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공포에 펜 대신 탐지기를 든 대학생들

조회수 2018. 7. 25. 11:31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언제쯤 '몰카 공화국'이란 조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찍지 마!"

어려운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들이 "찍지 마"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온 지금도 십 년 전, 혹은 몇 시간 전에 찍힌 불법 촬영물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시계, 보조배터리, 물병 모양의 초소형 무음 카메라가 판매되고 해외에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법촬영을 ‘MOLKKA’라는 고유명사로 소개한다.


한편 수많은 몰카 전수조사 결과는 0개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불안감도 0%여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는 별 위험이 없다고, 불법촬영 걱정은 여자들의 유난일 뿐이라고 부르짖는 누군가의 말처럼 말이다) <고함20>이 몰카 사회 속, 0개와 0% 사이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출처: 서울 소재 o 대학 화장실에 부착된 문구

“이곳은 서울시 여성 안심 보안관이 몰래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 중인 장소입니다.”


서울시 내 한 대학의 화장실에 부착된 안내 문구다. 2016년 8월에 신설된 서울시 여성 안심 보안관은 2인 1조로 팀을 이뤄 공공기관의 공중화장실 및 여자 화장실 내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탐지하는 업무를 한다. 초기엔 관내 청사, 공원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들어 대학가와 대학 내 몰래카메라 탐지로 확장되었다. 


보안관 제도는 서울시에서 운영되어 공신도 높다는 점에서 많은 대학의 총학생회가 이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서울시 여성 안심 보안관이 2년 동안 활동하면서 탐지한 몰래카메라는 0건을 기록했다. 대학 내 조사결과도 마찬가지다.

몰카 발견율이 0에 수렴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러나 몰래카메라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안심보안관제도에는 카메라 발견을 어렵게 만드는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몇 번 지적됐던 부실 장비 문제뿐만은 아니다.


작년까지는 서울시가 안심보안관의 점검 대상을 자체적으로 선정했다. 올해부터는 점검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신청을 받는 형식으로 변모했다. 확대된 점검 대상 중 하나가 대학교다. 대학의 총학생회 측이 요청하면 안심보안관 2명이 해당 대학에 파견된다. 총학생회 측 학생 1명과 안심 보안관 2명으로 구성되어 건물을 배정받고 검사를 한다. 


한 화장실의 8칸 내부를 꼼꼼히 검사하면 약 1시간. 현재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의 수는 50여 명이며 이들의 근무는 주3일, 하루 최대 6시간이다. 3명이 학내 모든 공간을 시간마다 확인하기란 역부족이고 서울시 전체 대학을 확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출처: 연합뉴스

부족한 인원과 시간 때문에 이들의 몰래카메라 전수조사는 특정 장소 화장실에만 제한된다. 그러나 강의실, 동아리방, 휴게실 등은 개방적 공간으로 접근성이 높고 많은 사람이 이용해 몰카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 공간이다.


일례로 지난 2016년에는 울산 소재 ㅇ 대학 재학생이 학교 내 스포츠센터 여자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해 불구속 입건됐다. 학내의 모든 공간이 몰카 설치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이러한 사실은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펜 대신 탐지기를 들고

현재 여성안심보안관 제도는 서울시와 원주시만 시행하고 있어 인근 대학들만 접근할 수 있다. 이들을 제외한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혹은 인근 경찰서에 의뢰해 몰래카메라 탐지에 나서고 있다.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경우 총학생회가 주도해 탐지기를 직접 구매한다. 서울의 ㅎ 대학은 올해 초 캠퍼스 내 몰카가 의심된다는 민원이 들어왔지만, 몰카탐지기가 없어 인근 경찰서에 신고했다. 며칠이 지난 뒤에서야 탐지를 할 수 있었다. 절차적인 문제에 한계가 생기자 결국 총학생회에서 130만 원 에 달하는 고가의 탐지기를 구매했다. 


