' 따위의 제목으로 특정 여성들을 불법촬영한 사진이 연속적으로 유포됐다. 게시물을 발견한 민간 여성들이 국민청원 등 공론화를 시도하며 이른바 '일베 불법촬영' 사건을 수면 위에 올렸다. 그러나 일베에선 "처벌 피하는 방법"이 다시 공유되는 등 이를 비웃는 듯한 행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또 일베다.


명절엔 여성인 친척을 불법촬영한 사진이 올라온다. 군 복무 기간 중의 성 매수 경험이나 후임에 대한 가혹행위 경험은 마치 무용담처럼 올라온다. 여학생들이 많은 고등학교에 가서 납치를 하고 강간을 하겠다는 범죄예고도 놀이처럼 올라온다. 끊임없이 ‘김치녀’ 담론이 재생산되는 바로 그곳, 일베 이야기다.


평소 일베의 행각이 행각이었으니 나에게 이번 사건은 전혀 새롭지는 않았다. 더불어 남성 동성 사회(homosocial)에서 꽤 오래 지낸 나는, 이 문제가 단지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단언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남성들 사이 소위 '강간문화'*에 무뎌진 것일지도 모른다.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나 대중문화 등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레베카 솔닛)


이번 사건을 직접 다루기에 앞서, 내가 남성 동성 사회 안에서 겪은 일들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를 뺀 학창시절을 모두 남학교에서 보냈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본 것들, 인터넷에서 본 것들, 페미니즘을 접한 뒤 공부를 하며 알게 된 것들을 통해 나는 내 경험이 매우 일반적인 남성의 경험임을 깨달았다.


나는 학창시절에 종종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이나 조롱을 들어야 했는데, 이는 공부나 운동과는 무관했다. 오히려 나는 운동을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요소보다 선행하여 남성성의 유무를 결정하는 요인은 바로 여성에 대한 성적 선호였다.


나는 여자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게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이를 ‘해명’하랍시고 자기들 앞에서 ‘야동’을 보고 자위를 하라는 제안까지 받았다. 아무 맥락도 없이 기회가 있으면 여성과 섹스를 하겠냐는 질문에 무조건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듣기도 했다.

남성다움을 상징하는 단어는? 정력, 복분자, 근육, 전립선

출처KBS '1박2일' 캡처.

어떤 남학생은 전쟁이 나면 자기는 어차피 죽을 테니 반드시 죽기 전에 강간을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걸핏하면 해댔다. 어떤 남학생은 젊은 여자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칠판에 설치된 화면에 성인영화를 틀고 화면 속 여성의 가슴을 더듬거렸다. 학교에선 단 하루도 "섹스!"라는 외침을 듣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 외침은 일종의 놀이문화였다)


휴대전화에 포르노를 담아와서 쉬는 시간에 공유하는 건 물론이고, 그걸 수업 시간에 자는 척하며 보는 경우도 있었다. SNS에서 불법 촬영물이 유포되었을 땐 네티즌이 단체로 이메일주소를 공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학창시절의 오프라인에서도 전혀 생소한 광경이 아니었다. '화제가 된' 불법 촬영물에 대한 후기와 추천이 오가는 것 또한 물론이었다.


한 남학생은 어떤 여자와 섹스를 한 뒤 본인의 얼굴과 해당 여성의 잠든 뒷모습이 동시에 보이도록 몰래 찍어서 학교에 자랑하기도 했다. 친구가 여자에게 약을 탄 술을 먹여서 “어떻게 해 보려다가” 본인이 곯아떨어졌다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주 가볍고 우스운 농담이나 실패한 무용담으로 소비되었다.



그런데, 대체 여기 어디에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가?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강간문화란 강간이 섹스를 대체해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나온 이야기 중 어떤 것도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학창시절에 들은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 어디에도 ‘여성의 동의’나 ‘콘돔의 사용’과 같은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여자를 따먹으려면 못생겨도 입을 잘 털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들뿐이었다. 콘돔은 앞에 ‘젊은 여자 선생님’이 있는 성교육 시간에 “남자라면 지갑에 콘돔 하나쯤 챙겨 둬야지~”라는 투의 농담을 할 때만 호출될 뿐. 혹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콘돔에 몰래 구멍을 뚫은 ‘썰’이나 ‘인증’이라든지.


섹스로 가장된 성폭력적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주고 받는 것, 포르노를 혼자 소비하는 일을 넘어 본인이 "나 야동 본다"는 사실을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 (젊은) 여성이 있는 곳에서 과시적이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


이러한 행위들의 이유는 이것들이 대체로 ‘용자’나 ‘상남자’ 따위로 인정받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성적으로 모욕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이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남성 동성 사회에선 남성성을 취득하는 지름길이다.


