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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상사는 차라리 신경을 끄자

조회수 2017. 11. 24. 17: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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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합리화 절대 아님, 절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 유지태가 변심한 애인 이영애에게 하는 대사다. 이 짧은 한 줄이 한국영화 명대사 리스트 탑에 올라가 있는 것은 ‘사랑이란 변하는 것일까, 변하지 않는 것일까’부터 시작해서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과연 사랑은 변하는 것일까, 변하지 않는 것일까?

출처: 영화 <봄날은 간다>

“사람은 진짜 안 변해”


이 질문은 결국 ‘사람은 과연 변하는가?’로 이어진다. 사랑도 결국 사람의 일이니까.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사람은 진짜 안 변해” 하는 식의 말을 자주 듣는다. 직장생활 오래 한 내 주변 사람들도 저런 말을 종종 한다.

매일 마시지도 않을 물을 끓이던 상사


나는 직장생활 초년 시절, 사무실에 있는 상사 한 명의 행동으로 인해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그는 하루에 두 번 반드시 사무실 문 옆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봤다. 자신의 책상 바로 옆에 있는 문을 두고 직원들의 책상을 지나 사무실 끝에 있는 문까지 가서 복도로 나갔다. 사무실의 중간쯤에는 테이블이 있고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 커피포트 등을 비치해 놓았는데 그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꼭 커피포트의 버튼을 눌러 물을 끓였다. 


너무 이상하니까 아무도 그에게 뭐라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이 있으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성격이었다. 비품 캐비닛이 지저분하다든가 누군가의 책상 위가 지저분하면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는 그런 예민한 성격이었다. 누가 ‘꽃이’를 ‘꼬치’가 아니고 ‘꼬시’로 발음하면 꼭 그 부분을 지적해야 했다. 


그러니 아무것도 없는 냉장실을 열어보고 사용하지 않을 물을 끓이는 상사가 얼마나 신경 쓰였겠는가. 더군다나 하루에 서너 번씩 허무하게 끓으며 삐익 소리를 내는 그 커피포트는 내 옆자리에 있었다. 냉장고 뒤쪽의 어딘가를 송곳으로 찔러 냉매를 새게 만들어 망가뜨려 놓을까, 커피 포트의 버튼 쪽을 뭔가로 쑤셔서 못 쓰게 해놓은 다음에 대형 보온물통을 사다 놓자고 할까 등등 수많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괴롭혔다.

차라리, 그를 덜 신경쓰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상사의 이상행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선배에게 물어보니 2년 넘게 사무실에서 같은 행동을 해왔고 그 전에 있던 곳에서도 그랬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뭔가 해야 했다. 더 이상 불필요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없었다. 상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낌새만 느껴져도 뒷골이 뜨거워지거나 심할 때는 두통이 왔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으니 상사의 행동을 바꾸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내가 바뀌자'고 생각을 안 해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뒤져본 심리학 상식에 의하면 내가 바뀌는 것도 별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심하던 차에 문득 생각했다. ‘집안에 있는 바보 사촌 형님이라고 생각하자. 머리를 다쳐서 나이는 오십이지만 초등학생처럼 행동하는 바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나는 이전보다는 훨씬 덜 신경을 쓰게 됐다. 바보라고 생각하니까 ‘도대체 왜 저럴까?’ 하던 의문이 사라졌고 바보 사촌 형님이라고 생각하니까 꼴 보기 싫고 밉던 게 사라졌다. 


사람이 변하는지, 안 변하는지에 대해서는 조직심리학, 행동과학 연구자들도 관심이 많았다. 1992년 헬러빅(Hellervik, L. W.), 하주처(Hazucha, J. F.), 슈나이더(Schneider, R. J.)는 행동 변화에 대한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조사, 설문, 실험을 통해 사람의 지식수준, 직무 수행, 안전 추구, 정신 건강과 관련된 행동 변화가 가능하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특히 선호하는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고 했다. 헬러빅 등은 결론부에 행동 변화를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동기 부여다. 


여기엔 유무형의 체계적 보상, 직무를 통한 성취와 만족, 조직의 문화와 복지 등이 포함된다. 둘째는 잘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잘 설계된 프로그램이란 검증된 전문가 집단에 의해 시간, 노력, 예산이 충분히 투입된 것을 뜻한다. 


셋째는 장기 지속성과 충분한 영향력이다. 장기 지속성은 쉽게 말하자면 규정이나 방침에 의해 반영구적 인력, 예산,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충분한 영향력이란 조직의 의사결정자, 책임자의 지원을 받거나 조합이나 대의원에 의해 추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안 돼. 사람 불러야 돼”


개그콘서트 인기 프로그램 중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게 있었다. 출연자 김준현은 무대포 장군으로 나오는데, 밀어붙이다가 잘 안 되면 “이건 안 돼. 사람 불러야 돼”라고 말해 사람들을 웃겼다.


그런데 사람 불러도 안 되는 게 있다. 헬러빅 등은 사람의 인지능력, 성격특성은 뭘 어떻게 해도 변화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니까 만약 사무실에 눈치나 주변머리가 없어서 당신을 답답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신경을 끄는 게 낫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조직이 나서서 위에 제시한 ‘행동 변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다 충족시키는 노력을 했는데도 직원의 눈치, 주변머리는 변하지 않더라는 게 헬러빅 등의 전언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부하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부하의 그런 능력이 나아지길 기대하고 애쓰는 것은 상사의 바람이지만 별로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헬러빅 등이 변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던 인지능력에는 업무에 대한 이해력, 스스로 해법을 찾는 사고력,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는 창조력 등도 포함된다. 


성인의 성격특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게 조직심리학, 행동과학의 연구 결과다. 그러니 대놓고 싹수도 없거나 일 급한데 나무늘보 코스프레 하는 직원이 있어도 참고 넘어가 보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업무 스타일, 성격 역시 변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싹수없는 부하를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또 느려터진 업무처리에 분통을 터뜨리고 말 것이다. 그래도 이 글을 읽었으니 조금이라도 달라지려고 노력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템포 쉬거나 어디 복도라도 나가서 심호흡 한 번 정도 할 수 있는 여유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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