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안전한 대한민국, 신축 주택이 줄고 있다

조회수 2019. 10. 24. 10: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재화의 수명에는 사회적 관점도 존재한다.

이상우의 부동산 프리뷰 #2

안전하다. 그래서 계속 살던 대로 안심하고 살면 된다. 국내 아파트 거주조건에 대한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공식의견이다. 현재, 한국의 아파트는 안전, 또 안전하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이번 정부의 공약은 지금도 ‘충실히’, 그리고 ‘중히’ 여겨지고 있다.


안전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을 그대로 인용하면,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음, 또는 그런 상태’이다. 염려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고민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안전하다는 결과에 많은 사람들의 ‘염려’는 커졌다. 아니, 재건축은 도대체 언제 가능한 것이냐는 의구심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압구정이나 잠실보다 훨씬 노후도가 심한 여의도, 이촌의 50년 가까이 된 주택 정도는 되어야 과연 ‘안전하지 않은’ 것일까? 그 조차도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한국 주택에 대한 관점이다.

출처: 직방
1971년 입주한 여의도 시범아파트. 준공한 지 50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재화의 수명에는 사회적 관점도 존재한다

재화(goods)의 수명이란, 내구성에 의한 물리적 수명 뿐 아니라, 사회적 관점도 당연히 존재한다. 진부하다는 이유로 물건을 버리거나, 중장년층을 바라보며 틀딱이라고 폄하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택도 마찬가지다. 3만달러를 넘어선 인당 GDP(국내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와 전세계 10위(1조 7,208억달러, 2018년)에 빛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에 맞는 주택이란, 극빈국가를 막 벗어난 1966년은 물론이거니와, 혹은 개발도상국에서 최초로 개최했던 1988 서울올림픽 무렵에 지어진 주택일리가 없다.

신축 주택이 줄고 있다

5년마다 발표되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인용하면, 현재의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1990년 기준 30년 이상 주택은 전국 주택의 32.5%(232만호/716만호)였다. 이 수치가 가장 낮았던 것은 2000년(8.7%)으로 전체주택 1,096만호 중 95만호만이 30년 이상 주택이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380만호의 주택이 증가했는데, 이중 준공 15년 이하인 상대적으로 새집은 457만호가 증가했다(314만호→771만호) 많은 낡은 집이 사라지고, 새집은 많아지니 나타난 결과였다.


2000년 기준 준공 15년 미만 주택비중은 무려 70.3%였다. 그 당시에도 신축선호현상은 당연히 존재했겠지만, 그 강도는 지금이나 과거와는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높았던 신축주택 비중은 빠르게 감소해 2018년 기준 15년 미만 주택은 606만호(전체의 34.4%)로 1990년의 771만호 대비 165만호가 감소했다. 15년 미만 주택비율만 70.3%에서 34.4%로 감소한 것이 아니라 절대규모가 감소한 것이다. 물론, 이 시기동안 전국의 30년 이상 주택은 348만호(19.7%)로 2000년(95만호)과 비교했을 때, 253만호가 증가했다.

재건축 기준, 합리적인가

이 같은 관점을 조금 더 넓혀보자. 과연 사람들은 재건축 연한인 30년 이상 주택만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아니다. 정부의 노후주택 판단기준 연한과는 전혀 상관없는 준공 15~30년 주택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된다면, 새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거꾸로 생각해보기 쉽다. 2000년에 164만호였던 준공 15~30년차 주택은 2018년 259만호로 증가했다. 이런 주택들은 정부기준 재건축은 시기상조로 규정된 주택이겠지만, 오히려 이런 주택에 거주중인 사람들의 주거불만족이 더 크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의 이런 ‘애매한’ 주택숫자는 타 지역보다 훨씬 많다. 2000년과 2018년을 비교했을 때, 서울(28.2만→55.5만호, +97.1%), 인천(6.7만→20.3만호, +201.8%), 경기(19.9만→54.9만호, +176.4%)의 ‘애매한’ 주택은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 부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대적인 개축을 하기에도 어정쩡한 주택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주택시장의 가장 큰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소득수준이 높아진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주택만 가득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재건축 연한 30년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는 한참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몇년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롱패딩을 생각해보자. 물론, 올겨울에도 과거의 유행이 이어질 수 있지만, 만약, 유행이 끝났는데도 불구, 롱패딩이 아직 해지지 않아(!) 새 외투를 사는 것은 절대 안된다라는 명령이 있다면 롱패딩 주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표현, 왠지 친숙하다. 맞다, 보통 부모에게서 쉽사리 듣는 일이다. 멀쩡하다 못해 몇 번 입지도 않은 것 같은 옷을 굳이 왜 또 사냐는, 합리적인 관점에서의 질책이지만, 청소년기의 젊은이들에게 합리성/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등골브레이커라는 단어는 그저 부모에게만 다가왔던 적절한 표현이었다.


