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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행복하려면 대체 어디에 살아야 할까?

기숙사도 자취도 통학도 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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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 그중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이 사는 공간의 종류를 크게 분류해보면 기숙사, 학사, 자취, 본가(주로 부모님과 함께 살며 통학하는 공간)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하루는 어떨까? 매일매일 살아가는, 살아가야만 하는 공간에서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닐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청년주거’라는 짧은 단어 속에 다 담기지 못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다층적으로 얽혀있는 삶의 문제에 대해 관찰해보자 


기숙사 / 학사 : 저는 “자유”를 지불하고 있어요 


기숙사, 학사 등에 사는 학생들은 단순히 이용료만을 지불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공간에 대한 대가로 자유를 지불한다. 통금시간과 각종 타율적인 활동들, 그리고 규칙 위반 시에 부여되는 벌점 속에서 살아간다. 


입소 시에 그들이 합의하지 않았냐고? 그 공간에 살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합의가 얼마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들이 지불하는 자유가 부당하다고 해도 그곳이 아니면 선택권이 없는 이들은 자신 있게 부당하다고 외치기 힘들다.


다른 곳에서 현실적인 조건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현실적인 조건을 위해서는 자유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자취 : “돈이 많아야만… 안전할 수 있는 건가요?” 


기숙사 혹은 학사의 규제를 피하고 싶은 이들이나 기숙사 선발에서 밀려난 이들은 자취라는 주거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자취를 택하는 이들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현저하게 차이 나는 삶을 경험하게 된다.

비단 공간의 질뿐만 아니다. 안전도 위협받는다. 자취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그리고 돈이 부족한 이들은, 그저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특히 생활비와 주거비용을 직접 버는 이들에게 이 방식은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 아니다.


벌어들이는 전체 생활비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막대하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선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혹여 일할 곳을 잃게 된다면 더욱 비좁고 위험한 공간으로 내몰린다. 


집이라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안락해야 하고 안전해야 할 것인데, 가지고 있는 돈에 따라 안락함과 안전에 위계가 나뉘는 꼴이다. 


통학 : “시.못.미! (시간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본가에서 통학을 하면 비교적 나은 집에서 거주할 수 있다. 학교까지 거리가 가까우면 굳이 따로 집을 얻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취나 기숙사 생활을 하기엔 비용 등이 부담 돼 어쩔 수 없이 장시간 통학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들은 시간을 지불해야만 한다.

등하교 시간 ‘자투리 시간’이 중요하다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왔다만 그게 어찌 쉬운 일이던가. 출퇴근 시간 만원 지하철, 만원 버스 안에서 시간을 활용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기나긴 통학 여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다. 늦은 시간까지 이뤄지는 활동에 참여하기 힘들어지는 일은 부지기수. 비용이 부담돼서 통학을 한다면, 이도 결국에는 활용 가능한 절대적 시간을 만들기 위한 돈이 부족해서 빚어지는 일 아닌가. 


청년에게 ‘먹고 산다’는 말이란 


우리는 종종 ‘먹고 산다’는 말을 즐겨 쓰곤 한다. ‘어찌어찌 근근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그 한숨 섞인 “어찌어찌”에는 우리가 내뱉는 것 이상의 바람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인간답게 즐길 수 있는 식단, 마음껏 고르지는 못해도 나름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옷,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 보낼 수 있는 여가 시간, 그리고 안락하고 안전한 나만의 공간까지 우리 일상에 대한 바람 말이다. 지나친 주장 아니냐고? 아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적정한 삶에 대한 요구다. 


우리가 살아가는 각자의 공간(집)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구심점이다. 소위 “먹고 자고 싸는” 공간이며, 사적인 활동들의 주된 무대이기도 하다. 일부 집단의 사람들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20대 대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적 공간, 즉 집에 대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은 이 권리를 충분하게 누리고 있는가? 그들이 그리고 있는 삶의 모습은 우리가 그려보고 있는, 그려야 하는 공간의 모습과 얼마나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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