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임을 '학교'에 돌리는 사회

조회수 2018. 3. 28. 1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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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교육정책, '어떻게'는 없다.

1. 미세먼지가 심각해졌다. 휴교를 검토하겠다고 서울시장이 말했다. 휴교하면 우리 애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지? 미세먼지가 계속 심하면 휴교도 계속하는 건가? 학교가 휴교하면 우리 회사도 쉬나? 가만, 그런데 휴교령은 시장이 아니라 교육감 권한 사항이라고?


2.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 학교 돌봄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새벽 6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모든 초등학교에서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공약했다. 충분한 검토와 준비 없이 시작됐다. 학교는 아이를 돌봐주어야 하므로 바닥공사를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돌봄을 받는다. 


선생님은 돌봄 프로그램도 짜야 하고, 돌봄 강사도 채용해야 한다. 돌봄 강사 채용을 위해 공고를 띄우고, 접수를 받고, 면접을 한다. 근무태도도 봐야 하고, 돌봄 아이들 지도에 문제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애들한테 물어보니 돌봄 교실에 남는 아이들은 부모나 가족이 와서 빨리 데려갔으면 한단다. 아이들 저학년일 때는 법으로 조기 퇴근을 강제하면 안 되나? 아니면 지자체에서 책임지고, 전문 인력을 채용해서 돌봐주면 안 되나? 

출처: 연합뉴스

3.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엄청나다. 방과 후 학교를 검토하겠단다.


학부모들에게 안내장을 내보낸다. 방과 후 프로그램 수요조사를 한다. 수요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강사를 모집한다. 서류를 확인한다. 범죄경력조회를 한다. 면접을 한다. 강사의 근무태도를 점검한다. 방과 후 프로그램 안내장을 만든다. 접수를 한다. 스쿨뱅킹으로 돈을 받는다. 미납자 확인을 한다. 납부를 재촉한다. 프로그램 신청을 취소하는 아이가 있다. 환불을 한다.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 시간 및 장소 안내를 한다. 결석 확인을 한다. 


강사비, 프로그램 재료비 구입 기안을 하고, 결재를 받는다. 프로그램은 많으면 20개 이상, 적으면 10개 미만. 만나야 할 강사는 수십 명이고, 전화와 문자를 돌리는데 걸리는 시간만 수 시간. 면접 일정과 시간을 확인해야 하고, 면접에 오는지 안 오는지도 확인해야 하며, 채용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도 전달해야 한다. 방과후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도 해야 한다. 이걸 1년에 4번. 분기마다 다시 해야 한다. 


방과후 업무가 힘들다고 했더니 ‘방과후 코디네이터’라고 보조업무를 해주는 비정규직 인력을 30만 원 정도에 채용하란다. 이젠 그마저 예산이 없다고 학교에서 알아서 하란다. 도대체 선생님은 언제 아이들을 가르칠까? 


그래서 서울 지역의 경우, 방과후 학교를 업체에 맡기기도 했단다. 그런데 업체가 강사들 인건비를 떼먹는 경우가 생겼다. 그렇다. 기업은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이니까. 그나마 성남시나 서울 도봉구는 지자체에서 책임을 진단다.

출처: 연합뉴스
방과후 코디, 게다가 채용 이후에는 나몰라라 한다.

4. 현장체험학습 안전사고가 일어났다. 안전교육을 늘리겠다고 한다. 교육부는 교사들의 체험학습 안전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체험학습 사전답사를 가야 한다. 체험학습 가는 곳의 정수기 수질 안전 검사서, 식당의 화재 안전 점검표 등을 확인한다. 아이들이 타는 버스 타이어도 보고, 운전자의 음주여부도 확인하고, 아이들 데리고 체험학습을 갈 때 확인하고 검토해야 할 사항이 수십 가지다.


교사들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이들 안전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궁금증이 생긴다. 국가나 정부가 허가를 내준 업체와 계약을 했다는 것은 정부나 지자체가 전문가를 통해 안전을 인증했다는 증거인데, 도대체 왜 교사가 프로그램 자체가 아닌 안전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까? 혹시 사고가 나면 교육부 매뉴얼대로 하지 않은 교사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출처: 연합뉴스
대사기극에 가까웠던 이명박 정부의 '어륀지' 영어 교육.