남성 동성 사회 내에서 남성은 "섹스"를 할 기회를 언제든 노려야 할 뿐 아니라 장소도 가리지 말아야 한다. 가령 학교나 학원 내의 후미진 장소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남성들 사이의 농담이나 조언으로 소비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내가 다닌 학교의 어느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의 화장실에도 "떡방"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남자 중학생은 한 명의 여자 학생과 함께 있으면 “사귀냐?” 두 명 이상의 여자 학생과 있으면 “게이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여성을 오직 성적인 대상으로만 봐야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관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나는 남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게 한국의 남성 동성 사회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강간문화다. 이러니 남성성이란 참으로 난감한 성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어쩌면 섹스와 강간의 개념조차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메신저가 막 활성화되던 시기에 나는 학원을 같이 다니는 남학생들의 채팅방(이하 남톡방)에 참여해 있었다. 남톡방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으나, 가장 주된 이야기 중 하나는 명백히 ‘여자 얘기’였다.


소개팅을 해 주겠다며 여성 지인의 사진을 올리거나, 예쁘다며 여성 연예인 사진을 올리거나, 아무 맥락 없이 여성의 살이 많이 드러난 (혹은 여성의 신체가 가슴이나 엉덩이, 다리로 파편화된) 사진을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첫 번째 경우는 제재되기도 하였으나 나머지 경우는 사진을 업로드한 사람이 “좋은 친구”라고 불렸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이길현의 논문*을 인용하며, 디시 인사이드에서 게시물에 아무 맥락 없이 첨부된 포르노 수준의 사진들을 ‘여성의 교환’으로 해석한다.*


실제 여성을 교환할 수 없게 된 이들이 “여성에 대한 포르노 이미지를 교환”함으로써 마치 자신들이 여성을 소유하여 남성성을 보증받는 것과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형제애를 다진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몇 년 간 '남톡방 사건'이 줄을 지어 터진 데서 알 수 있듯, 이는 디시 인사이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성들이 모여 있고 사진 전송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벌어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1)이길현, “우리는 디시 인사이드-사이버 공간에서의 증여, 전쟁, 권력”,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논문, 2010.

*2)엄기호, 「보편성의 정치와 한국의 남성성」, 권김현영 외 5인,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교양인, 2018.


'카카오톡방 언어성폭력 사건을 고발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대학가에 붙은 대자보

출처연합뉴스

그래서 나에게 일베 ‘여친 인증’ 사건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여성이 포르노 이미지나 사진으로 대체되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오직 성적인 의미가 부여된 여성성 기호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있으면 위너가 되는 남성 동성 사회에서 평등한 형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들은 자신의 여자친구까지도 공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성들에게 중요한 건 남성들과의 관계이지 여성이 아니다. 섹스가 중요한 것도 쾌락 때문이 아니다. 여성을 성적으로 지배함으로써 남성들 사이에서 ‘진짜 남자’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평등하고 끈끈한 형제애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성을 담보해 주는 도구로서의 여성성 기호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삼일한"처럼 인터넷 유행어로 소비될 수 있고, 그렇게나 많은 데이트 폭력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데이트 폭력, 특히 그 중 성폭력에는 성관계 중 몰래 콘돔을 빼는 행위인 ‘스텔싱’도 포함되는데, J. Pulerwitz에 따르면 콘돔 사용률의 저하는 관계적 권력의 실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3)Pulerwitz J, et al., ‘Relationship power, condom use and HIV risk among women in the USA’, AIDS Care, 2002. (https://www.ncbi.nlm.nih.gov/m/pubmed/12511212/)


한국의 피임 실천율이 절반에 못 미치고, 그중에서 콘돔 사용은 30%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시사한다.*


남성들 간 형제애 유지를 위해 여성은 동등한 관계가 아닌 여성성의 기호로 존재한다.

출처인디포스트 '시소 위에 놓인 남과 여, 성차별 문제를 꼬집다'

여성을 기껏해야 자신의 잠재적 소유물로 여기는 강간문화 속에서 일베의 ‘여친 인증’ 사건은 (이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심각성의 차이만이 있을 뿐 "소라넷은 어디에든 있다"는 말을 다시 상기시킨다.


소라넷을 폐쇄하고, 일베를 폐쇄하면 이런 일이 사라질까? 흔히 포르노 사이트가 접근이 불가능해지면 그들은 마치 드립을 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개별 사이트의 폐쇄보다 중요한 것은 강간문화의 가시화와 제거이며, 이를 보다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잭슨 카츠의 말처럼,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5)잭슨 카츠, 『마초 패러독스』, 신동숙, 갈마바람, 2017.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운영진

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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