여전히 많은 대학들이 인근 경찰서에 정기적인 몰카 검사를 의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들은 몰카가 의심되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실리콘으로 덧칠하는 임시방편을 택하고 있다.

출처: 이대학보
불법촬영 방지를 위해 화장실 벽면 정체불명의 구멍에 채우는 실리콘

총학생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각 단과대 내에서도 개별적으로 몰카 탐지 사업에 나섰다. 몰카 탐지 사업은 요청을 받아 학내 구역을 탐지해주는 사업과 탐지기를 대여해주는 사업으로 나뉜다. 그러나 각 단과대의 예산으로는 저가의 탐지기만을 구매할 수 있어 효용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기만하는 총학, 방관하는 대학

학내 몰카 문제가 대학생들의 인권 및 복지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자 다수의 총학생회는 몰카 탐지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공약에는 ‘정기적인 탐지사업’이라고 명시돼있지만, 실제 탐지 조사는 한 학기에 1~2회에 그쳤다. 또한 활동하는 학생들이 많은 학기 중 보다는 방학 중에 실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대학도 있다.


부산 소재 ㄷ 대학교의 총학생회는 지난 4월 “학내 모든 화장실을 검사한 결과 불법촬영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그러나 점검에 동행한 학생은 “전체 단대가 아닌 예 체대의 몇 개 층만 검사했고 몰카를 점검하는 시간보다 보여주기식으로 사진을 찍는 시간이 더 길어 행정적 절차를 밟는 데만 그쳤다”고 지적했다. 


몰카 탐지를 대대적으로 벌였던 서울 소재 ㄷ 대학의 총학도 보여주기식이었다. 지난 5월 서울 소재 ㄷ 대학교의 총학생회는 순찰을 하다가 여자 화장실에 문을 걸어 잠근 남성을 목격했다. 그러나 왜 그곳에 들어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조사 없이 신원만 확인하고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당시 현장에서 지켜본 한 학생이 해당 대학의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출처: 여성신문


부분조사가 아닌 전수조사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많은 인력과 재정지원금이 필요하다. 총학생회와 탐지 조사 봉사지원자로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고가의 탐지기는 총학생회의 예산에서 감당하기도 부담스럽다. 몰래카메라 문제는 학생의 인권 및 복지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로 대학이 주도해서 예방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대학은 경비업체 혹은 캠퍼스 폴리스를 통해 대규모 조사를 실행할 수 있으며, 몰카 탐지기를 구비 및 대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 본부에서 이런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에만 책임감을 부여함으로써 학생의 문제는 학생이 해결해야 한다는 양 선을 긋는다. 공부하기 위한 대학에서 불법촬영의 불안감을 떠안은 학생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펜 대신 몰카 탐지기를 들고 나선 실정이다.

관음하는 몰카 공화국

과거 전쟁터에 설치된 지뢰를 아는 것은 지뢰를 숨긴 당사자뿐이었다. 아무리 탐지기를 이용해 찾아낸다고 해도 찾아낼 수 없는 지뢰들이 땅 밑에서 공포를 자아낸다.


현대의 대한민국에도 숨겨진 지뢰들이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 진리의 상아탑에서도 대학생들은 불안을 떨칠 수 없다. 12년 전 촬영된 대학 내 몰카가 여전히 온라인상에서 유통되고 있고 삭제를 요청해도 재업로드되는 등 한번 찍히면 손을 쓰기 어려운 비참한 현실이다.

출처: 오마이뉴스

사후대처가 미흡하기 때문에 사전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대학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미흡한 조사라도 불안을 탈출할 유일한 통로로 삼고 있다.


몰카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 정부와 대학본부는 숨겨진 지뢰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투적으로 돌입해야 함에도, 불법촬영 근절 문제를 제법 여유롭게 해결하려 한다. 방관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매일 카메라 속으로 납치될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원문보기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직썰 추천기사>

염전 사장과 결혼했던 염전 노예의 기막힌 사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