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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성공 후 박정희가 군관학교 동료들을 배신한 이유

조회수 2018. 10. 6.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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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킬 때 기꺼이 동참했다.
신경군관학교 2기 수석 졸업생 박정희 (만주일보, 1942.03.24)

1937년 봄 박정희는 5년제 대구사범학교를 4기로 졸업하고 문경보통학교(현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2년 뒤 1939년 가을 박정희는 돌연 만주 목단강 시로 가서 군관학교 시험을 봐 합격해 이듬해 4월 신경(현 장춘)에 있던 신경군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을 동경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승리한 일제는 이듬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일제는 그해에 만주국의 장교 양성을 위해 봉천(현 심양)에 군관학교를 세웠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만주군관학교 시작이다. 조선인은 봉천군관학교 4기 때부터 입교했는데 5기 때는 15명이나 합격했다. 대표적으로 정일권 전 국무총리, 간도특설대 출신의 김백일, 해병대 창설의 주역 신현준, 국방대학원장을 지낸 송석하 등이 봉천 5기 출신이다.  


봉천군관학교는 2년제 사관학교였는데 9기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백선엽이 바로 마지막 기수인 9기생 출신이다. 백선엽은 박정희처럼 평양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있다가 군관학교에 입교했다. 당시 사범학교 출신은 졸업 후 3년간 의무적으로 교사 근무를 하게 돼 있었는데 백선엽은 이 의무기간을 다 채우지 않아 군관학교 입교 후에 말썽이 됐었다. 


봉천군관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1939년 4월 만주국 수도인 신경(현 장춘)에 새로 4년제 신경군관학교가 문을 열었다. 신경군관학교는 총 7기까지 입교했는데 3기까지는 졸업, 임관했으나 그 이후 기수는 본과, 또는 예과 재학 중에 8.15 해방을 맞았다. 봉천9기와 신경1기는 임관일이 같다.

아래 사진은 박정희보다 한 기수 선배인 신경 1기(14명)와 박정희 동기생인 신경 2기(11명) 출신들 가운데 일부 인사들의 모습이다. 자유당 말기인 1958년 여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화계사로 가족동반 야유회를 갔다가 함께 찍었다. 3년 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자 이들은 하나같이 동참했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나중에 소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축출됐다. 반혁명사건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이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발표한 사건들을 말한다. 권력을 잡은 박정희에게 이들은 오히려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당시 계급, 경력 등)

1. 방원철 대령(1기), 육군 전사감 역임

2. 김동하 소장(1기), 체육회장, 마사회장 역임

3. 박정희 소장(2기), 대통령 역임

4. 박근혜(박정희 딸, 만6세)

5. 이주일 소장(2기), 감사원장 역임

6. 윤태일 준장(1기), 서울시장 역임

7. 박임항 소장(1기), 건설부장관 역임

8. 육영수(박정희 부인)

9. 최창언 소장(1기), 육군소장 예편

(*참고로 이 사진은 신경 1기생 방원철을 통해 입수했다. 2004년에 필자가 펴낸 <실록 군인 박정희>(개마고원)에 실려 있다.)

* 외부 필진 정운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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