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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시댁은 오로지 며느리에게만 이상한 나라였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향한 공분, 며느리를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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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라는 이름의 소녀가 흰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아내라 불리기 시작한 여성이 남편의 손에 이끌려 '시댁'으로 간다. 그리고 아주 이상한 나라를 만난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곳, 적어도 나는 아닐 거라 여겼던 곳, '세상에 이런 일이!'라 저절로 외치게 되는 곳. 정신을 차려보니 그 미지의 세계에 와 있다. 이제 그 여성의 이름은 '며느리'다. 참 괴상한 이름이다.


그곳은 오로지 며느리에게만 이상한 나라였다. 그 낯선 공간에서 며느리는 가족도 아니었고, 손님도 아니었다. 며느리(=아들의 아내)라는 매우 난해한,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일 뿐이었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현 시대의 가정의 모습을 며느리의 시선에서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그 시선으로 바라본 가정과 시댁의 풍경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자기는 우리 집에 갈 때 진짜 편안하게 트레이닝 복 입고 가잖아. 우리 엄마 아빠가 밥 먹으러 오라고 하면 자기는 여름에 맨발에 슬리퍼 신고, 반바지 입고, 야구모자 눌러쓰고 가잖아. 우리 집 갈 때. 근데 왜 나는 자기 부모님 집 갈 때마다 뭘 입어야 할지 신경이 쓰이고, 새벽부터 나와가지고 샵에서 변신을 하고 가야 하는지 모르겠네." 


민지영은 시댁 갈 때마다 전전긍긍해야 했다. 전날부터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떤 머리를 해야 할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남편은 "다음부터는 슬리퍼 신고 와", "다 마음에 달린 거야."라며 철없는 소리나 늘어 놓는다. 한숨밖에 안 나온다. 친정은 잠깐 들리기도 빠듯하다. 발길이 무거웠다. 시댁에 가서 고생할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떠올리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아니나 다를까.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에 직행해야 했다. 시댁 어르신들을 맞아야 하니 옷도 제대로 갈아입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처음 온 날은 이렇게 안 해도 되는 거야,"라고 만류했지만, 이내 "그럼 앞치마 줄까?"라며 본격적으로 업무 분담을 시킨다. 주방의 분위기와 거실의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었다. '여자들은 왜 시댁에만 가면 부엌에서 벗어나질 못할까?', '왜 음식의 간은 남자들의 입맛에 맞춰야 할까?' 질문이 쌓인다.

그나마 민지영의 경우는 가장 원만한 편에 속했다. 박세미의 이상한 나라는 경악스러웠다. 명절을 맞아 만삭의 몸으로 홀로 시댁으로 가야했던 박세미는 식모에 가까웠다. 그 누구도 박세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 어떤 배려도 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부엌에서 전을 부쳐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밤이 깊어 아이를 재우려고 했지만, 시댁 식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결국 박세미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뒤늦게 도착한 남편은 눈치가 없었다. 홀로 힘들었을 아내의 상황을 파악하기보다 술을 꺼내놓으며 시댁 식구들과 놀 궁리만 했다. 더욱 경악스러웠던 건, 며느리에게 자연분만을 강요하는 시아버지였다. 그는 산모의 건강과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손주의 아이큐를 먼저 챙겼다. 며느리를 출산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발상이었다. 서운함이 밀려온 박세미는 또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머니가 그냥 일방적이시잖아. 말을 전혀 안 들으시니까, 정말 분출을 못하는 최고점이 있단 말이야. 그런 부분들 그때였던 것 같아. 어쨌든 나도 너무 속상하고 힘들고 그 순간에.. (눈물) 오빠마저 외면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그 순간 너무 괘씸하다? 나쁘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때가 있지."


김단빈은 워킹맘이다. 육아뿐 아니라 시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홀 서빙과 계산을 맡아 일한다. 또, 인터넷으로 개인 사업까지 하고 있다.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하다. 시어머니는 아침부터 전화를 쉴 새 없이 하며 며느리를 재촉한다. 


겨우겨우 일을 마무리 짓고 식당에 나가면 그때부터 잔소리 폭격이 이어진다. 시어머니는 식당 일부터 육아 문제까지 개입하고, 그와 같은 압박은 며느리를 숨막히게 만든다.

손목이 아파 깁스를 하고 있지만 쉴 틈이 없다. 병원 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다. 시어머니는 "(병원은) 새벽에 가 봐라"라며 속을 긁는다. 간신히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았지만, 의사는 팔을 계속 쓰면 더 악화된다고 우려한다. 시어머니는 손주들의 옷과 문화센터 강좌를 알아보고, 자신의 취향을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계속 강요하다. 김단빈은 속이 타들어간다. 그런데 남편은 뒷짐만 지고 있다. 남편은 어김없이 남(의) 편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제작진은 "단순히 누굴 욕하기 위함이거나 그 집의 변화만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을 보고 시청자의 집이 변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단순히 한 개인, 한 집안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래 기간동안 암묵적으로 내려온 사회문화적인 문제일 것이다. 심각한 사안도 눈에 띄지만, 프로그램 속의 며느리가 겪게 되는 일상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인 것 같지만, 결코 둘 만의 문제가 아니다. 둘이 맞물려 있는 것도 있지만,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이 너무 수동적으로 빠져 있기 때문에 고부 갈등으로 표출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여러가지 문제가 그 현상으로 드러나는 건데, 자꾸만 둘의 싸움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김지윤 소장)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소극적인 남편 김재욱에게 욕을 쏟아붓거나, 시어머니들의 과도한 참견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 또, 대부분의 고민 상담 프로그램처럼 '서로 조금씩 양보하세요' 정도의 결말로 몰고 가는 건 하나마나한 일일 뿐이다. '나도 며느리고, 너도 며느리인데', '내 딸도 시댁에 가면 며느린데' 같은 역지사지로 풀어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훨씬 더 뿌리깊고,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에 대한 '좋은연애연구소' 김지윤 소장의 진단과 솔루션은 가뭄의 단비처럼 시원하다. 김 소장은 며느리의 시선에서 발견된 수많은 문제들을 가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남자들이 스스로를 '중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정의 일원이자 주체로서 남자들의 인식 변화가 시급한 부분이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이상한 나라가 오직 시댁뿐이겠는가. 여성에게 세상은 애초부터 이상한 나라였다. 가사 노동과 육아를 도맡아야 하고, 거기에 직장에서도 과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몸을 사리면 '여자라서 그렇다'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뿐인가. 시댁에 가면 '며느리'가 돼야 한다. 이처럼 여성들은 그들을 슈퍼우먼이 되길 강요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소위 ‘맘카페’ 같은 곳을 보면 시댁 욕으로 밤을 새우는 비생산적인 활동들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면도 있겠지만, 결국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고부갈등’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이 문제의 본질은 불평등한 가족문화와 성차별인 만큼 단순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정규편성하기로 했는데 시청자들도 한숨 돌리고, 조금 거리감을 두고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길 것이다. ‘성찰’의 기회를 얻는 것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의미다.”



정성후 PD의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파일럿 방송을 마치고 재정비 기간을 거쳐 6월 초부터 정규 편성된다. 제작진은 정규 편성 시 단순히 상황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분석과 대안 제시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겠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의 문제제기가 훨씬 더 치열한 고민을 이끌어내길 기대한다.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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