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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에 걸맞은 글을 쓰는 방법
직썰 작성일자2018.09.10. | 845  view

농촌에서 일손을 보탤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등장한 한 농장주의 코멘트는 적어도 내가 사는 세계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터라 꽤 이질감이 들었다.


그의 말은 농번기에 하루 노동의 대가로 30만 원을 매겨도 사람들이 일하러 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뙤약볕에서 등을 굽히고 육체노동을 할 힘을 가진, 정확히 청년기를 보내는 한국인을 농장주가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이미 예상을 했지만, 그 일당이 30만 원에 달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런 기사를 읽고도 언론사에 전화해 일당 30만 원을 주는 그 농장의 전화번호를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기록적인 것을 넘어 혹독하기까지 했던 지난여름을 가까스로 겪어내고 나서는 그 일당 30만 원의 노동이 얼마나 힘들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됐다.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동원하면 대가의 수준이 노동의 강도에 견줘 얼마나 합리적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

청년으로 살면서 이런저런 곳에서 다양한 노동을 해보고 느낀 건데 원고료를 받는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만큼 어려운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아마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을 보고 그것도 노동이냐며 핀잔을 놓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를 벗어난다. 원고료의 대부분이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에 도대체 얼마만큼의 힘을 들이고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해 글을 써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글 쓰는 노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본인뿐이라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차라리 원고료의 책정 방식에 따라 얼마만큼의 글쓰기 노동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쪽이 훨씬 객관적이다. 

원고지 매수로 계산하는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이건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계산법이다. 원고지라는 것을 한국과 일본에서만 쓰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일본에서 만든 거다. 한국인 특유의 반일감정에 비춰 봤을 때 이런 이상한 원고료 측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일이다. 이것 역시 일제가 남긴 찌꺼기가 분명한데도 아무튼 아직 원고지 한 장당 얼마씩을 가지고 원고료를 정한 곳이 많다.


이런 경우는 글을 쓰기가 참 수월해진다. 원고지라는 아주 객관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원고지는 공백 포함 200자라는 뜻이므로 원고료로 ‘매당 8천 원’을 받기로 했다면 2천 자를 쓰면 8만 원을 받게 되는 식이다.  


문제는 원고를 받는 곳이 신문사나 잡지사일 경우다. 이런 경우는 할당된 지면이 한정적이므로 적당한 분량의 원고를 요구한다. 만약 1천 자 분량의 원고를 요구했다면 4만 원 이상을 절대로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원고지 한 장에 얼마를 받을 수 있는 곳인지 확보할 수 있는 지면이 어느 정도의 면적인지를 확인하고 글을 써야 한다.  


강조하지만 글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런 노동이 들어갈 만한 원고료는 누구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많은 이들의 헌신 등의 덕분이다. 

만약 분량과 관계없이 5만 원을 받고 글을 쓰기로 합의했다면 다소 복잡해진다. 원고료로 받을 돈과 최저임금을 비교해 얼마 동안 글을 쓸 것인지 고민하는 거다. 이 방법에 의하면 현재 최저임금을 토대로 대여섯 시간 동안 글을 쓰면 된다. 어떤 사람은 문장 하나를 만드는 데 10분을 소비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2천 자 정도의 글을 쓰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여섯 시간 동안 글을 쓰고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분량과 관계없이 5만 원을 책정한 쪽의 잘못이다. 그래도 여섯 시간이면 꽤 긴 시간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2천 자를 쓰기에는 확실히 충분한 시간이고 세 줄 요약을 원하는 요즘 사람들의 추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엄청나게 긴 글이다.  


문제는 정말 터무니없이 적은 원고료를 책정했을 때다. 가령 분량과 관계없이 만 원을 주는 곳에 글을 싣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79분 동안 글을 써야 한다. 10분 동안 한 문장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여덟 문장 정도를 겨우 만들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건 글을 쓴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많은 이들의 헌신 같은 것 덕분이다.

여기까지 쓰는데 정확히 70분을 소모했다. 공백 포함 천칠백 자 정도다. 이건 만 원을 받으면 되는 정도의 글인가? 아니면 원고지로 장당 만 원을 매겨 팔만오천 원을 받으면 될 만한 글일까? 갑자기 일당 30만 원의 그 농장주 전화번호가 궁금해졌다.

* 외부 필진 최황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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