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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이유

조회수 2020. 1. 16.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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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흐름이 살아있을 때 신속하고 완벽히 끝내야 한다

이상우의 부동산 프리뷰 #8

세상 모든 일에는 조건이 붙기 마련이다. 어릴 적 학창 시절 영어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if), 내가(I) 강남 집을 샀다면 부자가 되었을 텐데…’라는 가정법 문장에도 분명 조건절이 있다. 강남 집을 샀었어야 부자가 되었지, 사지 않아서 부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전체 문장이다.


저 문장의 속뜻이 ‘현재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영어 학원비로만 억만금을 지출하는 우리네 상황에선 더욱더 그렇다. 조건이라는 것은 이처럼 참 냉정하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절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부라는 애매한 결론에도 그저 기쁘고 들뜨기만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바로, 서울 아파트 재건축 상황이다. 뭔가 된 것 같기도 안 된 것 같기도 한 찜찜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경사스럽고 은혜로운 날이 갑자기 펼쳐진다.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다.

출처: 직방
적정성 검토까지 통과한 방배동 삼호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노후아파트의 기준

이런 재건축 난관은 바로 2018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구조 안전성을 가장 중시하는 현 판단기준하에선 ‘곧 무너질 만큼’ 노후화된 아파트가 아니면 주민들의 주차 불편 혹은 녹 배관 같은 투정은 견뎌내라는 지시가 국가에서 내려왔다.


노후 아파트는 타지역보다 강남/서초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강남(그 당시에는 영동(永東)이라 불렀으니 영동이라 하자) 개발의 첫 시작을 끊은 반포/방배동에는 노후 아파트가 즐비하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도 이 중 5층짜리 저밀도 아파트는 사회의 재건축 명분(!)을 쉽게 얻어내 대부분 재건축이 진행된 반면, 12층 중층아파트는 소유자들의 간절함에도 아랑곳없이 그저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 살면 되는 것이라는 힐난(詰難)이 쇄도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방배동 삼호가 2018년 8월 정밀안전진단(D등급) 이후 2019년 3월 적정성 검사까지 통과해 재건축 진행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방배동에서도 대표적인 노후단지인 방배동 삼호가 재건축을 진행하면서, 인근 아파트 가격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개통된 서리풀터널 역시 방배동에 힘을 더했다. 


출처: 직방
방배삼호1차,2차가 적정성 검토까지 통과하며 주변 아파트 가격까지 끌어 올렸다.

안전진단 5개 등급 중 A~C등급은 안전하기 때문에 재건축이 아닌 유지보수(!)가 결론이지만, D, E등급은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재건축에 가까워진다. 과거에는 D등급은 E등급과 동일시되었다. 2018년 3월 이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때부터 많은 일이 바뀌게 되었다.

출처: 직방
안전진단 통과해도 아직 갈길이 멀다.

조건부 재건축의 ‘조건’이 명확해진 것이다.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의견이 재건축에 ‘적정하지 않다’ 판단된 경우 재건축과는 거리가 먼 C등급을 최종 부여받게 된다. 이 같은 공공기관에는 한국시설안전공단과 한국기술연구원이 있다. 재건축조합에서는 시설안전공단과 기술연구원을 모시는 사당이라도 만들어 매일같이 치성을 드리는 ‘정성’을 보여야 하지 않나 싶다. 적정성 검토를 통과하는 일이 간단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마포·양천.. 서쪽은 된다?

출처: 직방
방배삼호.. 어떻게 했어요?

지난해 말, 양천구 목동 아파트에는 경사(慶事), 또 경사가 났다. 바로 목동신시가지6단지가 정밀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을 의미하는 D등급을 부여받은 것이다. 추후 적정성 검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D등급을 받는 것조차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C등급을 받아 국내 ‘안전한 아파트’의 대명사가 되었다.


1월 12일에는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이 D등급을 부여받았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마포’와 ‘양천’에서 재건축의 포문이 열렸다. 작년 11월에 소박하게 D등급을 받은 불광미성까지 포함하면 서울의 동쪽에서는 재건축 중단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서울의 서쪽에서는 재건축의 시작을 알리는 이 같은 움직임은, 남북분단 이상의 지역적 격차를 불러오고 있다. 서쪽은 되고 동쪽은 안된다. 네 발은 좋지만, 두 발은 더욱 좋은 그런 느낌적 느낌이 부동산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출처: 직방
안전한 아파트 C등급의 올림픽선수촌과 조건부 재건축 D등급의 목동신시가지6단지 시세.

2019년 10월, 구로구 오류동 동부그린아파트는 적정성 검토에서 C등급을 부여받아 재건축 진행이 중지되었다. 정밀안전진단 D등급을 부여받을 때만 하더라도 이 같은 결과까지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재건축 시에는 ‘주도면밀’ 및 ‘신속’이라는 단어를 잊지 않아야 한다. 큰 흐름이 살아있을 때 재건축을 ‘신속’하고도 ‘완벽히’ 끝내야 하는 것이다.


아니, 사업시행인가나 관리처분 같은 중차대한 일이 넘쳐나는 재건축 과정에서, 겨우 정밀안전진단 하나 통과하는 데까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떠올려보자(모르겠다면 그냥 상상해도 비슷할 것이다). 유대인과 다른 사람 간의 ‘무모한 사랑’이 시작하기 전에, 아직 나오지도 않은 자식을 해외 도피시키려는 계획까지 세워놓는 주도면밀함이 필요하다. 물론, 해외 도피계획에 어떤 항공사를 이용할지도 미리미리 고민해둘 필요는 있다.

글.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이사

'대한민국 아파트 부의 지도' 저자

'대한민국 부동산 대전망' 저자

前 매경/한경 Best Analyst

前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2014~2019)

前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2011~2014)

前 대우조선해양 미래연구소(2006~2010)

※ 외부 필진 칼럼은 직방 전체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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