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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이 혁명 이후를 말하지 않는 이유

조회수 2018. 1. 9. 14: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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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패배가 시민의 승리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식자층은 6월 항쟁을 '절반의 승리' 혹은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6월 항쟁의 무용담 뒤에는 언제나 그해 있었던 야권 분열과 대선 패배 이야기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그리고는 6월의 승리를 온전히 계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이어진다.


직선제의 결실을 유사독재권력에 넘겨준 일은 너무나 쓰라린 상처다.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홍준표가 당선된 상상을 해보면 그 비통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후일담과는 별개로 6월 항쟁은 오롯이 찬사 받아 마땅한 승리의 기록이다. 시민의 승리와 정치의 패배는 구분되어야 한다.


항쟁이라는 이름으로 격하되어 불리지만 6월 항쟁의 실상은 혁명에 가깝다. 군부에 도사리고 있던 리틀 전투환들을 좌절시켜 제3의 쿠데타 가능성을 일소했고, 그해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의 시발점이 되어 비로소 노동자가 사람으로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국민을 죽이는 권력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값진 교훈을 남겼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스포츠에서 흔히 '승리DNA'라는 말을 쓴다. 승리의 기억이 선수들의 정신을 지배함으로써 같은 경기력으로도 더 높은 승률을 안겨준다는 의미다. 축구의 레알마드리드가 그렇고, 야구의 뉴욕양키스가 그렇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패배의 기억이 지배하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승리를 망각하는 순간 패배의 기억이 엄습한다.


승리DNA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5월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6월의 승리를 기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7월 14일은 프랑스의 최대 명절인 혁명기념일이다. 매년 이날 에펠탑에서는 혁명의 성공을 축하하는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프랑스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나누며 혁명의 기쁨을 만끽한다. 7월 4일은 미국 시민들이 독립혁명을 기리는 날이다. 역시 미국의 최대 기념일인 이날 미국사람들은 낮에는 바베큐파티를 즐기고 밤에는 미국 전역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와 레이져쇼를 감상한다. 물론 양국의 혁명기념일에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엄숙한 행사도 빠지지 않지만, 혁명을 기억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고 유쾌하며 자부심이 넘쳐난다.


이런 의식을 통해 혁명의 기억은 축제로 승화되고 DNA에 새겨진다.

한국의 민주주의사에도 승리의 기억들이 있다. 멀게는 1960년의 4.19 혁명, 1987년의 6월 항쟁이 있었고 가깝게는 2017년의 촛불 항쟁이 있었다. 한국이란 나라의 민주적 역량은 생각보다 훌륭하다. 총을 들지 않은 시민의 손으로 3차례나 민주주의를 복원했던 시민혁명의 경험은 세계 민주주의사에서도 빛나는 기록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주의란 말은 아직 기쁨보다 아픔에 가까운 느낌이다. 한국은 두 번의 군사쿠데타와 도합 25년의 군사독재를 겪었고, 그와 비슷한 세월의 유사독재를 경험했다. 승리의 기억을 체화할 시간이 너무 짧았던 탓일까.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말은 여전히 비장하고 숙연하다.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빠르게 뿌리내리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승리의 망각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승리의 기억들을 좀 더 기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영화 '1987' 스틸컷

영화 '1987'의 미덕은 6월 항쟁의 기억을 오롯이 승리의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영화는 단호하게도 혁명 이후의 좌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순한 취사 선택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6월항쟁에 대한 불편부당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패배가 시민의 승리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올해는 조금 유쾌한 유월을 맞이하면 어떨까. 사람들이 전두환의 패배를 기념하며 흥청망청 취해 폭죽을 쏘는 광경을 보고 싶다.

가상뉴스로 미리 보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나리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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