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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방송국 PD들을 고발합니다"

조회수 2018. 1. 27. 13: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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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가 적폐 청산을 외칠 때 나는 실소했다.

편집자 주.


24일 KBS 구성작가협의회 자유게시판에는 방송국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들을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자신이 수년간 방송계에서 작가 일을 하며 겪은 방송계의 부조리한 참극을 담았다고 말한다. 특히 청년 실업이나 열정페이 문제를 방송으로 다루면서도 내부의 곪은 문제에는 눈 돌리지 않는 방송국 정규직 PD들의 문제를 고발했다.


그가 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전태일 열사처럼 내 몸에 불이라도 지르고 방송국 앞을 뛰어다녀야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까. 아직 용기가 없어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정부도 외면한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줄까"

내부고발자가 살기 힘든 세상이기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 구작협 분위기 변화에 힘입어 글을 올려 봅니다.


일을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년간 방송계에서 작가의 일을 하며 겪었던 부조리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번 주에 문체부 장관과 방송계 담당자들이 만나 방송업계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혹 그 자리에 참여하시는 선배님이 계신다면 이런 이야기들도 전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 저와 주변인들이 겪은 부조리들을 나열해볼까 합니다. 


다소 거친 표현이 나올 수 있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출처: 뉴스타파

시사 고발 프로그램, 너희를 고발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뉴스타파 '목격자들'에 자리를 잡아볼까 한 적이 있었다. 둘 다 2016년의 일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내가 방송 일을 하면서 만난 최악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방송은 6주 간격으로 돌아갔고 모두 내부에 6개의 팀이 있었다. 


당시 월급은 160만원. 그마저도 월별로 주지 않고 방송이 끝나면 6주 후에 일괄지급 되는 형태였다. 뭣도 모르고 처음에는 막내 작가의 월급치고 넉넉한 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곳에선 24시간 일을 한다. 6주 중 기획 주인 첫 주만 10시쯤 출근해 7시쯤 퇴근하고 2~5주엔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한다. 당연히 수당이고 뭐고 없다. 


밥 심부름에 커피 심부름이 주 업무고 기껏 커피를 사 왔더니 이거 말고 다른 메뉴 먹고 싶다는 선배의 말에 도로 내려가 다른 것을 사 오기도 했다. 


글을 쓴다는 알량한 자존심은 내려놓아야 하는 곳이다. 나는 심부름꾼이었다.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던 전임자는 종종 두통약을 하나씩 먹었다. 왜 먹냐고 물어보니 잠이 너무 부족해 만성 두통에 시달린다고 했다. 전태일 열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평화시장의 여공들이 생각났다. 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적폐를 고발하겠다는 피디들이 내부의 문제엔 입을 조개처럼 꾹 닫았다. 


출근 1주일에 되었을 때 나는 담당 피디에게 말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일을 시킬 수가 있냐고. 그 피디가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여기는 똑똑한 작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작가를 원하는 데야. 그렇게 똑똑하게 굴 거면 여기서 일 못 해. 다들 그렇게 일해왔고, 그게 여기의 규정이야.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적폐 청산을 부르짖을 때마다 나는 웃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도 놀라운 곳이었다.


면접 때도,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합격통보를 할 때도 그쪽에선 페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첫 출근 날 나는 페이가 얼마냐고 물었다. 곤란한 듯 담당피디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중파처럼 120만 원씩은 못 줘

당시 공중파의 막내 작가 페이는 약 140만 원 가량이었고 최저임금은 126만 원이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으로 상근을 하며 프리뷰, 섭외 등 많은 일을 떠맡았다.


시사 프로그램의 특성상 섭외나 후반 작업이 굉장히 까다로워 근무시간은 항상 엄청났다. 


사회 정의를 지키는 일인데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이 넉넉지 않아서 그 제작진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나는 물어보고 싶다. 그럼 당신들도 나만큼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하나? 


그건 분명 아니었다. 갑질을 고발하는 그들이 막내 작가들에게 갑질을 하는 형국이 아닌가. 나는 그곳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정규직 피디들은 권력자다

나는 사실 제작사보다는 본사에서 오래 일을 했다. 주로 공영방송에 있었다.


