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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물 영화 '공작'에 액션씬이 없는 이유

조회수 2018. 8. 20. 2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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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무난히 옮겨 낸 영화다.

*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잔잔한 영화입니다. 첩보물이라고 하지만 다른 상업 영화의 인기 요원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면이 있죠. <공작>의 주인공은 제임스 본, 에단 헌트, 킹스맨과 달리 최첨단 장비를 지원받지 않고, 특별한 능력도 없습니다. 


짝퉁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롤렉스 시계로 적의 눈을 홀리고, 마음을 훔치는 게 특별한 능력이라면 능력이죠. 이번 시간엔 이 평범한 요원이 활동한 영화, <공작>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공작>은 실화를 무난히 옮겨 낸 영화입니다. 남북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한국, 중국, 북한을 뛰어다니며 첩보 활동을 펼친 흑금성의 이야기죠. 적당한 긴장감과 이를 완화해주는 유머, 그리고 다시 조이는 긴장감을 반복하며 긴 러닝타임을 끌고 갑니다. 이 영화가 긴장감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과 과거의 시대와 북한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구현한 미장센에 있죠.

리명운(이성민)이 흑금성(황정민)을 탐색하고 경계하면서도 북한 고위관계자로서 위엄을 잃지 않으려는 복합적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후반부엔 황정민에게 마음을 여는 뜨거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 캐릭터가 더 좋아지게 하는 연기였죠.


<공작> 전에 개봉한 <신과함께-인과 연>으로 올여름 중심에 서 있는 주지훈의 살벌한 연기도 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 조여줍니다. 까칠한 모습 중에 보이는 코믹한 모습, 특히 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이 장면에선 김홍파의 연기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90년대의 중국, 그리고 북한을 밀도 있게 묘사한 것도 영화의 분위기를 잡는 데 큰 몫을 합니다. 고증에 있어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차갑고 건조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고풍스러운 건물은 그 당시 북한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인물’ 같죠. 


그 밖에도 첩보 활동이 있는 호텔 등의 공간은 명암 대비가 두드러지고, 음침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이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작전을 펼치고,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겨야 하는 흑금성의 처지와 잘 어울리죠. 그리고 곳곳에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첩보 영화다운 분위기를 잘 조성하고 있습니다.

"액션이 없는 첩보 영화"라는 말에 윤종빈 감독은 "스파이가 액션을 쓴다는 건 작전에 실패했을 때다"라는 현답을 내놓았습니다. 액션이 없는 첩보물이라기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공작>과 함께 언급되기도 했죠. 


이 두 영화는 액션을 기대한 관객에게 심심하고 실망을 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액션 없는 첩보 영화에도 몰입할 수 있는 관객에게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공작>보다 훨씬 건조하고, 긴장감도 큽니다. <공작>은 액션의 빈자리를 염려했던 탓인지, 조였던 긴장을 풀기 위해 유머를 자주 날리죠. 윤종빈 감독의 능력 덕에 그 장면만 떼 놓고 보면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머 탓에 차가운 영화의 온도가 지나치게 올라간 느낌입니다. 덕분에 첩보물의 묵직한 힘은 희석되죠.

더불어 차가웠던 영화는 흑금성과 리명운의 동조로 뜨거워집니다. 이 영화는 첩보물의 외연을 지녔지만, 진한 브로맨스와 동포애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동선과, 특별한 느낌을 주기 위해 사용한 줌 달리만 봐도, <공작>을 통해 윤종빈 감독은 체제를 초월한 두 남자의 브로맨스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기존 북한 관련 영화인 <의형제>, <공조>, <강철비>와 유사한 주제 의식으로 볼 수 있죠. 그래서 새롭지도 않습니다. 


<공작>은 특정 집단을 생각나게 하는 정치성 짙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정치권의 부패, 비리가 단골이 되어버린 시대, 그리고 영화 밖의 현실에서 기무사 관련 문제가 터진 직후인지, <공작>이 보여준 사건이 크게 충격적이지 않죠. 오히려 익숙함과 피로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게 영화 외적으로는 불운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윤종빈 감독의 말을 빌리면, <공작>은 액션을 쓸 만큼의 위기가 없는 영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분위기를 잘 조성했다고는 하지만, 임팩트가 부족한 영화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난함 외의 묵직함, 혹은 더 장르적인 재미를 원했던 관객에게는 분명 아쉬울 수도 있죠. <공작>은 첩보영화인 척하다 이야기를 안전하게 봉합하는 무난한 상업영화였습니다.

* 외부 필진 영화 읽어주는 남자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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