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강요하는 사회에서 비혼으로 살아남기

조회수 2018. 7. 10.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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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한다고!!!

'비혼'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두 개 있다.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즐기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외로움에 떨고 금전적으로 힘들어하는' 이미지다.


내가 비혼을 이야기할 때 지인들이 내게 하는 말도 아주 비슷하다.

네가 지금 젊어서 그런 거야, 나이 들면 외롭고 지켜줄 사람 하나 없어~
너 좋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어. 언제까지 그렇게 자유롭게 살 줄 알아?

하지만 이들의 상상과는 달리, 비혼인들이 '시티뷰가 보이는 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과 '우울증에 걸려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사람' 정도로 나뉘지는 않는다.

출처: brannon_naito

비혼도 친구 있어요... 비혼≠독신

오해부터 풀자. 비혼이 곧 독신은 아니다. 비혼은 그저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일 뿐, 친구도 가질 수 있고 애인도 만들 수 있다. 공동체를 꾸려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느슨한 의미의 가족관계를 구축한다. 서로를 돌봐줄 상대가 되어주는 것이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적 보호(혹은 압박)가 없다. 결국 이 관계가 아무리 끈끈하다고 하더라도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부여된다.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병원에서 보호자가 될 수 없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아프거나, 죽는다고 하더라도 회사에는 '개인 사정'으로 연가를 낼 수밖에 없다. 


관계유지는 오롯이 개인들의 역량에 맡겨진다.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비혼이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끊임없이 원가족을 소환하게 하거나, 개인을 현행 결혼제도로 유입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출처: 데일리라이프
응... 알겠어... 알아서 할게..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

우리를 결혼으로 몰아가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적정한 가격으로 서울에 함께 살기 위해서는 결혼이 필수적이다. 결혼+아이가 있지 않으면 공공주택에 당첨되기 쉽지 않다. 1인 가구에 배정된 집은 너무 좁고, 신혼부부 주택은 비혼 커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주거 지원뿐만 아니라 주거지역 내에서의 안전도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안전은 흔히 보호로 통한다. 여성 안전에 대한 이슈를 여성들이 더 조심하고, 여성들만 모여 있게 하거나, 누군가가 여성들을 보호해주는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안전을 챙기기 위해 여성들이 발품을 팔고, 밤길을 데려다주는 방식으로는 함께 사는 주체로서 서기가 어렵다. 살아가는 공간 내외부가 어떻게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으면 "혼자 사는 건 위험하다"에서 이야기는 멈춘다. 


비혼이 될 수밖에 없는 커플도 있다. 국어사전은 사랑의 정의를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기재해 논란이 됐었다. 여전히 기재돼 있는 이 정의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배제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결혼제도에서 포괄하지 않고 있는 대상들은 파트너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서로가 서로를 책임질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전혀 없다. 이는 정상가족이라는 테두리에 속하지 않는 삶을 존중해주지 않는 법의 공백이다.

출처: 뉴시스
우리가 사냥감도 아니고, 사회는 우리를 자꾸만 결혼으로 몰아간다.

결혼-비혼을 넘어서 모두가 존중받는 삶

위에서 말하는 관계, 안전의 요소들은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변에 말하는 순간부터 불안으로 다가온다. 그 불안은 때론 공격적으로 변해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방어를 치고 있을 때가 있다. 방어기제들은 ‘결혼하지 않는 삶이 더 행복하다’거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말로 튀어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증명하려는 그 순간 느낀다. (아마 결혼한 사람들도 똑같을 거다) 존중받아야 할 것은 각자의 결혼 여부가 아닌 각자의 삶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청년정책을 다양한 사회적 조건을 가진 청년들의 삶을 존중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틀이다. 비혼 등 '현행 제도로 보장받을 수 없는 관계'를 위한 고민도 앞으로의 청년정책에 마땅히 채워져야 할 부분이다.

출처: 잡코리아
사랑의 종착지가 언제나 결혼인 건 아니다.

프랑스에선 생활동반자법 PACS 제도*의 도입으로 최초 의도였던 동성 커플 뿐만 아니라 이성 커플들까지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비혼이라는 키워드는 다양한 관계의 확장을 위한 시도이고, 비혼의 가능성은 개개인의 삶에서 비어있는 빈 고리들을 찾아 보여준다. 비혼자의 주체성이 보장받는 사회라면, 결혼을 한 사람들의 삶도 함께 나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결혼하면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점도 중요하다. 단, 결혼해야만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삶에 놓이더라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결혼해"라고 말할 게 아니라, 같이 잘 살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생활동반자법 :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가족 구성원이 기존 가족관계와 동등한 법적 보호를 받게 하는 것이다. 가족으로서 권리와 함께 부양의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 책임 등도 부여한다.)

* 외부 필진 서울청년정책 LAB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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