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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방탄소년단 원폭 티셔츠를 옹호할 수 없는 이유

기념할 것과 기억할 것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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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자그마치 46억 년 동안 단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숱한 사건의 무대가 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억 년 전부터 약 38억 년 전까지의 구간을 과학에서는 ‘후기 운석 대충돌기(Late Heavy Bombardment)’라고 부른다. 큼직한 운석들이 지구와 지구 주변의 행성들을 향해 돌진해 잇따라 충돌했다. 물론 지구의 유일한 위성인 달에도 그 시기에 생긴 흔적이 숱하게 남아있다. 달 표면에 있는 원형의 커다란 자국들이 바로 당시에 일어난 운석 충돌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달보다 훨씬 큰 지구는 더 많은 충돌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지금 지구의 표면이 달과 같지 않은 이유는 38억 년 동안 지구에서 풍화 작용과 판의 이동이 꾸준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충돌의 흔적이 지워졌다. 이 후기 운석 대충돌기의 시기를 목격했다고 상상해보자. 영화 <딥 임팩트>나 <아마겟돈>이 상상을 도와주리라 믿는다. 영화를 토대로 상상을 이어가면 커다란 운석의 충돌을 곧 폭격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지구에 쏟아진 운석들은 지구를 ‘지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섭씨 4천 도가 넘는 고온과 엄청난 압력과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지구를 뒤덮었다. 그 무엇도 이 시기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운석 폭격’의 사건은 역설적으로 지구에 생명의 기원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지각 밖으로 물이 새어 나오고 우주에서 유기물이 대량으로 유입됐는가 하면 당시의 충돌 에너지가 만들어낸 고온과 압력이 여러 물질의 화학적 반응을 촉진했고 결국 지구에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지옥의 끝에서 만들어진 박테리아로부터 여러 형태의 생명체들이 탄생과 절멸을 거듭하다 30만 년 전 즈음 드디어 인류가 지구에 출생신고를 했다.

인류가 출생신고를 하고 30만 년이 흐른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당시 기준 인구 34만 명의 히로시마에 ‘후기 운석 대충돌기’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사건 하나가 벌어졌다. 미국이 인류 최초로 핵폭탄 ‘리틀보이’를 히로시마 중심에 투하한 것이다. 히로시마 외과 병원 상공 580미터 즈음에서 폭발했으니 송파구 롯데월드타워(555미터) 전망대 위치 즈음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상상하면 된다. 핵폭탄이 지면에서 폭발하도록 설계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더 커다란 위력을 발휘해 더 많은 피해를 가하기 위해서’다.  


이 위치에서 리틀보이가 폭발한 직후 섭씨 6천도가 넘는 초고온의 열이 주변의 산소를 만나 화염을 일으키며 사방에 퍼진다. 이 순간 히로시마의 사람들은 하늘에 갑자기 생긴 구 형태의 하얀 빛을 목격했다. 주로 자외선과 적외선 그리고 가시광선으로 이뤄진 이 하얀 빛을 보는 순간 안구가 녹거나 실명한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빛이 번쩍거린 순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뼈가 보였다고 한다.  


우리가 손가락 끝에 레이저 포인터의 빛이나 밝은 손전등의 전구를 접촉시키면 미세하게 혈관이 보이는 이유는 가시광선이 어느 정도 인체를 투과하기 때문인데 심지어 피부와 지방층과 근육층을 통과한 빛이 골격을 비춰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은 리틀보이의 폭발 당시 발생한 섬광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설명한다. 이 ‘최초의 빛’ 직후 뻗어 나온 초고온의 영향으로 폭발 지점 반경 2 킬로미터 내의 인체는 완전히 증발하거나 잿더미가 되며 수 킬로미터 이내의 건물들이 완전히 소멸된다. 

