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정권에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이 된 씁쓸한 이유

조회수 2018. 11. 26.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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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 just killed a man"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의 그 유명한 가사 “Mama, just killed a man”의 의미를 처음엔 그저 동네 양아치 꼬마가 얼떨결에 사람 하나를 쏴 죽였다는 소리인 줄만 알았다. 나중엔 그 가사가 ‘아버지를 죽였다’ 혹은 ‘엄마의 동거남을 죽였다’라는 의미일 수 있다는 해석 정도까진 들었다.

- ‘엄마, 방금 제가 한 남자를 죽였어요’의 숨겨진 의미, 주간동아

그런데 위 기사에 의하면 저 가사는 ‘자기 안의 남성성을 죽였다’는 의미이고 게이인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커밍아웃한 뒤의 심경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었던 가사의 나머지 부분도 기사의 설명을 읽다 보면 그 의미에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출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 노래가 한국에서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은 그보다 더 허탈하다. 많은 이들은 저 'Mama, just killed a man'이라는 가사 때문에 이 노래가 한국에서 금지곡이 됐다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전쟁에 징집된 소년병이 원치 않는 살인을 한 죄책감을 호소한다고 여겨져 그것이 군사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거나 폭군적인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패륜적인 내용이 군사부일체를 강조하던 유교적 권위주의에 상처를 주고 더 나아가 정권 타도의 메타포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꺼렸다는 것.


하지만 후에 밝혀진 금지곡의 사유는 허탈하게도 노래의 제목인 ‘보헤미아' 때문이었다고 한다. 보헤미아는 당시 공산주의 국가이던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의 일부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빨갱이 나라 지명이 제목에 쓰였다’는 이유로 저 노래는 금지됐던 것이다. 소년병의 애절한 외침이니 유교적 권위주의니 정권 타도의 메타포니 하는 ‘고급스러운’ 이유가 아니라.

생각해보면 많은 이들의 존엄과 생명을 하찮게 짓밟았던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적 지배자들은 알고 보면 딱 그 정도의 지적 수준과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을 걸쳐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 막스 베버의 책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를 가지고 있다가 ‘막스 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불심 검문에 걸려 잡혀갔다는 이야기는 이젠 코믹한 전설로 남았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의.


십수 년 전 개봉했던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기억한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바로 그날 박정희가 죽던 궁정동 안가의 남자들을 그린다. 아내를 잃은 대통령(송재호 분)은 밤마다 젊은 여성을 불러 몸을 더듬고 일본 군가나 엔카를 들으며 시바스 리갈을 깐다. 

출처: ⓒ영화 <그때 그사람들>

‘나라와 각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중앙정보부장(백윤식 분)은 왠지 조만간 팽당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 문제의 술자리에서 중앙정보부장은 똥 마려운 표정을 하고 쉴새 없이 들락거려 경호실장(정원중 분)의 구박을 받는데 그것은 부장이 정말로 만성변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개봉 당시 ‘국가의 위기, 중년의 위기’라는 기사를 쓴 문형준 기자는 그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영감님 위해 열심히 몸바쳐 일하다 간까지 나빠졌는데 이제 슬슬 팽당할 지경이고, 거기에 세상도 답답하고, 거기에 꽉 찬 똥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에라 모르겠다, 권총 빼서 보스 죽이고 세상 한 번 바꿔보자. 만약 김 부장이 평범한 중년이었다면, 그 시기에 늦바람이 났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알고 있는 애인이라곤 박정희뿐 아닌가.”

박정희 가족은 영화가 박정희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며 개봉 당시 가처분 신청까지 걸었었다. 법원은 영화 상영 자체는 허가했지만, 영화 앞뒤의 나레이션을 삭제하라는 조건을 걸었고 문형준 기자는 인용한 기사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박정희가 이렇게 살다 죽었는데, 우리는 이렇게 진지하게 오열하며 그를 추모했다는, 이 다큐멘터리가 앞 뒤에 깔림으로써 감독이 노린 영화적 장치는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과 착각할 이유가 있다’는 이유로 황당한 삭제결정을 내린 대한민국의 무식한 영감님들의 미학적 감성은, 아 차라리 불쌍하다.”

우리의 일상을 짓눌렀던, 보헤미안 랩소디마저 듣지 못하게 했던 군사 정권의 독재는 이렇게 심각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저 질 낮은 조폭질이었을 뿐인데 그 세월에 기생해 호가호위했던 자들의 득세와 그 세월에 짓눌려 으깨진 삶의 무게들은 지금도 묵직하다.


나는 그게 억울하다. 도대체가 존중을 해줄 수 없던 값싼 적들 때문에 손해 본 그 세월이. 공산주의 국가 체코슬로바키아 땅 이름인 보헤미아를 제목에 달았기 때문에 대표곡이 삭제된 채 발매되었던 퀸의 앨범이.

* 외부 필진 이효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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