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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장거리 통학을 하면 벌어지는 일

조회수 2017. 12. 20.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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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학(교 가는 길)..

저는 오늘 통학에 대한 문제를 말해보려 합니다. 통학이 뭐 어때서?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어떤 학생들에게 통학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통학이 종종 주거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랬고요.


통학을 왜 했느냐고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에 살면서 수도권 대학에서 자취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던 것도 있고요. 금액만 따졌을 때 500/50 내면서 자취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집밥 먹으면서 교통비만 내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매우 낮았기 때문에, 수도권에 사는 제가 기숙사에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습니다.

통학생은 타임푸어가 됩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휴강 공지가 올라왔을 때 나의 기분.. ⓒWizard of Oz

저는 인천에서 수원으로 통학했습니다. 일 년간 통학했던 시간을 환산했더니 대략 720시간(4시간 x 22.5일 x 8개월)이었습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도권 학생의 평균 통학시간이 하루 170분이라고 하니, 그보다 더 긴 시간을 통학하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겁니다. 일 년 중 한 달을 전철과 버스 위에서 보내는 건 분명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으로 수면 시간이 항상 부족했습니다. 9시 수업인 날은 6시 전에 일어나서 7시에 출발했습니다. 항상 넉넉하게 출발해야 합니다. 출근 시간에는 버스나 전철 하나만 놓치더라도 큰일입니다. 10분 전에는 널널했던 버스와 전철이 어느새 만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앉아서 가는 건 운 좋은 날에만 가능했습니다. 그러니까, 잠이 부족하면 가는 길에 자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도 일주일 중 3일 정도만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중교통에서 자는 잠은 실제로 피로 해소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밝고, 덜컹거리고,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숙면을 취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집에 가는 길은 학교 가는 길보다는 편했습니다. 출퇴근 시간 혹은 통학 시간과 겹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학교 셔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곧 없어졌습니다. 셔틀 유지비가 부담스러웠던(!) 학교는 셔틀을 서울로 향하는 몇 개의 노선만 남겨놓고 없애버렸습니다.

학교는 통학생 복지에 관심이 없죠.

기숙사도 짓기 싫고, 셔틀 노선도 늘리기 싫고…. 학교가 하고 싶은 건 등록금을 올리거나 언론사 대학평가 상위권에 오르는 것뿐이었지요. 대학평가에 통학 학생 복지 부분이 있었다면 제 삶이 조금 편했을까요.


아무튼, 통학시간이 길고 힘들다 보니 시험 기간이 되면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방에 세면도구를 두고 과방에서 자는 사람. 친구 기숙사에 몰래 숨어들어서 자는 사람들. 이마저도 남성만 가능했던 일입니다.


과방은 위험하고, 남의 기숙사에서는 씻기 어렵기 때문에 여성 동기들은 한 달만 계약해서 고시원에 살기도 했습니다. 단언컨대 제대로 된 셔틀만 있었어도 이런 사적 지출 중 상당 부분은 줄었을 겁니다.

이런 거라도 안하면 시간이 안 가요… ⓒ기자 본인 인스타그램

제가 통학의 힘듦에 주목하게 된 건 역설적으로 자취를 시작하면서입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게 LH전세임대대출에 당첨되었고,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이전과 비교해서 삶의 질이 말도 안 되게 높아졌습니다.

통학으로 잃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주거 환경이 갖춰지자 통학하면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많았지만, 몇 개만 꼽아보죠.


우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LH에서 지원하는 전세금 덕분에 월세 걱정이 적었던 특수성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늘어서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생겼다는 점과 돈을 벌어서 내 몸과 내 장소를 내가 책임졌다는 점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대외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외활동 대부분은 학교를 중심으로 열립니다. 회의를 하다가도 막차 시간 때문에 중간에 나와야 했던 기억이 많았죠. 서울에서 한 번, 학교로 돌아와 다시 한번, 마음만 먹는다면 대외활동을 두 탕씩 뛸 수 있을 정도로 시간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자취 3년 차가 됐을 때, 드디어 내가 한곳에 정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밟고 있는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되고,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여유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해당 자치구에서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에 관심 두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역 축제를 구경하고, 박물관, 미술관(지역 주민은 할인이 됩니다!)에 찾아가고, 지역 청년네트워크도 찾으면서 공강이었던 평일을 보냈습니다.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 부모님의 집에 의탁했을 때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입니다.

통학생 위한 환경, 학교가 만들어야 합니다.

졸업한 지는 꽤 됐지만, 통학경험을 떠올리는데 긴 시간이 들지 않았습니다. 통학의 경험과 자취의 경험 사이 간극에서 오는 낙차가 너무나 커서 잊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 : 도로시! 학교 가는 길은 이쪽이에요!
B : 응 안가~~~
ⓒThomas Kinkade

물론 그 낙차가 컸던 건 월세 부담이 적은 저의 (운 좋았던) 환경 덕분일 것입니다. 모든 학생이 저렴한 월세에 자취할 수 있고,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당장 만드는 것이 무리라는 건 압니다. 더군다나 정말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자취방과 기숙사에서도 잃는 것들은 많겠죠.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학생이 학교로 공부하러 오는 길은 적어도 학교가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법은 학교에 소위 ‘문화복합시설’을 설치하는 것 외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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