핵폭탄 공격 당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모형. 붉은 구가 핵폭탄이 터진 위치다. 몇 개의 콘크리트 건물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멸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이렇게 뻗어 나간 폭발의 에너지는 중심지로부터 일정 구간의 공간을 일시적 진공상태로 만든다. 이제 이 빈 공간이 주변의 모든 공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그때 폭발의 열과 화염이 다시 중심부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후진한다. 이를 후폭풍이라 한다.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관에 가면 폭발 지점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콘크리트 건물의 벽 일부가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다. 벽은 양쪽 모두 폭발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한쪽은 1차 폭발의 위력에 의한 흔적이 남은 것이고 반대편은 후폭풍이 몰고 온 유리와 건물 파편들이 날아와 처박히며 생긴 것이다. 후폭풍이 중심부로 몰아치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버섯 모양의 구름이 생긴다. 이제 다시 중심부로부터 수 킬로미터 밖을 향해 불길과 파편이 뻗어 나간다. 아주 우연히 후폭풍에도 살아남은 이들을 죽이기 위해 뻗어 나간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설계된 것이 핵폭탄이다.  


동시에 하늘에서 ‘낙진’이라 하는 방사성 물질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기록에 의하면 폭발 지점에서 1.6 킬로미터에 있던 사람 중 8만 명이 즉사했고 이 도시의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 90%가 이날 사망했다. 이때 입은 부상이나 방사능 피폭으로 4개월 동안 16만 6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튿날 미국이 나가사키에 투하한 ‘팻맨’은 7만 명을 즉사시켰고 4개월 동안 추가로 8만 명을 사망하게 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공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방사능 피폭으로 신체의 변이를 겪거나 크고 작은 유전적 결함을 지닌 자녀를 출산했다. 현실의 비극은 우리의 상상력을 언제나 상회하기 마련이다. 성경이나 불경에서 그려내는 지옥이 이보다 끔찍할 리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 인류 최초의 핵폭탄 투하 사건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제국을 완전히 패망하게 했다. 이를 통해 평화를 구축했노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적잖게 있다. 게다가 일본제국의 패망 덕에 조선은 피식민지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피해자의 서사를 통해 이 사건을 관조하듯 바라보면 가해자인 일본제국의 패망과 독립이라는 결과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 ‘만들어낸 지옥’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인류에게 반성의 기회도 각성의 계기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 서서 성실히 고민해야 한다. 당시 미국이 일본에 추가로 네 번의 핵폭탄 투하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과연 당시의 ‘백인’들이 동양인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놓고 핵폭탄 투하를 결정했을까? 무려 수십만 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폭탄을 사용해야만 얻어낼 수 있던 종전과 평화였을까? 


게다가 이 인공의 지옥을 통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가 얻어낸 것은 무엇인가? 만약 비슷한 상황에 다시금 주어진다면 우리 중 누군가가 또 핵무기를 이용해 수십,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흔적도 없이 학살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그에 동의할 것인가? 결코 그래선 안 된다. 인류는 1945년 8월 6일과 8월 7일에 있었던 ‘대폭격기’의 흔적을 지우는 인식의 풍화를 좌시해선 안 된다. 이 시기 이후를 살아가는 인간 모두는 다시는 핵무기의 사용 여부를 고민해선 안 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지옥 따위에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구현한 현실의 지옥을 통해 겨우 얻어낸 독립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며 애국심이라는 문구와 함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이 피워낸 버섯구름의 이미지를 티셔츠에 새기는 것은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 티셔츠를 입는 일이 이 세상에 전쟁 범죄를 일으킨 일본제국의 과거를 드러내는 좋은 방법일까? 그 티셔츠를 입은 아이돌 가수를 둘러싼 논쟁을 두고 일본이 스스로 전쟁 범죄를 저지른 국가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평가인가? 


단언컨대 모두 아니올시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간단한 사고실험 하나를 제안하고자 한다. 운석 충돌이라는 무기를 만들어낸 외계의 누군가가 ‘인류가 지구를 망가뜨렸다’는 판단을 하고 인류의 절멸과 함께 새로운 평화를 위한다며 지구를 향해 운석을 조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당신의 심정은 어떨까? 그 외계의 누군가는 과연 당신을 동등한 우주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일을 벌이는 걸까? 우연히 살아남아 그들 중 하나가 인류를 절멸시킨 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새긴 티셔츠를 입는 걸 본다면 당신은 어떨까? 사고실험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기념할 것과 기억할 것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 외부 필진 최 황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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