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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외치는 여성이 대학에서 겪은 일

‘백래시’의 선봉에 선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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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메갈리아’의 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갈리아의 등장 이후 여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성 살해, 성폭력, 여성혐오 등 의제를 바꿔가며 대중적으로 공유됐다. ‘메갈리아 웨이브’, ‘페미니즘 리부트’ 등 이 현상을 설명하는 언어들도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2018년은 무엇의 해로 기억될까 

적어도 대학에 한해선 백래시(backlash, 사회적 진보/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발)의 해가 아니었을까.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이 활발하게 공유되는 지금 대학은 안티 페미니즘을 선택했다. 

출처ⓒ연합뉴스

많은 대학에서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폐지됐다. 학내 페미니스트들은 사이버 불링과 사이버스토킹의 대상이 됐고 남성들이 주축이 된 총여 폐지론자들은 자신의 승리를 ‘민주주의의 승리’, ‘갓O대’(갓+대학명)라 부르며 자찬하곤 한다. 한때 진보운동의 주축이었던 대학이 이제 페미니즘 백래시의 선봉에 섰다.


다수가 소수자 대표기구를 강제로 폐지하는 것이 민주주의로 오해되고 있는 현실은 오히려 우리가 민주주의에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학가에 번져나갔던 이 백래시 열풍은 어쩌면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갈 다수의 폭정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8년 한국 대학은 왜 백래시에 점령당했을까? 

다시 한번 차별에 찬성하다

2013년 발간된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차별에 찬성하고 평등을 역차별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일면을 지적했다. 그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고 페미니즘 백래시에 찬동한 다수의 인식적 기반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때도, 지금도 대부분 학생들에게 대학은 스펙일 뿐이다. 학벌을 획득해 차별의 수혜자로서의 삶을 살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은 여전히 차별에 찬성한다. 차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신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결혼과 출산을 도맡으며 공적 영역에서 차별받는 여성, 계급 및 지역적 위치로 인해 학벌이나 능력을 취득하지 못한 ‘지잡대생’, ‘고졸’ 등은 대학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역차별의 수혜자로 호명된다. 블라인드 채용, 지역 할당제, 여성 할당제 등이 그 근거다. 

출처ⓒ매일경제

이들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지방대와 명문대 사이 차별은 능력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한 ‘착한 차별’이다. 더 나은 능력을 갖춘 이가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는 말. 그러나 실상 차별의 기준은 능력이 아니라 성별, 계급, 지역 등이다. 그 요소들이 사회가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역차별에 대한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대학에서 사회적 소수자는 무임승차자일 뿐이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쉽게 정당화된다.

대학 익명 커뮤니티, 백래시의 공론장이 되다

대학 페미니즘 백래시에 기여한 것은 또 있다. <고함20>이 집담회를 통해 만난 학내 페미니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것이 있다.


바로 익명으로 운영되는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이하 학내 커뮤)의 사이버 불링이다. 남성 유저 중심의 학내 커뮤니티들은 페미니즘 백래시가 확산되는 데에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페미니즘 이슈에 있어서 학내 커뮤니티는 남성들 스스로가 다수이자 중심임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오프라인 및 온라인 자보, 공식 토론회 등 실명으로 나서야 하는 공간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문제 제기 및 운동이 시작되면 그에 부정적인 남학생들은 익명 커뮤니티에서 안전하게 서로를 확인하고 여론을 취합하는 식이다. 


문제는 여성들에겐 이와 같이 안전하게 의견을 나누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학내 커뮤는 이미 남성들에게 선점돼 있다. 여성들은 실명을 공개하고 사이버 불링을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만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을 표현할 수 있다. 그나마 총여학생회가 여학생들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그조차 사라졌다. 


페미니스트와 안티 페미니스트의 공적 발화는 그 취약성에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들의 대표자로 나서야 하는 소수 여학생은 학내 커뮤에서 사이버 불링의 대상이 된다. 이를 목격한 나머지 여학생들이 공적 발화를 포기하고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서울의 한 대학에서 페미니스트 여성 대표자는 학내에서 이동하는 자신의 동선이 익명 커뮤니티에 고스란히 게시되는 일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 남학생의 조롱과 인신공격의 대상이 된 해당 여학생은 일상에서도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반면 자신이 다수임을 확인한 남성들은 자신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행동한다. 심지어 한 대학에서는 총여 폐지를 위한 총투표를 공식적으로 발의한 단위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신원이 공개되지 않을 권리마저 남학생에게만 있다. 이처럼 대화의 조건부터 동등하지 않은 대학에서 민주적인 토론과 대화가 가능할 리 없다.

출처ⓒ연합뉴스

민주주의가 대학에 와서 고생이 많다

평등한 대화부터 불가능한 기울어진 대학에서 총투표가 폐지한 총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폭정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보았다. 소수자 대표성을 거부하는 다수결 민주주의는 만인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한다. 다수의 이익을 보호할 뿐이다. 총투표의 결과가 사회적 다수의 목소리를 손들어 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대학 내 성폭력 고발은 무력하고 의지 없는 총학생회에 의해 방치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성평등하다는 착각이 계속된다. 한국 대학에 와서 오해만 받는 민주주의는 과연 언제쯤 소수자 대표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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