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망친 한국의 입시? 정말 그럴까?

조회수 2018. 11. 1. 2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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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에 대한 집착도 문제가 아닐까?

2017년 6월 12일 중앙일보의 기사 내용. SBS <영재발굴단>에서 소개한 한 학생의 그림을 조명하면서 한국의 입시가 천재를 망쳐놓았다는 식의 방송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썩 잘 그린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특기는 만들기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지점토를 이용해 만든 실물 크기의 킹코브라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그걸 보고 징그럽다고 우는 아이가 있을 정도였다.  


미술학원은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다. 그저 그리는 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케치북을 채우거나 점토로 뭔가를 만들었다. 집안 사정이 꽤 나아졌던 고등학생이 됐을 때 나는 미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성적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미술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였다. 진지하게 입시미술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나의 수험생활은 그날부터 시작됐다. 고등학교 1학년의 나는 매일 석고 데생을 하고 정물 수채화를 그렸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즈음엔 조소과에 가겠다고 구체적인 진로를 정했다. 돌이키면 참 고된 시기였다.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간절하게 뭔가를 연습했던 적이 그 이후로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미술 말고도 해야 하는 공부가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밤 10시가 돼 학원에서 나오면 집으로 돌아가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문제집을 펼쳤다. 

11월. 몸이 추위에 적응하려 들 때쯤 수학능력시험을 봤다. 다들 수능을 망쳤다는데 나는 그래도 평소대로 봤던 터라 마음이 후련했다. 다들 그날부터 놀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날부터 미술학원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아홉 시까지.  


지겹고 힘든 일상이었으나 확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자기 자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믿고 실기시험이 펼쳐지는 대학의 체육관이나 강당 같은 곳에 들어가 시간이 짓누르는 현장을 버텨내야 했다. 그렇게 모든 시험이 끝난 후에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면 학원은 숙연해졌다. 모두 어릴 때 그림 꽤 그려서 영재 소리 듣던 친구들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게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갔다. 전국에서 ‘잘 그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작품세계를 펼치는 곳이었다. 


2018년 전국 주요 4년제 미술대학의 정원은 5,824명이다. 요즘은 입시의 모습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위에서 묘사한 20년 전의 모양새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술대학에는 ‘잘 그리고 잘 만드는’ 학생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입시를 통해 조건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한다. 

지겨운 석고소묘라든지 수채화는 빛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 그러니까 밝고 어두운 차이나 관찰자의 위치에 따른 형태의 미묘한 변화 등을 감각하고 표현하기 위한 훈련이다. 색채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 표현하는 대상이 풍기는 분위기를 얼마나 잘 묘사할 수 있는지 역시 이 훈련을 통해 길러진다. 언어의 천재라 할지라도 알파벳이나 한글은 물론 문법을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듯 미술에도 알파벳에 해당하는 기본적 기호들이 있고 문법에 해당하는 장르의 형식이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은 대학에서 연구하게 되지만, 입시를 치르면서 기초적인 소양을 갖추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설계돼있다.


저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한국의 입시가 천재를 망쳤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면서 미대에 들어가고 싶다면 그에 맞는 입시 제도를 따라 밟으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저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이 감당하지 못한 저 그림들을 그려야만 한다.  


입시는 성실함을 담보로 결정된다. 어쩌면 성실함을 평가하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이건 입시를 떠나 작가나 디자이너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작가나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약속된 시간 동안 작업을 완료할 성실함이다. 작가에게 이런 성실함이 없다면 약속된 전시를 할 수가 없을 테고 디자이너에게 이런 성실함이 없다면 약속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할 테다.  


게다가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면서 살아가는 작가나 디자이너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상황에 따라서는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거나 자신의 성향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때도 있고 디자이너라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에 고스란히 따라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긴다. 자기가 잘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고 싶다면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저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의 그림이 특출나거나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중이나 예고, 미술대학에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학생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진부한 표현력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저런 그림을 그리며 신동 소리를 듣던 5,824명이 2018년에 주요 4년제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그보다 많은 그림 잘 그리는 학생들 중 입시를 통과한 학생만 저만큼이다.


물론, 그들 중 천재는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저 프로그램이 발굴한 것은 영재도 아니고 이후에 저 프로그램이 소개한 실패 사례는 수두룩하게 많다. 애석하지만 흔한 사례 중 하나고 흔한 중도 포기자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입시를 악마로 만들면 달라질 게 뭔가?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둔한 사회임을 고백하는 방식을 취하면 달라질 게 뭔가? 프로그램의 권위? 저 학생을 향한 위로? 오히려 우스워질 뿐이다.  


이따금 자기 아이가 특출나다고 착각하는 부모들을 보게 된다. 그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그린다면서 예중이나 예고에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부모들에게 아이의 그림을 보자고 하면 하나같이 거기서 거기다. 나는 그저 그들에게 건투를 빌 뿐이다.

* 외부 필진 최 황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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