성인 남성으로 이런 상황을 확대적용해보자. 본인 소유 자동차의 교체시기를 배우자가 ‘자의적’으로 정한다는 상황을 상상하면 쉽다. 이런 상황을 가정 내 실력자의 폭정(暴政)이라고 불평할 사람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신차를 구매하고 5년, 5만km 언저리가 잔존가치 측면에서, 20만km 이상 주행 시 다양한 교체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교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아직도 잘만 굴러가는 자동차를 왜 굳이 ‘지금’ 교체해야 하냐는 의견을 ‘객관적’인 이론만으로 설득시키긴 쉽지 않다.

구조안전성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 주거 환경과 도시 미관

이런 비슷한 관점이 바로 정부가 생각하는 재건축이다. 아직도 튼튼하기만 한 주택을 왜 부수냐는 것이다. 철근콘크리트는 수명이 100년이 넘는다는 합리적 의견에 의거, 재건축은 자원낭비의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낭비를 방지하고자 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재건축 규제를 일반인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구조안전성만을 중시하던 과거 기준과는 달리 주거환경을 중시했던 '그때 그 시절'은 많은 재건축 예정 단지들에 있어선 잠에서 깨고 나서야 알게 된 꿈결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너지냐 마냐라는 물리적 특성이 강조되는 구조안전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막상 그 집에 거주 중인 사람들이 느끼는 주거환경/도시미관 등이 보다 중요한 판단기준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배경이 된 1)주택보급률이 100%를 초과했으며, 2)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이 5% 미만에 불과하다는 수치는 매우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양주택의 양적공급이 아니라, 질적인 면이 중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면, 2018년 정부는 ‘정상화’라는 표현을 통해 안전진단 기준을 크게 강화했다.

지난 10월 15일, 송파구청은 올림픽선수기자촌 재건축모임(올재모)에 정밀안전진단결과 C등급을 통보했다. 재건축을 준비하던 입장에선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겠지만, 여전히 ‘안전’하다는 결과에 올재모는 송파구청에 소명을 요구했다. 정밀안전진단 추진을 위해 갹출한 3억원의 비용은 ‘안전’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기위해 쓴 셈이 되어버렸다. (추가적으로, 현재 이런 자발적인 정밀안전진단을 거치고 있는 단지는 목동신시가지 6, 9, 13단지가 있다).


특히, 그동안 재건축 진행이 용이하다고 판단했던 PC(Precast Concrete)방식 적용 구축 아파트들에게 재건축은 아직 멀었다라고 콕 찍어 말해준 것과 같다. PC방식이라는 ‘약점’때문에 상계주공8단지(노원꿈에그린/입주 예정), 과천주공3단지(래미안슈르/2008.08입주) 등 빠른 재건축이 가능했던 곳들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출처: 직방
조립식 아파트가 재건축이 쉽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최근 노원구 월계동 월계미성,미륭,삼호는 예비안전진단에서 C등급을 받아 재건축이 좌절되었고, 구로구 오류동 동부그린은 1차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부풀었던 재건축의 꿈이 2차 정밀안전진단결과 유지보수(C등급)로 물거품이 되었다. 지난 3월 방배동 삼호4차의 D등급은 현 시점에서 바라볼 때 긍정적이다 못해 이례적으로 판단할 만한 사건이다.


출처: 직방
안전진단 C등급을 받아 재건축에 차질을 빚게 된 올림픽선수기자촌과 D등급을 받아 다음 절차를 진행중인 삼호4차.

이 시점에서 평상시 사고방식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다. 규제 일변도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한 채 낙담만 하고 있지 않은 것이 한민족 DNA이기 때문이다. 해법을 찾기 위한 갖은 방법들이 머리속을 맴돌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최근들어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리모델링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 해도 되지만, 아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글.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

'대한민국 아파트 부의 지도' 저자

'대한민국 부동산 대전망' 저자

前 매경/한경 Best Analyst

前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2014~2019)

前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2011~2014)

前 대우조선해양 미래연구소(2006~2010)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