언론이라는 직종의 특성상 많은 피디가 정의를 지키는 시민의 눈과 귀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외부에서 그런 식의 사회 활동을 많이 하는 피디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내부에서 어땠을까? 


아직도 기억이 남는 건 EBS에 있을 때다. 


나의 담당 피디는 아니었지만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어떤 피디의 컴퓨터 배경화면은 백남기 농민의 사진이었다. 그는 배경화면에 'Pray for Korea'라고 적어놓았다. 


하지만 당시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모든 막내 스태프들은 그 피디의 조연출과 막내 작가를 위해 먼저 기도했다. “야 너는 그래서 정규직이 안 되는 거야”, “야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겠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 피디의 폭언에 매일 눈물짓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오래 몸담았던 KBS에는 술을 마시고 회의에 들어오는 피디가 있었다.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해서 전 스태프가 대기한 회의에 들어와서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왜냐고? 그 사람은 피디였으니까.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파워당당했다. 다음에 또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며. 


그 사람을 말리지 못한 조연출이 다른 스태프들 앞에서 대신 죄인이 되었다. 놀라웠다. 그 사람은 이번 KBS 파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어쩌면 마음 놓고 낮술을 할 수 있어서 파업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난 생각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본사 소속의 팀이었지만 우리 팀의 피디만 외주에서 온 프리랜서 피디였다. 좋은 분이었고 배울 점이 많은 방송 선배였다. 


나는 학벌이 다소 좋은 편이다. 방송 일을 하면서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맹세코 없다. 그런데 당시 우리 팀의 CP (본사 부장)은 나와 그 프리 피디를 앉혀두고 이런 말을 했다.

야, 넌 그 학교 나와서 왜 이런 애 밑에서 일하냐?

슈퍼 갑 앞에서 우리는 어정쩡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게도 좋은 피디들도 많이 만났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피디여도 자신이 데리고 있는 막내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표현을 즐겨 쓴다. '내부 규정' 혹은 '내규'. 


그렇게 내부에 짜인 규정이 있는 거면 막내 작가도 정규직 혹은 4대 보험이 되는 계약직이라도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프리랜서라면 그에 걸맞게 유동적으로 움직이게 해줘야지 대체 상근은 왜 시킨단 말인가?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외 일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당신들이 말하는 사회 정의에 맞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파업이니 뭐니, 권력에 희생당한 약자인 척하는 당신들이 웃긴다. 당신들은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없으니 그런 것도 하겠지. 나는 당신들의 착취로 당장 먹고살 일이 아쉬워 사회에 관심조차 주기가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재미있는 집단이었다

나는 근로 환경에 강한 의문을 품고 (그것이 알고 싶다, 때였다) 고용노동부에 고발했었다. 온라인으로 신고 접수를 하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에게 연락이 온 고용노동부 소속 조사관의 첫 마디는 이랬다.

방송 쪽은 제대로 처리가 안 될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면 조사받으러 한 번 나와요.


왜 방송 쪽은 처리가 잘 안되냐고 물었는데 그는 성의 없는 목소리로 '관례'라 말했다. 나는 결국 조사를 받으러 가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 내가 조사씩이나 받는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사는 그쪽이 받아야지 왜 내가 받나.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의지를 꺾은 것은 조사관의 태도였다. 


청년 실업이니 열정페이니, 방송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웃프다. 저걸 만든 막내작가는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왜 방송 쪽에서 일하는 작가들은 이런 일을 겪어야 할까? 나의 사례가 특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 내 친구들,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글이 너무 길어질까 삼키고 있으니 말이다. 직원처럼 상주해 일하면서도 보험은커녕 계약서 한 장 요구하기 힘든 작가들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 


10여 년 전, SBS에서 막내 작가 한 분이 본사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비참한 선택을 조명해야 할 언론이 자신들의 치부가 두려워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른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처럼 내 몸에 불이라도 지르고 방송국 앞을 뛰어다녀야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까, 방송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될까, 하고. 아직 용기가 없어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정부도 외면한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전설로 내려오는 정치 아이템 모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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