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위문공연에서 여성을 소비하는 방법

조회수 2018. 8. 29. 14: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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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을 '징집'하고 여성은 '보급'한다?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여성 피트니스 모델이 무대에 올라 포즈를 취한다. 사회자는 여성 모델에게 나이를 묻고 관중은 그녀의 어린 나이에 열광한다. 8월 14일 안양 소재 예하 부대에서 열린 외부단체 위문공연을 촬영한 영상의 한 장면이다.


영상이 퍼지면서 세간엔 군대 내 여성 성 상품화 논란이 일었다. 대한민국 육군 수도방위사령부는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군 내 성 상품화에 대한 비판을 불편해하는 볼멘소리도 만만치 않다.

출처: 한국일보

17일 SNS에 게시된 육군의 사과문 아래로는 "군인들 고생한다고 먼 곳에서 와서 힘내라고 해준 걸로 보인다", "대가도 없이 고생하는 청년들 위로하러 온 행사가 왜 논란이 되느냐"는 요지의 댓글들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징집되는 남성과 위문하는 여성

새삼스러운 논란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어디에서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군대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 논란에서 보인 것처럼 논란이 일어나는 장소가 군대일 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하나 있다. 언론과 여론이 만들어내는 여성 민간인과 남성 징집병 간의 대립 구도다. 이 구도 아래에선 남성 징집병에 대한 열악한 대우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의 문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한국 군대의 폭력적이고 열악한 환경엔 분명 문제가 있고 하루 이틀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 징병 간의 대립 구도는 언제나 이 문제에 대한 분노를 국가가 아닌 비(非) 징집대상자(특히 여성)으로 향하게 한다. 


국가가 여성을 방패 삼아 남성징병제에 대한 분노를 외면해 온 역사도 새삼스럽지 않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를 무임승차자로 낙인찍고 비난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로서는 (사회적 변수에 대한) 손쉬운 통제 방법이다. 이 통제 방법을 즐겨 사용하며 체제를 유지해온 억압구조가 다름아닌 남성중심주의, 즉 가부장제다.

징병 대상(남성) : 보금품(여성)

오랜 기간 가부장제 국가는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지게 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국가에 의한 착취였지만, 이를 다할 수 있는 남성에게만 제공되는 보상도 있었다. 다소 비공식적지만 매우 확실한 보상, 가부장제가 남성에게만 제공하는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지위. 즉, 시민으로서의 지위가 바로 그것이다. 


여성이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 이유는 단지 신체적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여성은 시민도, 보편적 인간도, 성적 주체도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징병 대상도 되지 않았을 뿐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남성이 성취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본다. 여성은 남성에게 배당되는 보급품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징병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결국, 남성징병제를 만든 주요한 배경들 가운데 하나는 가부장제다. 여성을 2등 시민이자 징집대상자들이 누릴 수 있는 보상으로 만듦으로써 국가는 징집대상자인 남성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오랜 시간 징병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출처: EBS

물론, 지금 어떤 사람들은 상황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낀다. 여성 (혹은 군대에 가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들) 또한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정말로 온전한 시민권을 갖고 있는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성과 여성이 현재 놓여있는 정치적, 사회적 지형은 과연 균등한가? 현재 한국 의회에 여성 의원은 몇 명인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취업시장에서의 차별,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임금 차별은 해소됐는가? 여성이 문화적으로 재현되는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여성혐오 논란은 어떠한가?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장에서 가부장제는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다. 


(*여성을 이용해 시민(남성)을 착취하는 국가의 수법도 변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가부장제

이런 가부장제 한국에서, 남성 관객을 위해 여성의 몸을 전시하는 위문공연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공연을 통해 여성의 신체 이미지는 남성 군인에게 보상으로 제공된다. 이는 우리 사회에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성적 주체이기도 하고 성적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페미니스트들이 ‘성적 대상화’를 그토록 문제라고 비난하는지 궁금해 하는 남성들이 눈에 띤다. 


답은 간단하다. 성적 대상화라는 것은 개인 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그 여성이 누구든 언제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모든 여성을 남성의 이성애적 성적 대상으로‘만’ 위치하게 만드는 경향을 말한다. 가부장제는 남성을 과도하게 성적 주체화하고 여성은 과도하게 성적 대상화한다.

출처: 서울신문
2016년께까지 운영되던 군장병 공식 포털 MplusV 메인 화면

위안부 문제부터 위문 공연, 군장병 포털 MplusV까지 이런 의미에선 일직선상에 놓인다. 그 속의 여성 신체/이미지는 국가와 사회가 의무를 다한 (남성) 국민에게 제공하는 보상이 된다. 남성 청년은 착취당하는 군인이 되고 여성 청년은 보급품이 된다.


징집병에 대한 착취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모두 사회적 문제이다. 그러나 국가는 전자에 대한 분노를 달래기 위해 후자를 동원한다. 두 문제는 서로 대립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런 착각은 진짜 가해자인 가부장제 국가만 이롭게 한다. 두 문제는 서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가부장제다. 


징병제로 착취당하는 남성 청년을 위해 사회가 할 일은 그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여성 청년의 신체를 전시하는 일이 아니다. 군사주의, 가부장제 등 억압을 생산하는 구조에 대한 개선만이 군인들의 현실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여성의 몸이 남성에게 보상이 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회라면 남성징병제의 문제를 풀 실마리는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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