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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이면서 청소년이라서 하게 되는 생각들

조회수 2018. 5. 5. 1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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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을 인터뷰했다.

한 사람의 몸에는 한 가지의 정체성만 깃들지 않는다. 페미니즘 역시 하나의 모양이 아니다. <고함20>은 퀴어, 청소년, 장애, 성판매, 개신교라는 정체성과 페미니즘이 교차되는 곳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태양(가명)님, 유예(가명)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태양: 태양이라고 해요. ‘탈학교’했고요. 세월호 사건과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겪으면서 청소년 인권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했어요.


유예: 저는 유예라고 해요. 대안학교를 졸업했고, 성미산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페미니즘과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Q.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태양: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여러 집회에 참여했어요. 하지만 여성이면서 청소년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동등한 연대자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2016년 여름부터 청소년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죠.


그러던 중 [페미나] 라는 2박 3일 캠프를 통해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형성됐어요. 함께 운동하고 지속적으로 교류할 방법을 고민하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을 만들었어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출처: ⓒ페미나

Q. 지난 1월 7일 <탈학교 세미나>가 마무리됐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유예: <탈학교 세미나>는 작년 상반기에 <학교 세미나>를 마치며 기획됐어요. <학교 세미나>에서 학교 안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공유하게 됐죠.


대학 입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존재하고, 선생과 학생이라는 명백한 위계 관계가 존재하는 한 학교는 억압적일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공유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탈학교 세미나>가 열렸어요. 학교 바깥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죠.

Q. 학교가 억압적인 공간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남성 청소년과 여성 청소년이 겪는 억압의 양상은 다를 것 같습니다. “소수자일수록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된다”는 말처럼요. 소수자라서 겪는 억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유예: 학교 자체가 청소년에게 폭력적인 공간이지만, 특히나 소수자에게는 더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학교에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만 있어요. (성 소수자에게) 폭력이에요. 남자와 여자 둘로만 나눠진 세상에서 스스로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공간 자체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진 거죠. 비장애 학생들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학생 개개인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거죠.

Q.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 중에 ‘나를 가장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있나요?


유예: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말이 있어요.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말이 그래요. 청소년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이 말 자체가 폭력이에요.


그런데 이 말에 대해 “청소년은 미성숙하지 않다”고 반박하는 건 결국 성숙/미성숙 프레임을 답습할 뿐이에요. 모든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평등해요. 성숙과 미성숙이라는 기준으로 인간의 권리를 제한하는 게 폭력인 거죠.

출처: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딸들의 페미니즘 세미나>

Q. <딸들의 페미니즘> 세미나를 통해 ‘탈가정’을 고민한다고 들었습니다. 여성 청소년에게 가정은 어떤 공간인가요?


태양: 청소년, 특히나 여성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가정에 만연해요. 여성 청소년들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통제당하죠. 보호의 이름으로 짧은 치마, 화장, 야간 외출을 금지해요. 모든 여성 청소년을 딸로서 정체화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이 모든 폭력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곳이 가정이에요.


여성 청소년은 집안에서 솔직할 수 없어요. 통제당할 테니까요. 실제로 제게 가정은 솔직할 수 없는 공간이에요. 자퇴한다고 말했을 때, 동성연애를 한다는 걸 부모님이 알게 됐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좋지 않았어요.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하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워요.

Q. 청소년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운동을 실천하고, 이와 더불어 청소년 참정권 운동, 탈학교 운동, 탈가정 운동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유예: 여성 청소년이 겪는 차별은 여성과 청소년이 받는 차별을 단순하게 섞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이면서 청소년이라서 겪는 또 다른 차별이 있어요. 예를 들어, 성인 여성은 청소년이 아니기 때문에 탈가정을 선택할 수 있어요.


남성 청소년은 아직 어리지만, 남성이기 때문에 탈가정해도 안전할 거라고 여겨져요. 그러나 여성 청소년은 달라요. 가족 바깥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로 여겨지죠.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바로 이 지점에 대해서 고민해요.

태양: 저는 필요하니까 해요. 하나의 차별을 끊어낸다고 모든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잖아요.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방법은 없어요. 그렇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저마다 가진 힘으로 운동을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여성이면서, 청소년이니까,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탈학교 운동, 탈가정 운동, 청소년 참정권 운동,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거예요.

출처: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Q. 청소년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태양: 저는 페미니즘 캠프 때가 생각나요. 캠프 마지막 날, 여성 청소년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웃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저는 자위 이야기를 하다 울었어요.


여성 청소년의 섹슈얼리티가 죄악으로 여겨지잖아요. 자위를 하면서 혼자 죄책감을 많이 느꼈어요. 많은 사람 앞에서 자위 이야기를 한 게 처음이었죠. (웃음) 털어놓으니까 해방감이 찾아오더라고요.

Q.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 꿈꾸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유예: 빵을 주는 게 아니라 메뉴판을 달라는 말 있잖아요. 청소년에게도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태양: 위계 없는 관계 속에서 사랑을 상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위계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요.

이 글은 직썰 외부 필진 <고함20>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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