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성범죄, 컴퓨터를 끄고 눈을 돌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조회수 2018. 10. 30. 17: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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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헤드라인 뒤에 진짜 여자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합니다.
출처: ⓒDPA Picture Alliance/Alamy Stock Photo

3년 전 저는 누드 사진이 인터넷에 유출되는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유출된 두 장의 사진은 당시 저와 장거리 연애 관계에 있던 남자친구에게 제가 직접 찍어보낸 것이었죠. 한 장은 가슴과 배 부분만 찍은 사진이었고, 다른 한 장은 거울에 비친 상반신 셀카로, 웃고 있는 얼굴까지 모두 나온 사진이었습니다.


10대 때 우리는 모두 누드 사진 유출 괴담을 심심찮게 듣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죠. 운이 아주 나쁜 극소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었으니까요.


연애 감정이 커지면서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오전 내내 머리는 어떻게 할지, 어떤 각도로 찍으면 좋을지를 고민한 끝에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을 보냈죠.


그러나 “보내기”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제 몸이라는 내밀하고 사적인 부분의 소유권과 존엄을 한꺼번에 잃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출처: ⓒ허프포스트코리아
*연인 간의 성적 영상, 사진 불법촹영/불법유포는 한국에서도 심각한 문제죠. 최근의 최종범, 왕진진 사건 등에서도 드러났듯 이는 연인 관계 여성에 대한 협박과 착취의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피해자들은 '촬영을 했다' 혹은 '촬영에 동의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심각한 타격을 입습니다. 그건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죠.

이후 모교의 남자 후배들이 제 누드 사진을 돌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제 심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제 모든 것이 노출된 듯 했고, 저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꼈죠.


너무나 무기력해서 일상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언니가 저를 하루 종일 따라 다니며 끼니를 챙겨주고, 발작적으로 터지는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흡사 실연을 겪은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깨진 것은 연애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가치였죠.


여전히 자신은 결코 사진을 유출한 적이 없다고 맹세하는 남자친구는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저기 유출 가능 경로를 따져보고, 여러 사람을 의심해보았지만 결국은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죠. 빠르고 사납게 번지는 산불을 끄려는 시도처럼 부질없는 노력이었습니다.


사진이 유출된 당시 저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태였지만, 여동생이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사진을 돌려보던 남학생들은 바로 여동생의 급우였습니다. 우리가 살던 곳은 아주 좁은 동네였죠.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영국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친구들 사이에서 아는 사람의 사적인 사진이 공유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10명 중 4명은 친구들이 성적인 소문이나 이미지를 공유하기 위해 단체 채팅방을 여는 것을 본적이 있다고 답했죠.


온라인 괴롭힘, 외모 비하와 10대 자살 사건에 대한 보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헤드라인 뒤에 진짜 여자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합니다.

출처: ⓒMBC
온라인 성폭력의 종류는 다양하고, 사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엔 실제로 고통받는 여성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몇 달 간 저는 자책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만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며 극복하라고 말했습니다. 애초에 왜 사진을 보냈느냐고 힐난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고향집을 방문하러 올 때도 학교에는 더 이상 찾아가지 않았고, 파티나 동창회도 모두 피했죠. 친구들을 만날 때도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여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일조차 쉽지가 않았습니다. 남학생들이 무리지어 모인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괴로웠고, 모든 이의 눈을 피하느라 바빴죠. 저 사람도 내 사진을 봤겠지,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 하에 터져 나오고 있는 성범죄 고발은 긍정적인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토론 속에서도 온라인 성범죄(디지털 성범죄)의 자리는 크지 않습니다. 온라인 성범죄는 우리 모두의 디지털 일상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어서 간과되기 십상이죠.


“사이버 공간의 혐오 범죄(Hate Crimes in Cyberspace)”의 저자인 다니엘 키츠 시트론은 사이버 성범죄의 피해자들이 소위 '판단력 부족'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물론, 관심을 받기 위해 사진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고 지적합니다.


하비 와인스타인*급의 성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남성들도 모르는 사람의 누드 사진을 공유하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인터넷은 사회 규범의 예외 구역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비 와인스타인 :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성폭력 가해자로 할리우드 내 여성들을 대상으로 수 십년 간 성폭력을 저질렀다.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촬영되거나 유포된 디지털 성범죄 콘텐츠를 다운 받고 재유포하는 것에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피해자의 행실이나 '멍청함'을 욕합니다. 온라인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이죠. 사진은 최종범 사건에서 협박에 사용된 동영상을 유포 바란다는 남초 커뮤니티의 게시글들 입니다.

제가 겪은 끔찍한 일은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겪은 일입니다. 기운을 조금 차린 후 저는 매일 미친 사람처럼 인터넷에서 사진 유출 경로를 추적하며 밤을 지새곤 했습니다.


제가 추적을 그만 둔 것은 제 사진이 더 큰 누드 앨범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습니다. 그 앨범에는 수 년에 걸쳐 수집된 우리 학교 여학생들의 사진이 40장 이상 실려 있었습니다. 속옷만 입은 여학생들의 사진은 물론 누드 사진들도 있었죠.


여권 운동의 다음 단계에서 우리는 온라인 성범죄를 오프라인 성범죄와 같은 무게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맞춤형 가상 현실 포르노와 AI 제작 얼굴 합성 포르노의 등장 등 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분야인만큼 시급한 과제입니다. 컴퓨터를 끄고 눈을 돌린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사건을 극복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따금 제 사진이 인터넷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평생 그 사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우선은 제 경험을 숨김없이 드러낸 채 싸움에 동참할 것입니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원문: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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