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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걸린 낯 뜨거운 현수막

조회수 2017. 10. 13. 14: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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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체육대회에 내연녀, 내연남도 데리고 오라!?

센스있는 농담과 유머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농담이 그렇지는 않다. 특히 자신이 센스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농담은 대부분 구리며, 그냥 하지 않는 편이 유익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의 유머러스함을 뽐내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가 분위기를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한다.


그리고 여기, 부산에서 또 한 번의 참사가 벌어졌다. 오늘 오전 부산지역 소식을 전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부산공감’에는 사진 두 장과 함께 제보가 올라왔다.

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부산공감'

“생각없는 동문 선배들이 올린 글 때문에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제보자의 불만과 함께 올라온 사진은 해운대초등학교 총동창회 가족체육대회를 홍보하는 현수막이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나 싶겠지만, 총동창회를 홍보하는 현수막를 자세히 보면 말풍선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내연녀, 내연남도 가족이니 당근 참석가능합니다!

'초등학교'에 걸린 '가족'체육대회 현수막에 있는 문구다. 사실 <당근>이라는 이십년 쯤 지나 썩어문드러진 유행어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냥 구리다. 저게 농담 섞인 진담인지, 밑도끝도 없는 아재들 유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건 알 수가 있다. 해당 게시물에 달린 댓글처럼 ‘자기들끼리 술자리에서 현수막 아이디어 내면서 기발하고 재밌다고 깔깔거렸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속칭 ‘섹드립’의 황제라고 불리는 신동엽은 19금 수위의 농담을 자주 던진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법한 농담도 신동엽이 하면 재밌다. 다시 말해 신동엽이 19금 드립을 쳐서 사람들이 웃는다고 해서 누구나 비슷한 소재로 웃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농담에서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신동엽의 드립은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대상에게, 알맞은 타이밍에 터진다. 그래서 재밌다. 하지만 그걸 어색한 대학 신입생환영회나 중요한 회사 미팅 자리에서 해버리면? 그냥 변태xx 행이다. 


마찬가지로 내연남 현수막을 만든 사람들이 놓친 것도 맥락이다. 사오십대 아재들끼리 포차에서 거나하게 쏘주 몇 병 자시고 “내연녀랑 내연남도 가족이니 당근 참석 가능하지!” 라고 외친다면야 얼근하게 취한 친구들이 자지러지듯 웃어주겠지만, 그걸 어린이들 다니는 초등학교에 대문짝만한 현수막으로 걸어뒀을 때 보고 웃을 사람은 기획자와 그 초등학교 출신 내연남/녀 말고는 없지 싶다. 


용감한 건지 개그감각이 지나치게 결여된 건지 모를 플랜카드 기획자는 모교의 초등학생들에게 불륜에 대한 가벼운 대상화와 구린 유머를 보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물론 둘 다 어린이들에게는 그닥 좋지 않은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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