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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 한국형 감정팔이의 절정을 보여주다

조회수 2017. 12. 27. 2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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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 울어!!! 울란 말야!!

한국 고유의 장르: 한국형 감정팔이 신파극





야 이거 완전 K-Movie 아니냐?

한국형 감정팔이 신파극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감동이라는 감정을 자극해서 눈물을 흘리게 유도한다는 겁니다. 감동을 통한 눈물, 이걸 빼면 한국형 감정팔이 신파극에 남는 건 사실 별로 없습니다. 관객들은 신파극을 보며 감정적 극단에 치닫고, 엉엉 울다가 극장을 빠져 나오죠.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독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영화 곳곳에 만들어놓고, 그래도 부족할까 봐 안 그래도 극단적인 상황들을 더 극단적으로 만들기 위해 양념을 칩니다. 유니세프 후원 홍보 동영상에 나올 법한 음악들을 영화 곳곳에 배치해서 울음 포인트들을 만들고, 그래도 안 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도 울게 만드는 거죠. 우는 사람들을 보여주면 관객들도 따라 울게 되거든요. 시트콤에 웃음 소리 넣는 거랑 같은 의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과함께>의 김용화 감독은 특히 가족적 가치를 숭배합니다. 가족적 가치를 통해 감동을 이끌어내려고 하죠. 가족적 가치를 위해 필요한 소재들은 정석 마냥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형 감정팔이 신파극을 완성하는 준비물: 부모와 자식

한국형 감정팔이 신파극을 완성하기 위해선 자식이나 손자를 내리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이들은 신파극에서 한 개인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 등장하죠. 이는 그의 역할에서도 드러납니다. <신과함께>에서 주인공 엄마를 연기한 예수정 배우의 역의 이름은 "자홍모(자홍의 엄마)"입니다. 개인으로서 이름이 없어요. 그냥 엄마에요. 에서 "여자시체" 역이 떠오른다면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신파극에서 어머니는 엄밀히 말해 여성도 아니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생활인도 아닙니다. 그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죠. 영화는 부모님의 사랑을 위대한 것 인양 치켜세우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에 세뇌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머니는 영원히 ‘어머니여야 한다’고 부르짖죠. 어머니는 결국에 영화 후반부에 가면 죽기도 하고, 자식의 비극이나 성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자식이 부모의 비극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죠.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국제시장>, 김용화 감독의<국가대표>, <신과함께:죄와벌>는 이런 경향을 설명하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윤제균(왼)과 김용화(오) ⓒ연합뉴스

무조건적인 내리사랑은 그 자체로 눈물을 자아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감독들은 여기에 여러가지 장치를 추가합니다. 그 장치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불효하는 자식입니다. <신과함께>는 물론이고 대표적인 신파 영화 중 하나인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에서도 불효하는 자식이 등장합니다. 감독들이 불효하는 자식을 보여줄 때 쓰는 트릭도 비슷합니다. 누가 봐도 싸가지 없는 비상식적인 캐릭터로 그리죠.


불효하는 자식은 대체로 두 루틴을 따릅니다. 하나, 불효자는 영화 초반에는 부모의 마음도 모르고 제멋대로, 누가 봐도 싸가지 없게 행동합니다. 둘, 부모의 어떤 행동을 부모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합니다. 이 때 생긴 오해는 부모와 자식간에 씻을 수 없는 갈등을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쯤에 가면 자식은 자신을 향한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폭풍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오해는 '알고 보니 부모님의 사랑이었다'로 결론 나죠.


감정팔이 신파극의 오열 포인트는 대체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왜? 우린 다 불효자잖아요. 불효라는 코드는 그 어떤 코드보다도 한국인들에게 평등합니다. 여기엔 남녀노소가 없어요. 20대, 40대, 60대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효자로 여깁니다. 부모들이 하나같이 자식들에게 해준 게 없다며 자책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불행한 가부장제랄까요). 불효라는 코드로 눈물을 자극하는 것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죠. 영화 속에서 불효하는 자식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를 대입시키거든요. 그리고 저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영화 속 어머니는 우리의 어머니를 상기시키죠. 아, 엄마! 담부터는 내가 잘할게! 불효자는 웁니다ㅠㅠ

2017년 한국형 감정팔이 신파극의 정점: <신과함께>

2017년 최고의 신파극은 <신과함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파의 교과서로서 그 지위를 잡지 않을까 싶군요. 이를 위해 김용화 감독은 <신과함께>에 아래와 같은 준비물들을 마련했습니다.