5. 영어교육이 중요하다. 영어수업을 늘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어륀지 교육’을 말하던 이들이 초등학교의 영어 시수를 늘려놓았다. 영어를 가르칠 교사가 필요했고, 교육부는 교원임용 TO가 확보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영어전문강사를 채용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교육부는 교원임용 TO를 늘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약 15명이라 OECD 평균보다 낮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우리나라만 수업 안 하는 교사인 교장, 교감, 보건교사, 영양교사 등을 포함했지만 그 사실은 감춘다. 수업하는 교사를 기준으로 보면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5명을 웃돈다. 영어 수업 일수는 많아졌지만 가르칠 ‘정식’ 교사는 없다. 이 피해는 누가 안는 걸까?

6. 7대 안전교육표준안이라는 게 있다. 생활안전, 교통안전, 폭력예방 및 신변보호교육, 약물 및 사이버중독예방교육, 재난안전교육, 직업안전교육, 응급처치교육을 포함한 것을 51시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영양교육 연간 2시간, 인터넷 중독예방교육 연간 1회 이상, 학교폭력예방교육 학기별 1회 2시간씩 연간 4시간, 아동학대예방교육 연간 8시간 이상, 교통안전교육 연간 10시간 이상, 실종유괴예방교육 연간 10시간 이상, 학생인권교육 학기당 2시간 이상, 재난대비안전교육 연간 6시간 이상, 성교육 연간 20시간 이상, 장애인식교육 연간 1시간, 통일교육 연간 10시간 이상… 


모두가 해마다 교육과정 안에서 실시해야 하는 법령으로 정해진 수업이다. 단순 계산으로 약 140시간이다. 몇 시간을 실시했는지도 교육부에 보고해야 한다. 연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은 102시간이다. 창의적 체험활동? 글쎄? 도대체 무엇이 창의적 체험활동인지 모르겠다.

7. 국공립 어린이집이 부족하다. 초등학교 입학 인원이 감소해 학교에 빈 교실이 늘어나니 어린이집을 설치하자고 한다. 일찍 아이를 맡겨야 하는 부모, 늦게 맡겨야 하는 부모, 아이를 일찍 데려가는 부모, 늦게 데려가는 부모 등 가정마다 상황이 다 다르다. 수시로 많은 이들이 학교에 드나든다. 그런데 내 아이 안전은 누가 책임지지?


북유럽 교육이 인기다. 학교에 흡음, 방음, 차음 시설이 된 음악실에서 마음껏 노래하고, 다양한 악기연주도 하는 학교가 TV에서 소개된다. 목공 수업을 할 수 있는 학교,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실내에서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교실, 모둠별로 회의할 수 있는 공간이 학교 곳곳에 있는 꿈의 학교.

출처: Jtbc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8. 모든 책임은 학교가 진다. 아니, 우리 사회는 모든 책임을 학교에 던진다. 사회를 위한 교육을 하라고 해놓고 생긴 문제는 온통 학교에 미뤄버린다. 미세먼지가 심하면 학교가 휴교하면 되고,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으면 학교에 돌봄교실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돌보라고 하면 되고, 사교육비 부담이 크면 학교에 방과후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라고 교사들에게 시키면 된다. 


체험학습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체험학습 실시를 까다롭게 만들어 교사들이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하면 되고, 영어를 가르칠 교사가 부족하면 돈도 아낄 겸 계약직 영어전문강사를 채용하면 되고, 창의적 체험활동 창의적으로 짜기 힘들 테니 법령에 따르라고 하면 되고, 국공립 어린이집이 부족하면 학교의 빈 교실에 어린이집을 만들어 교사들이 운영하라고 하면 된다. 


자, 이제 다음은 아이들이 놀 줄을 모르니 학교에서 3시까지 놀이 밥으로 놀이를 가르치라고 해야겠다. 교사들에게. 

* 초등교사로 근무 중인 외부 필진 '천경호'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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