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보다 일찍 철 든 '블랙 팬서'

조회수 2018. 2. 24. 14: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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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의 주인공 티찰라는 가면을 벗고 능력을 잃은 상태로 적과 싸우며 자신의 힘을 성찰한다. 가면과 묠니르를 잃은 '아이언 맨'과 '토르'가 세 번째 시리즈에서 할 법한 고민을 첫 편에 모두 했다. 블랙 팬서, 철이 너무도 빨리 든 영웅이다.

전문가 평에 비해 관객 호불호가 갈리는 <블랙 팬서>. ‘노잼’이라는 관객들의 평도 이해가 된다. 이번 영화는 최근의 마블 시리즈치고는 유머 코드가 적다. 다른 영웅의 액션보다 색다르거나, 화려하지도 않다.


아이언 맨의 공중 활강,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이동, 토르의 초인적인 힘,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과 비교하면 블랙 팬서는 단조롭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전사의 액션이 주를 이루고, 이 단순함을 해결하기 위해 차량 등의 탈 것을 이용하지만 광안대교의 화려함보다 눈을 즐겁게 하지 못했다.

출처: 블랙팬서

그런데 ‘노잼’ 덕에 영화의 퀄리티는 더 좋아졌다. <블랙 팬서>는 볼거리를 줄이고, 영화적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몇 가지 파격적인 시도가 눈에 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나) 영웅의 피부색이다. <블랙 팬서>는 ‘와칸다’라는 제3세계의 국왕 티찰라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단순히 흑인 캐릭터들이 출연하는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땅에서 이야기를 전개했다. 이런 시선을 통해 억압당하는 흑인과 아프리카의 자원 문제 등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한다. 


특히 티찰라(채드윅 보스만)와 킬몽거(마이클 B. 조던)가 보이는 관점의 차이가 흥미롭다. 제3세계의 권력자로서 흑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한 두 사람의 대립은 팽팽하게 진행된다. 그들의 선택에 옳고 그름을 말하는 건 꽤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다. 


여기에 현재 국제 정세에 관한 비판과 풍자도 빠지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국제 관계 속에 어리석은 자는 장벽을 쌓는다”는 대사는 트럼프의 인종 정책을 꼬집는 말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블랙 팬서>의 인물들은 ‘망할 미국’이라는 대사를 노골적으로 쓰며,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한다.

출처: 블랙팬서

이야기 내적으로 <블랙 팬서>는 <라이언 킹>과 『햄릿』 등의 명작을 떠올리게 할 만큼 오락 영화의 한계를 깨는 시도를 했다. 왕위를 두고 시작된 비극이 확장되어 티찰라와 킬몽거의 정치관이 대립하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 영화는 관객을 고민하게 한다. 무엇이 옳은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을 던져준다. 기존 마블 영화의 선과 악이 뚜렷했다면 <블랙 팬서>는 적대자에게 공감할 여지를 줬다. 관객의 고민을 유도하는 깊은 영화다.


더불어 <블랙 팬서>는 다른 마블 히어로의 초창기 모습보다 성숙하다. 대개 마블 시리즈 첫 편의 영웅은 능력을 얻고 강해진다. 그러다 세 번째 편에 가서야 자신의 힘에 관해 고민하고, 성찰하다 성숙한 영웅이 된다. 이런 시리즈의 구도를 <블랙 팬서>는 깬다. 그는 이미 시리즈 첫 편부터 성숙한 영웅이 된 듯하다.

출처: 블랙팬서

<블랙 팬서>에서 티찰라는 이미 능력을 얻고, 그 능력을 다룰 줄 아는 상태로 등장한다. 그리고 가면을 벗고 능력을 잃은 상태로 적과 싸우며, 자신의 힘을 성찰한다. 그러다 결국, 더 강해지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정한다. 가면과 묠니르를 잃은 ‘아이언 맨’과 ‘토르’가 세 번째 시리즈에서 할 법한 고민을 첫 편에 모두 한 셈이다. 블랙 팬서는 철이 너무도 빨리 든 영웅이다.


마블의 1세대 영웅들이 퇴장하고 있다. 이 시점에 그들은 <블랙 팬서>를 통해, 더 깊고 숙성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마블 스튜디오는 오락, 그 이상의 영화를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스펙터클 등의 볼거리뿐만 아니라, 영화적 성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고, 또 반갑다. <블랙팬서>는 여전히 마블의 시대가 진행 중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 외부 필진 '영화 읽어주는 남자' 님의 기고 글입니다.

"모른 척 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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