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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학자금 대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고리를 끊자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저자 천주희 공부하면서 빚진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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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동시에 수천만 원 빚이 남는다. 이제는 당연해 보이기도 한 이 문장 속을 들여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대출받아서 대학가는 건 당연한가?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좋은 삶을 누려보겠다고 하는데, 왜 빚을 지고 시작해야 하지? 예전에도 등록금은 있었을 텐데, 요새 학생들은 나약해서 징징대는걸까? 아니 무엇보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지?

‘대학생’은 당연하지만 ‘채무자’는 어색해 보이기만 하다. 천주희 저자가 학자금 대출을 주제로 논문을 쓰기 위해 만난 인터뷰 대상자들 중에서도 대출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석사 논문으로부터 시작한 이 간격은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로 나와 대출을 받아 대학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생활이었던 부채가 연구대상이 되다

대학원에서 논문 주제를 세 번 바꾸셨다고요.

석사 4학기 들어서야 학자금 대출을 주제로 결정하면서 연구 기간이 길어졌어요. 논문 쓰는 데 거의 이 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공식 학기가 끝나면 조교 활동도 할 수 없어서 선생님들이 외부에서 강의하고 받은 강의비를 연구하라고 주시기도 하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논문 주제를 학자금 대출과 부채로 결정한 계기가 있었나요?

논문을 쓰기 전에 지도 교수님과 논문 주제를 가지고 면담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기존에 준비했던 것 외에도 생각하고 있던 주제가 학자금 대출이었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제가 이 주제에 관해 할 말이 정말 많다는 걸 말하면서 느꼈어요. 논문을 써서 뭘 해야겠다는 기대는 없었어요. 한국에서 석사 과정인 친구들이 논문을 써서 책을 내는 건 정말 드물잖아요. 논문이라도 나오면 좋은 거고, 그나마 사람들이 읽지도 않고요. 그저 지도 교수와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죠.

논문을 그대로 책으로 낸 건 아니고, 많이 고치셨다면서요.

용어를 많이 바꿨어요. 논문도 비교적 다양한 형식이 허락되는 학과였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게 쓴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부채 용어 자체가 어렵다 보니 기본적인 단어만 나열해도 대중적으로는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어서 많이 고쳤어요. 내용도 하고 싶은 말을 넣기보다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을 했어요.

생활을 뒷받침하는 조건, 부채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학비만 5천만 원이 들어갔다고 하셨어요. 돈을 벌기까지 파란만장했을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수입원이 없으면 쉬고 싶을 때 못 쉬잖아요. 여기에 학자금 대출까지 있으면 빚 이자까지 계속 쌓이죠.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게 식비다 보니까 밥도 잘 못 먹고 건강이 안 좋아지고 심리 상태도 불안해져요. 2009년 한 해에 수해가 두 번 났어요. 추석 때 집에 내려갔다 오니까 입고 있는 옷 말고는 살림이 다 물에 잠겼어요. 복구작업하고 주민센터 가서 피해 신고하는 와중에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금 내라고 연락이 온 거죠.

수해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화시키면 내가 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나 소득 활동을 할 수 없을 때, 힘들어서 잠깐 쉬고 싶을 때 삶의 공백기가 허락되지 않아요. 그때 부채에 대한 상환 요구나 추심이 있을 때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죠. 옆에서 누가 끄집어내 주지 않으면 힘든 상태가 와요.

주거권이나 청년 실업 문제보다 부채 문제는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않습니다.

청년 부채 문제가 이슈화된 건 최근 1, 2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주거나 노동은 개인이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라면, 부채는 그 필수적인 걸 뒷받침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조건이에요. 주거나 노동이 부채 문제와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노동시장에서 높은 몸값을 받기 위해, 혹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을 가고 대학을 가기 위해 돈을 빌리잖아요. 이 고리를 총체적인 차원에서 봐야 하는데 그동안 많이 분절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국내에도 부채와 학자금 대출 연구자는 많지만 아쉬운 건 제도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일상하고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예전 90년대 학번 선배와 대화했을 때 그 당시 과외비가 30만 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과외비는 달라진 게 없는데 등록금은 무시무시하게 뛰었죠.

연구 참여자들의 수익원을 보면 부모님이 지원해주거나, 독립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사람들이 많이 아는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과외를 하죠. 전반적으로 과외 비용이 오르지 않았고 졸업하고 아예 과외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아르바이트는 최저시급 언저리다 보니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어서 낼 수 없게 됐고요.

친근한 이미지보다 실질적 도움을

한국장학재단이 책에 많이 나와요. 대출이 금융 상품으로 계속 판매된다고도 하셨고요.

저도 대출을 받았고 아직 상환하고 있기 때문에(웃음) 한국장학재단 자체를 비판하는 건 아니고요. 학자금 대출은 1960년대부터 있었어요. 이전에는 정부에서 보증을 해주면 학생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는 형식이었죠. 정부가 대학생의 신용 보증을 대신 해 주고 돈을 빌려줬던 거죠. 2005년 즈음에 학자금 대출 방식이 한 번 바뀌어요.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증권화해서 투자자들이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됐어요.

