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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한국에도 ‘꼴페미’가 있었다는 기록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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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년 나경희의 삶


1918년 경성에 나경희라는 여자가 살았다. 그녀는 흔히 말하던 ‘모던걸’, 동경 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온 여성 엘리트, 서구 페미니즘을 접한 여성주의자. 모던걸이라 하면 흔히 자유를 만끽하는 경성의 패션 피플을 상상할 테지만, 그녀의 조선 생활이 그리 모던하지만은 못했다.



"기집년들 배워다 어따쓰나? 성질만 고약해지지!" 

뭐 이런 말들 때문이다.

출처1933년 <신여성> 표지. 권진규미술관 제공

성질은 고약할지 몰라도 어쨌든 많이 배운 모던걸 경희, 그 당시 여자들과는 다르게 잡지에 글을 쓰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음 없는 남편과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남편 없이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했다. “미모도 우수”하니 글을 받아준다는 남자들은 좀, 화나지만 일단은 운이 좋은 셈. 물론 너무 이른 생각이었다.



"여자와 남자가 똑같다고?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여자의 정조가 중한 게 아니라니?”

“외국물 먹더니, 사람이 이상해졌구먼”

출처ⓒ민음사 <인형의 집> 표지

여성의 삶과 해방에 관한 경희의 사상 때문이었다. 처음엔 남자들에게도 제법 신기하고 귀여운 소리였지만, 귀여운 소리가 선을 넘으면 안 될 말이었다. 경희가 번역한 서양 희곡,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이 가장 큰 문제가 됐다. 조선에도 여성해방의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경희가 직접 선택한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 노라는 인형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예쁜 아내와 착한 딸로 살아가라는 남편과 아버지를 비난한다. 조선의 남자들에겐 선을 넘는 이야기가 틀림없다. 그때부터였다. 경희 자신의 삶과 동료 여성들의 삶을 위해 시작한 집필 활동이 거꾸로 경희의 삶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천박한 허영심에 알량한 재주를 믿고 자유연애나 하는 분내 나는 모던 걸”

“소문의 나경희가 자유연애를 즐긴다지? 문란한 년!”

1920년대 모던걸에 대한 비난 칼럼들

출처ⓒ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남자들은 경희의 사상을 비난하더니, 이내 “문란한 년”이라 노래했다. 지식인이라는 남자들은 경희의 이혼 경력, 연애 이력,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스캔들을 가지고 칼럼을 썼다. 조롱과 비난과 조리돌림을 위한 저널리즘. 남자들은 어렵지 않게 모던걸 나경희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


하긴, 어디 “여자 예술가라는 천하의 잡것들”이 남자를 비난하고 사회를 비판하는가?

# 2018년 이화영의 삶

2018년 서울엔 이화영이란 이름의 여자가 살고 있다. 그녀는 만년 취준생, 학력도 스펙도 심지어 외모도 나쁘지 않지만 어쩐지 취직은 요원하다. 하긴 뭐 누군들 취직이 쉽겠느냐마는, 면접장에서 받는 이상한 질문들을 보면 이게 단순한 취업난인가 싶다.


“남자친구 있어요?”

“남자처럼 일할 수 있겠어요?”

“성희롱을 당하면 어떻게 대처할 거죠?”

"커피 타는 비정규직 여자"

출처ⓒ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성희롱을 당해도 유머로 넘기겠다는 대답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화영은 가까스로 출판사에 취직했다. “면접자 중에 화영 씨가 제일 예뻤다”며 웃어대는 부장님은 좀, 화나지만 일단은 한시름 놨다. 물론 너무 이른 생각이었다.


“커피는 역시 여자가 따라야 맛이 좋아”

“화영 씨가 술 좀 따라봐요, 부장님 기분 좋게”

“근데 왜 치마 안 입어? 몸매 아깝게”

지금은 남녀평등 시대고 여성 상위 시대라는데 뭔가 이상하다. 여자가 커피 타고 술 따르는 남녀평등이라니.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싶어서 화영은 100년 전 경성의 신여성, 나경희를 주제로 여성주의 출판을 기획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거꾸로 화영의 삶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화영 씨 설마 빼미니즘? 뭐 그런 거 하는 사람이야?”


