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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3돌, 마침내 서훈받은 2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

조회수 2018. 8. 15. 1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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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복절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자는 총 177명이다.
배화여학교에서 벌인 만세운동 재연으로 옥고를 치른 여섯 분의 '감시대상 인물카드'

73돌 광복절을 맞아 정부는 건국훈장 93명(애국장 31명·애족장 62명) 건국포장 26명, 대통령 표창 58명 등 177명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을 수여한다. 해마다 수여하는 포상이긴 하지만, 이번 포상에는 여성 26명 대거 포함돼 있어 각별한 의미를 더한다.

광복절 독립유공자 177명 포상에 여성 26명 포함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허은 여사와 ‘혁명 가족의 안주인’ 이은숙 여사에게 건국훈장을, 서울 배화여학교 재학 시절 3·1독립 만세운동을 재현했다가 일경에 검거돼 옥고를 치른 여섯 명의 여성들(김경화·박양순·성혜자·소은명·안옥자·안희경)에게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다.


1920년 3월 1일 배화여학교에 다니던 여학생들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 1년 전의 독립 만세운동을 재현, 기숙사 뒤편 언덕과 교정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수십 명이 일경에 잡혀 재판에 회부됐다.이 가운데 옥고를 치른 여섯 분이 이번에 포상되는 것이다. 


평안남도 순천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임시정부를 후원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5인의 여성에게도 건국훈장(최복길)과 건국포장(김경신·김화자·옥순영·이관옥)이 추서된다. 황해도 신천에서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곽영선 선생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선생은 1993년 애국장을 받은 곽림대 선생의 딸로, 부녀가 독립운동에 헌신해 서훈 된 흔치 않은 사례이다.


이 밖에도 전남 강진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시인 김윤식(영랑) 선생(건국포장)과 군자금 모집하다 체포돼 교수형을 받고 순국한 의병 계석노 선생, 군자금을 모집하다 중형을 받은 열혈 독립군 소대장 한성호 선생도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는다. 


일제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한 영랑 김윤식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기려지는 것의 의미는 적지 않다. 계석노 선생이 일제에 처형돼 순국했을 때 그는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였다. 군자금을 모집하다 붙잡힌 한성호 선생이 10년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젊음과 투쟁을 원한 광복의 역사에 이들은 기꺼이 응답한 것이었다. 

임청각 군자정. 임청각에선 허은 여사가 수훈함으로써 모두 10분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됐다. 2018년 4월

서간도에서 독립군의 항일투쟁을 도와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 허은(1907~1997) 여사에게도 마침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이로써 허은 여사는 독립장을 받은 남편 이병화(1906~1952)에 이어 석주 이상룡의 임청각 직계 가족 가운데 열 번째 수훈의 주인공이 됐다. 

임청각 누리집의 자료, '임청각의 인물들'을 기초로 허은 여사를 추가, 재구성했다.

마침내 '독립군의 어머니'도 수훈

허은 여사는 1908년 재종조부인 왕산 허위(1854~1908) 선생이 순국한 후 1915년 일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했다. 1922년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손자인 이병화와 결혼했다. 


그는 1932년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10년 동안 시댁 어른들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했다.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회의 때마다 독립운동가들의 식사를 챙겼고 독립군들이 입을 군복도 지었다. (관련 글: 임청각-석주 일가의 사위·며느리들)


가계도에서 보는 것처럼 왕산 허위는 여사의 재종조부(할아버지의 사촌 형제)다. 왕산이 부친인 허발에게 당숙(5촌)이니 여사에긴 재종조부인 것이다. 안동 진성 이씨 가문으로 출가한 육사를 낳은 허길은 여사의 고모다. 육사는 여사에게 고종사촌이고, 여사는 육사에게 외사촌인 셈이다.

왕산 허위의 가문인 김해 허씨 허은의 가계도. 책자는 여사의 회고록이다.

왕산 허위의 김해 허씨 가문도 독립운동으로 결딴이 났다.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투쟁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이들 가족은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러시아와 북에 살고 있다고도 한다. (관련 기사: 구미 하면 박정희? 이 인물도 기억하라)


이들 후손이 용케 국내에 들어와도 우리 국적이 없는 상태라 지난 8월 13일, 법무부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국적 증서를 수여했다. 허위 선생과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박찬익 선생, 민족교육에 힘쓴 계봉우(1880∼1959) 선생 등 독립유공자 10명의 후손 31명이 한국 국적을 얻은 것이다.

이은숙 여사, 남편, 두 아들에 이어 뒤늦은 수훈

이은숙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 세 번째로 출간됐다.

한편, 서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기지 개척을 돕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지원한 ‘혁명가족의 안주인’ 이은숙(1889~1979) 여사에게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여사는 1908년, 첫 부인과 사별한 우당 이회영(1867~1932)과 혼인했다.


1910년 남편 일가족과 함께 중국 지린성 유하현 삼원보로 집단 이주해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사업을 도왔다. 여사는 1919년 우당과 함께 중국 베이징으로 옮겨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뒷바라지하고 1925년 귀국해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 


남편 이회영은 1932년 독립운동의 외연을 넓히고자 다롄(大連)으로 갔다가 동포의 밀고로 일경에게 잡혀 고문을 받다 옥중 순국했다. 아들 규창이 일경에 체포돼 국내에 압송된 뒤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복역할 때 옥바라지를 하며 해방을 기다렸다. 

막대한 가산은 물론 목숨마저 조국의 독립에 바친 이시영 일가는 모두 10명이 독립 유공 서훈을 받았다. 우당(1962년 독립장)을 필두로 6형제가 모두 서훈을 받았고, 아들 둘과 조카 둘까지 서훈을 받아 완성된 이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마침내 이은숙 여사까지 서훈을 받음으로써 완성된 것이다. (관련 글: 1953년 오늘-성재 이시영 선생 돌아가다, 1932년 오늘-우당 이회영, 뤼순감옥서 순국하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며 100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요즘 다시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뜬금없는 ‘건국절’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정교과서로 자신들의 역사관을 강제하려다 실패한 이 우익 정당이 다시금 역사적 퇴행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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