1.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


1.5 부모는 말을 못하는 장애인(원작에 없던 요소)


2. 불효하는 자식


3. 가난한 가족


4. 소방관 주인공(원작에 없던 요소)


5. 소방관 주인공의 죽음(원작에 없던 요소)


6. 군대의 관심병사


7. 눈물로 얼굴을 적시는 캐릭터들


8. 격한 음악! 음악! 울어! 울어! 울어!!!!!



+여기에 더해 김용화 감독이 원작에서 뺀 인물이 하나 있죠. 진기한이라는 변호사입니다.

소방관이 추가되고, 변호사가 빠졌다는 것에서부터 이 영화가 어떤 길을 걸을 지는 명료해집니다. 영화는 대한민국의 모두가 존경해마지 않고, 동시에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머무르고 있는 소방관을 통해 감성팔이를 할 것이고, 원작의 변호사 캐릭터를 빼면서 법정 씬을 대부분 감정적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실제로 예상대로 되었죠. 영화 속 법정 씬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진행됩니다. 소방관이라는 의인이 행했던 악행(?)은 알고 보니 선행을 하다 보니 따라온 결과들이었습니다. 법정 영화(?)에서 흔히 기대하는 검사와 변호사 간의 싸움 같은 건 애초에 없었습니다. 검사는 멍청하고, 변호사(?)는 그저 감성팔이만 하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그 꼬맹이 판사(?)의 말은 더 어이가 없습니다. "의인이니 대충하고 넘기랬지"라는 대사 말이죠. 주인공 일행이 상대해야 하는 자들이 다 이런 식으로 물렁물렁하고 아마추어틱하니 영화의 긴장감은 생기기도 전에 시공의 폭풍으로 사라집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재판이 감정적으로 진행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그 이후부터도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되니 뒤가 예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몇몇 재판은 그냥 생략되었습니다. 3~4번째 재판까지만 다루고, 속편에서 다른 재판들을 더 엄밀하게 다루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죠.


압권은 마지막 재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염라대왕은 이미 진실을 다 알고 있는 신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는 재판이 필요 없다면서 급하게 판결을 내려고 하죠. 그런데 주인공의 동생이 벙어리 어머니의 꿈에 나타나서 진실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은 이에 감격하여 판결문을 찢고 주인공을 환생시킵니다. 이 장면이 왜 웃기냐면, 염라대왕은 동생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을 바꿔먹습니다. 죽은 자들을 수 천년 넘게 봐왔고, 온갖 사연들을 봐왔을 염라대왕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이라는 게 이 영화의 개그 포인트가 아닌 가 싶습니다.

<신과함께>의 부재가 "죄와 벌"이라는데..

죄와 벌이라는 제목은 무색합니다. 이 영화는 죄와 그에 따르는 벌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거든요. 유튜버의 리뷰엉이가 리뷰 영상에서 말했듯, 부재는 "엄마와 자식"이 되는 게 차라리 영화의 내용에 부합하지 않나 합니다.


<신과함께>가 억지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던 자식의 죄를 염라대왕이라는 자가 '엄마가 용서했으니 괜찮아'라는 별로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주인공을 환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주인공이 그 죄를 인지하고 속죄하며 살았다는 이유를 들었다면 납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용서했으니 죄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겠다는 발상은 그다지 설득력도 없습니다. 이건 한국의 판사들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인정되나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충분한 반성을 하고 있으니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다"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설령 이런 판단이 설득력을 가진다 해도, 이런 판단이 어떤 종류의 감동이나 매력이 있는 지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여기에서 '살인미수 피해자'는 엄마입니다. 벙어리인 엄마의 모성애를 빌려서 김용화 감독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얼렁뚱땅 넘겨버립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자식만을 위해 희생했던 불쌍한 엄마가 자식을 용서하리라는 건 너무 뻔하지 않나요? 이런 간편한 장치로 이 시대의 어머니들을 그저 눈물 짜내는 도구로 활용하려고만 하니 영화가 억지스러운 겁니다. 이는 <국가대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국가대표>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부잣집에서 처절하게 근무하는 불쌍한 어머니의 역할이었죠.

또, 만들어진 1000만 영화가 되나?

곧 500만 찍습니다. 딱히 관객들한테 선택권은 없어요. 영화관에 간 이상 <신과함께>를 봐야 하고, <신과함께>를 보는 이상 앉아서 우는 것이 한국 관객들의 역할이겠지요.

* 외부 필진 '박현우'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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