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공포에 펜 대신 탐지기를 든 대학생들
"찍지 마!"
어려운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들이 "찍지 마"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온 지금도 십 년 전, 혹은 몇 시간 전에 찍힌 불법 촬영물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시계, 보조배터리, 물병 모양의 초소형 무음 카메라가 판매되고 해외에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법촬영을 ‘MOLKKA’라는 고유명사로 소개한다.
한편 수많은 몰카 전수조사 결과는 0개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불안감도 0%여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는 별 위험이 없다고, 불법촬영 걱정은 여자들의 유난일 뿐이라고 부르짖는 누군가의 말처럼 말이다) <고함20>이 몰카 사회 속, 0개와 0% 사이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곳은 서울시 여성 안심 보안관이 몰래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 중인 장소입니다.”
서울시 내 한 대학의 화장실에 부착된 안내 문구다. 2016년 8월에 신설된 서울시 여성 안심 보안관은 2인 1조로 팀을 이뤄 공공기관의 공중화장실 및 여자 화장실 내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탐지하는 업무를 한다. 초기엔 관내 청사, 공원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들어 대학가와 대학 내 몰래카메라 탐지로 확장되었다.
보안관 제도는 서울시에서 운영되어 공신도 높다는 점에서 많은 대학의 총학생회가 이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서울시 여성 안심 보안관이 2년 동안 활동하면서 탐지한 몰래카메라는 0건을 기록했다. 대학 내 조사결과도 마찬가지다.
몰카 발견율이 0에 수렴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러나 몰래카메라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안심보안관제도에는 카메라 발견을 어렵게 만드는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몇 번 지적됐던 부실 장비 문제뿐만은 아니다.
작년까지는 서울시가 안심보안관의 점검 대상을 자체적으로 선정했다. 올해부터는 점검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신청을 받는 형식으로 변모했다. 확대된 점검 대상 중 하나가 대학교다. 대학의 총학생회 측이 요청하면 안심보안관 2명이 해당 대학에 파견된다. 총학생회 측 학생 1명과 안심 보안관 2명으로 구성되어 건물을 배정받고 검사를 한다.
한 화장실의 8칸 내부를 꼼꼼히 검사하면 약 1시간. 현재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의 수는 50여 명이며 이들의 근무는 주3일, 하루 최대 6시간이다. 3명이 학내 모든 공간을 시간마다 확인하기란 역부족이고 서울시 전체 대학을 확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부족한 인원과 시간 때문에 이들의 몰래카메라 전수조사는 특정 장소 화장실에만 제한된다. 그러나 강의실, 동아리방, 휴게실 등은 개방적 공간으로 접근성이 높고 많은 사람이 이용해 몰카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 공간이다.
일례로 지난 2016년에는 울산 소재 ㅇ 대학 재학생이 학교 내 스포츠센터 여자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해 불구속 입건됐다. 학내의 모든 공간이 몰카 설치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이러한 사실은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펜 대신 탐지기를 들고
현재 여성안심보안관 제도는 서울시와 원주시만 시행하고 있어 인근 대학들만 접근할 수 있다. 이들을 제외한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혹은 인근 경찰서에 의뢰해 몰래카메라 탐지에 나서고 있다.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경우 총학생회가 주도해 탐지기를 직접 구매한다. 서울의 ㅎ 대학은 올해 초 캠퍼스 내 몰카가 의심된다는 민원이 들어왔지만, 몰카탐지기가 없어 인근 경찰서에 신고했다. 며칠이 지난 뒤에서야 탐지를 할 수 있었다. 절차적인 문제에 한계가 생기자 결국 총학생회에서 130만 원 에 달하는 고가의 탐지기를 구매했다.
여전히 많은 대학들이 인근 경찰서에 정기적인 몰카 검사를 의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들은 몰카가 의심되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실리콘으로 덧칠하는 임시방편을 택하고 있다.
총학생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각 단과대 내에서도 개별적으로 몰카 탐지 사업에 나섰다. 몰카 탐지 사업은 요청을 받아 학내 구역을 탐지해주는 사업과 탐지기를 대여해주는 사업으로 나뉜다. 그러나 각 단과대의 예산으로는 저가의 탐지기만을 구매할 수 있어 효용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기만하는 총학, 방관하는 대학
학내 몰카 문제가 대학생들의 인권 및 복지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자 다수의 총학생회는 몰카 탐지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공약에는 ‘정기적인 탐지사업’이라고 명시돼있지만, 실제 탐지 조사는 한 학기에 1~2회에 그쳤다. 또한 활동하는 학생들이 많은 학기 중 보다는 방학 중에 실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대학도 있다.
부산 소재 ㄷ 대학교의 총학생회는 지난 4월 “학내 모든 화장실을 검사한 결과 불법촬영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그러나 점검에 동행한 학생은 “전체 단대가 아닌 예 체대의 몇 개 층만 검사했고 몰카를 점검하는 시간보다 보여주기식으로 사진을 찍는 시간이 더 길어 행정적 절차를 밟는 데만 그쳤다”고 지적했다.
몰카 탐지를 대대적으로 벌였던 서울 소재 ㄷ 대학의 총학도 보여주기식이었다. 지난 5월 서울 소재 ㄷ 대학교의 총학생회는 순찰을 하다가 여자 화장실에 문을 걸어 잠근 남성을 목격했다. 그러나 왜 그곳에 들어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조사 없이 신원만 확인하고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당시 현장에서 지켜본 한 학생이 해당 대학의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부분조사가 아닌 전수조사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많은 인력과 재정지원금이 필요하다. 총학생회와 탐지 조사 봉사지원자로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고가의 탐지기는 총학생회의 예산에서 감당하기도 부담스럽다. 몰래카메라 문제는 학생의 인권 및 복지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로 대학이 주도해서 예방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대학은 경비업체 혹은 캠퍼스 폴리스를 통해 대규모 조사를 실행할 수 있으며, 몰카 탐지기를 구비 및 대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 본부에서 이런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에만 책임감을 부여함으로써 학생의 문제는 학생이 해결해야 한다는 양 선을 긋는다. 공부하기 위한 대학에서 불법촬영의 불안감을 떠안은 학생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펜 대신 몰카 탐지기를 들고 나선 실정이다.
관음하는 몰카 공화국
과거 전쟁터에 설치된 지뢰를 아는 것은 지뢰를 숨긴 당사자뿐이었다. 아무리 탐지기를 이용해 찾아낸다고 해도 찾아낼 수 없는 지뢰들이 땅 밑에서 공포를 자아낸다.
현대의 대한민국에도 숨겨진 지뢰들이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 진리의 상아탑에서도 대학생들은 불안을 떨칠 수 없다. 12년 전 촬영된 대학 내 몰카가 여전히 온라인상에서 유통되고 있고 삭제를 요청해도 재업로드되는 등 한번 찍히면 손을 쓰기 어려운 비참한 현실이다.
사후대처가 미흡하기 때문에 사전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대학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미흡한 조사라도 불안을 탈출할 유일한 통로로 삼고 있다.
몰카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 정부와 대학본부는 숨겨진 지뢰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투적으로 돌입해야 함에도, 불법촬영 근절 문제를 제법 여유롭게 해결하려 한다. 방관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매일 카메라 속으로 납치될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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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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