학자금 대출은 금융 상품이 맞아요. 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시행하는 채권자도 금융 상품이 아니라 복지인 것처럼 말하고 채무자도 복지처럼 느끼죠. 한국장학재단이 만들어진 건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개인이 은행에서 받는다면 거쳐 가는 채권에 따라서 수수료를 더 내야 하는데 이걸 국가에서 한꺼번에 채권 시장에 넣어서 더 싼 이자로 대출해줄 수 있거든요. 예전에 비하면 잘된 거지만 정말 이게 복지라면,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 성남시나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상환을 못 하니까 대출금을 지자체에서 감당하는 구조로 되고 있어요. 차라리 지자체에서 낼 돈과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생들을 관리하는 비용이면 무이자로 대출이 가능할 것 같거든요. 한국장학재단이 대학생의 개인 정보를 너무 많이 보유한 것도 문제예요. 대출을 받으려면 단순히 어느 학교 몇 학기에 다닌다는 정보가 아니라 부모는 한 부모 가정인지 다문화 가정인지, 내 부모의 소득은 몇 분위인지까지 등 은행보다 더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해요. 학생들에게 친근한 이미지, 다정한 이미지를 고민할 때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방법을 고민했으면 하죠.

대학도 재학생의 등록금으로 이윤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최근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도 결국 수익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봤는데요.

그 사건 보면서 생각났던 게, 요새는 미용사가 되려 해도 전문대 미용학과를 나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미용학과를 나온 사람과 학원에 다닌 사람 모두 자격증 시험은 똑같이 봐야 하지만, 그런데도 대학에 가는 거죠. 직업 훈련 센터나 다른 곳에서 가르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대학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그 비용을 사람들에게 부담시키고 있어요. 대학을 다니든 안 다니든 살면서 기술을 습득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계속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학생이 되어야 한다면 전문가는 언제 되며, 배우는 동안 돈은 어디서 마련하겠어요. 또 대출을 받는 거죠. 

점점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청년 세대도 이제는 대학 학위를 가지고도, 빚을 지고도 취직을 할 수 없다는 걸 안 상태인 것 같아요.

대학은 이미 사회에서 규정한 보편적 선이에요. 거기 가지 못하면 내가 탈락한 존재인 것 같고 평범한 삶을 살지 않는 것 같고, 일자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을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에 가라고 하니까 갔는데 이게 웬걸, 생각했던 대학이 아니잖아요. 선배들을 보면 4학년이 되어도 취직이 될 것 같지 않고요. 대학이 자기 삶에서 쓸모없어지는 지점들, 앞으로 남은 기간 나와 내 가족이 얼마나 비용을 내야 하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게 될지 계산하는 것만 봐도 당연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대안이나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주변에 자퇴한 친구들도 있고 대학을 다니고 나서 다른 대안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대학을 다닐 때 한쪽은 대안, 생태,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또 한 쪽은 정치적인 운동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저한테는 그 두 개가 혼합된 것 같아요. 어차피 저는 자본주의 질서 안으로 별로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들어가서도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 것 같지 않거든요. 그럴 바에는 거기서 잘난 사람으로 살기보다 자본주의 안에서 균열을 내면서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첫번째 목소리가 이 책일 것 같아요. 

많이 바뀌고 있지만, 청년 세대에서 윗세대에게 요구하기보다 나만 잘해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 되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있어요.

정규직이 될 수 있지만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것과 계속 떠돌이로밖에 살 수 없는데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하는 건 조금 달라요. 여기서 정규직은 한 직장에 오래 다니면서 안정적인 임금을 받는 생활이라기보다, 최소한의 노동권이 보장된 환경을 말하거든요. 모든 사람의 노동이 선택이 되어야 하고 노동을 하지 않을 때도 불안하지 않으려면 사회 전체에 안정적인 환경이 있어야겠죠, 지금은 그게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이제 프레카리아트처럼 기존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노동이나 삶의 유형이 계속 나올 거예요.

‘빚밍아웃’을 넘어 요구하기

채무자에게 대출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제안하셨어요. 학교에 계실 때는 ‘빚밍아웃’도 하셨다고요.

빚과 커밍아웃의 합성어였어요. 졸업을 그냥 하면 아쉬울 것 같고, 관련된 논문도 썼으니까 문화활동처럼 캠페인을 해보자 해서 그때 졸업하는 친구를 꼬셔서 같이 하자고 했죠. 하지만 친구가 상을 받는 바람에(웃음) 저만 했어요. 제 이야기와 부채 금액 등을 종이에 써서 사진을 찍고 나열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사람들이 빚, 하면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빚을 져도 자신을 채무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사람들한테 ‘너 빚 있다고 왜 말 안 해?’ 하고 질문하는 건 매우 폭력적이라고도 생각해요. 왜 말해야 하는지 반문하면 할 말이 없는 거죠. 하지만 자신의 빚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같이 말할 사람과 누구를 향해 말할지 도움이 됐으면 해요.

채무자가 모여서 고민하고 토론하는 게 결국에는 연대의 한 방법이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90년대에 사회운동하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연대랑 오늘날 청년의 연대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요, 저는 느슨한 차원에서의 느슨한 연대를 생각하고 있어요. 사안이 심각하면 조직해서 토론회도 하고, 포럼도 열고 해야지, 요즘 애들은 시간을 내는 걸 왜 이렇게 아까워하냐는 이야기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가끔 계세요. 시간을 어떻게 내요, 먹고 살려면 일해야죠. 그래서 빚에 대해서 무겁게만 생각하지 말고 즐기면서, 좀 쉬기도 하면서 문화활동처럼 빚을 말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안 그래도 10월 29일에 대방동 무중력 지대에서 ‘개미와 빚쟁이’ 축제를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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