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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몰카 있다더라"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조회수 2017. 11. 18. 12: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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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을 듣고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11월 11일 종로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사이버성폭력OFF 토크콘서트 ‘난 너의 야동이 아니야’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서울시가 주최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주관했다. 사회는 가수 오지은이 맡았고 패널로는 중앙대학교 이나영 교수, 가수 겸 감독 이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오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서랑이 참석했다.



행사는 총 3부로 이뤄졌다. 1부 ‘내가 올라왔대’에서는 사이버성폭력의 실태를 다뤘고 2부 ‘내 잘못이 아니야’에서는 마이크를 객석에 넘기고 참여자들의 사연을 직접 들었다. 마지막 3부 ‘날 도와줘!’에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200여 명이 참석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왼쪽부터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오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서랑, 가수 겸 감독 이랑,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 가수 오지은 ⓒ이은솔

‘돈이 되는’ 한국의 사이버성폭력 산업


한국의 음란물 시장은 독특한 구조로 돼 있다. 국내법상 포르노는 불법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포르노를 제작하거나 유포하는 업체는 없다. 때문에 한국에서 유통되는 음란물은 불펌한 해외 포르노와 국산 야동이라 불리는 비동의촬영물로 이뤄진다. 모두 불법이므로 대부분 저작권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값이 싸다. 주인 없는 수많은 야동은 웹하드를 통해 편당 몇 십 원의 가격에 유통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서랑은 웹하드 업체의 하루 매출이 3억 원에 이를 정도로 산업의 규모가 크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 보험 회사에서 몰카가 유포됐을 때 삭제 비용을 지급하는 보험 상품을 출시하려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돈이 되기만 하면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도 상품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사이버성폭력을 개인적 수준의 범죄 행위가 아니라 국가 개입이 필요한 구조적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동의촬영물, 즉 몰카는 몇몇 악한 개인이 나쁜 짓을 하는 일탈적 현상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천 건이 업로드되고 수만 건이 다운로드 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오지은 동영상 있다던데” 가슴이 철렁하기도



사회를 맡은 가수 오지은은 실제로 자신이 사이버성폭력 영상의 주인공으로 지목됐던 경험을 털어놨다. 어느 날 친구에게서 ‘오지은 동영상’이라는 이름으로 성관계 영상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나는 동영상을 찍은 적이 없는데’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내가 찍지 않아도 상대가 찍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상을 확인해본 결과 본인은 아니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저 영상 속 여성이 피해자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랑은 “우리는 주체적으로 말도 하고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들지만, 몰카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어서 참여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 여성은 어렸을 때 같은 아파트에 살던 남학생의 구애를 거절했다가 상대가 보복을 위해 자신의 신상정보와 연락처를 조건만남 사이트에 올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발신자 추적 등을 통해 범인이 그 남학생임을 알아냈지만, 부모님은 이웃끼리 얼굴 붉히지 말자며 오히려 ‘네가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그런 사이트에 올라가냐’고 혼을 냈다고 한다.

이날 열린 행사의 포스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야기를 듣던 중앙대학교 이나영 교수는 남성들은 전 생애에 걸쳐 가해자성을 쌓는다고 지적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초등학생인 김지영을 짝꿍 남자애가 괴롭히자 선생님에게 자리를 바꿔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선생님은 “걔가 널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며 “니가 눈치가 없어서 그렇다”고 오히려 김지영을 타박한다. 이나영 교수는 이 장면을 예시로 들며 “여성은 폭력의 피해자일 때도 눈치도 없고 남자 마음도 받아주지 않는 나쁜 년으로 취급받는다”며 “이렇게 남성들은 가해성을 쌓아오기 때문에 지적 받았을 때 이것도 여혐 저것도 여혐이냐고 분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 있지만 미흡… 제도 개선돼야



몰카 가해자는 어떤 처벌을 받느냐는 질문에 활동가 서랑은 최초 유포자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촬영과 유포는 피해자에게 굉장히 큰 폭력임에도 아직은 별 거 아닌 거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있고 실제로 경찰서에 가도 관련 범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웹하드와 섬네일이 뭔지 일일이 설명해야 해서 피해자가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영상 유포 등이 개인의 민감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독립된 진술 공간이 없이 개방된 곳에서 진술해야 한다는 점이 피해자들에게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제도들이 미흡하지만, 마냥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오매는 “91년도에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했을 때는 ‘성폭력’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었더니 직원이 차마 ‘성폭력’이라는 말을 내뱉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웃었다. 사이버성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더 많이 알게 되고 이런 사건들이 실제로 처벌되는 과정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우리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우리 모두가 ‘활동가’다


주최 측에서 나눠준 ‘활동가증’을 높이 들며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이은솔


잘못된 일에 대해 모두가 침묵할 때는 그 상황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이지만, 누군가 용기를 내서 문제를 제기하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가수 이랑은 지하철에서 몰카범을 발견하고 신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해서 찍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있지 않고 목소리를 내면 언젠가는 사회가 바뀌지 않겠냐는 말을 덧붙였다.



주변에서 비동의촬영물을 보거나 공유하는 이들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최 측은 피해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과 가해자들을 만났을 때 하고 싶은 말을 주제로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관객들이 직접 채팅방에 의견을 전하고 진행자들이 이를 스크린에 띄워 함께 읽고 이야기했다. 한 참여자는 “내 핸드폰에 ‘네가 더 조심했어야지’ 같이 피해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 뜨니까 이게 얼마나 문제인지 더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가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채팅창에서 뱉어보는 것은 여성들이 현실에서 사이버성폭력을 접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연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나영 교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제 밖에 가서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며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활동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진행자와 관객들이 함께 행동할 것을 약속하며 주최 측에서 나눠준 ‘활동가증’을 높이 드는 퍼포먼스를 마지막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단체 활동가와 일반 시민들이 대화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행사를 통해 사이버성폭력의 심각성이 사회 전반으로 공유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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