발표 후 돌아오는 말. 대리는 한숨 쉬고 부장은 화를 낸다. 설상가상 부장의 비난에 얼굴을 굳히자 사내 익명 게시판엔 그녀에 대한 험담이 올라온다.



“꼴페미 아님?”

“김치녀 아님?”

뭐 이런 것들.


출처ⓒ뮤지컬 모던걸 백년사X일러스트레이터 씨냉

한 번 김치녀가 되니 추락은 순식간이다. ‘꼴페미’ 화영은 SNS 계정과 신상까지 털리며 사내 최악의 유명인사가 됐고, 이제 ‘남자 문제’ 같은 사생활과 관련된 루머까지 따라다닌다. 지쳐가던 차에 “몸매가 탱글탱글 물이 올랐”다는 부장의 성희롱은 도저히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부장님, 그거 성희롱입니다”

“뭐? 화영 씨 미쳤어?”


그리고 퇴사, 아니 해고였다. 하긴, 상사의 칭찬을 성범죄로 몰은 꽃뱀 여직원이니 회사로서도 남겨둘 수가 없다. 부장은 “앞으로 여자는 절대 뽑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 100년 전에도 존재한 ‘꼴페미’의 기록


1918년 나경희와 2018년 이화영의 삶은 얼마나 달랐을까? 100년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들에겐 공통점이 많았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삶 곳곳에서 부당한 처사를 받았다.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니 경희는 문란한 모던걸이 됐고, 화영은 꼴페미 김치녀가 됐다.


아, 사실 두 사람이 실존 인물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의 스토리로, 허구다.

출처ⓒ뮤지컬 모던걸 백년사X일러스트레이터 씨냉

그렇다면 현실의 1918년은 어땠을까. 모던걸 나경희의 실제 모델 나혜석, 윤심덕, 김일엽은 1920~30년대에 활동한 신여성 지식인들이었다. 나혜석은 뛰어난 화가이자 문인, 윤심덕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가수, 김일엽은 문필가로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을 실제로 번역했다.

나혜석 자화상

출처ⓒ수원시립아이파크 제공

유래없는 성취를 낸 전문직 여성, 여성해방을 추구한 여성주의자였던 이들의 삶은 대개 비참했다. 그들의 사생활, 행실과 사상에 대한 비난 등이 평생에 걸쳐 그들을 따라다녔다. 나혜석은 온 사회의 손가락질 속에서 행려병자로 객사했고, 윤심덕은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을 견디지 못하고 애인 김우진과 함께 동반자살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일엽은 말년에 승려가 되어 불교로 귀의했다.


현실의 2018년은 어떨까. 나경희의 모델들이 당대를 풍미한 저명인사들이라면, 이화영의 실제 모델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자들이다. 지난 4월 밝혀진 은행 채용 성차별 속 여성 지원자들. 성폭행을 당하고도 꽃뱀으로 몰려 퇴직한 ‘한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검찰 내 성추행을 고발한 이후 사무실을 빼야 했던 서지현 검사와, 다른 수많은 ‘미투’ 고발자들이 바로 ‘꼴페미 김치녀’ 이화영이다.

출처ⓒMBC

모던걸 나경희와 그 모델들의 삶을 보고 ‘거 참 여자가 살기 힘든 시대였구나’, 하며 혀를 찰 사람들은 많다. 하기야 현대적 감각을 지닌 이들에게 100년 전 조선사회의 부조리에 동감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꼴페미 이화영과 현대 여성들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을까? 옛말이 된 모던걸과 달리 꼴페미라는 단어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멸칭이다.


여기서 다시 물을 수 있겠다. 1918년 나경희와 2018년 이화영의 삶은 얼마나 달랐을까. 그리고 이 가상의 여성들과 현실 속 여성들의 삶은 또 얼마나 다를까. 여전히 어떤 ‘꼴페미’들이 밥줄을 잃거나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회를 우리는 현대적이라 평할 수 있을까? 그 ‘꼴페미’는 백 년 전부터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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