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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최광희 "흥행하는 영화는 관객의 결핍을 읽어낸다"

『천만 관객의 비밀』 펴내 영화 속 각자도생의 지옥도, 한국 사회의 공기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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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음. 영화평론가 최광희를 만난 느낌이다. 특정 영화나 감독을 콕 집어 비판하는 거침없음, 영화 산업의 기형적 구조와 이해관계자의 소극적인 태도를 말하는 거침없음을 보며 이래도 괜찮을까, 싶었다. 조심스레 물었다. 이 거침없음이 영화평론가로서 갖는 어떤 역할의식에서 비롯했는지. 답은 당연히 예스. 

평론가가 여러 명 있잖아요. 서로 목소리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참고할 수도 있고요. 당당하게 그 영화가 나쁘면 나쁘다고 얘기를 해야죠.

방송기자, 영화주간지 취재팀장을 거쳐 영화평론가로 사회생활을 한지 20년. 그 자신이 오랜 직장 생활의 경험을 가진 사람답게 최광희는 영화 산업과 제작 구조를 들여다보면 모든 직장인들이 가져갈 공통의 시사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천만 관객의 비밀』을 만들었고, 흥행하는 영화의 공통된 키워드 세 가지를 얻어냈다. ‘열정, 협업, 공감’은 흔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어떤 열정이냐, 어떤 협업이냐, 어떤 공감이냐를 조금만 더 깊이 얘기해보면 이것이 말하기 얼마나 어려운 단어인지 금방 알게 된다.

영화를 통해 보는 성과 창출의 비밀

영화 평론가가 말하는 ‘흥행의 법칙’이야기,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어요. 기획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원래 이러닝(e-Learning) 회사에서 제안을 받은 거예요. 직장인에게 통찰을 줄 수 있는 영화감독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강의해달라고요. 흥행 얘기하는 평론가가 별로 없잖아요. 보통 영화평론가들은 개별 영화 평론을 주로 하지 어떻게 흥행했는지, 그 흥행의 의미가 뭔지, 이런 것은 잘 얘기를 안 하거든요. 그게 계기가 됐죠. 

직장인과 영화의 흥행, 선뜻 연결이 안 되는데요.

처음에는 이것으로 직장인에게 통찰을 줄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제안을 받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장인들에게는 영화라고 하는 매체가 친숙하니까 흥미롭기도 하고요. 매해 한두 편 이상은 천만 영화가 나오니까 이야기를 풀면 직장 생활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러 감독 분들을 인터뷰 한 결과, 부드러운 접근이 성과에는 효율적이다, 라는 결론이 난 거고요.

바로 ‘열정, 협업, 공감’이군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긴 한데요. 어떤 열정이나 협업이냐, 어떤 공감이냐를 영화라는 콘텐츠를 빌어 푼 거예요. 기획할 때 브레인스토밍을 했어요. 성과창출이라고 하는 상위 범주 내에 해당하는 하위 카테고리가 뭐가 있을까 상의해서 열정, 협업, 공감이라는 세 키워드가 나온 거죠. 인터뷰를 할 때 이 포인트를 갖고 했고요. 실제로 범주화를 한 후 진행한 인터뷰가 효과적이었어요. 감독 분들도 여기에 많이 동의를 했고요.

확실히 여러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미 모범답안을 뽑아 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과 다름없었죠. 다만 저는 그분들에게 사례를 많이 듣고 싶었어요. 감독으로서, 창작자로서 자신의 열정을 어떻게 가다듬어 왔는가, 현장의 통솔자로서, 리더로서 어떻게 협업을 이끌어 왔는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어떤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해왔는가, 이런 것들 말이에요. 그런데 영화 매체의 특성상 감독이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타이밍이 잘 안 맞는다든가 포장이 잘 안 되면 폭넓은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거든요. 결국 감독만 인터뷰 하면 안 되겠다 해서 제작자나 마케터 같은 분들도 인터뷰를 한 거죠. 영화는 협업의 예술이니까요. 

카리스마를 버리는 게 진짜 리더십

YTN에서 방송 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고, 에도 취재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으시죠. 이런 직장 생활 경험과 영화가 절묘하게 맞았던 거군요.

책을 쓰면서 저도 느낀 점이 많았어요.(웃음) 나도 이렇게 했으면 후배들의 신망을 얻으며 원활하게 조직 운영을 했을 텐데 지나치게 딱딱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리더십 부분에서 ‘카리스마를 버리는 게 진짜 리더십’이라고 했는데요. 권위적인 리더십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제가 바로 산증인이에요. 그런데 특히 이준익 감독의 경우는 그 반대예요. 이분은 현장에서 절대 부정적인 용어를 쓰지 않아요. 안 된다, 왜 안 되느냐, 왜 그것밖에 못하느냐, 이런 말을 안 하고 화도 안 내요. 영화 현장은 돌발변수가 많은 곳이니까 그럴 법도 한데요.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걸 어떻게 할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니까 일단 동료의식, 연대의식이 생기는 거죠. 저 사람은 우리를 통솔하고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저절로 받게 되고 자발적인 협조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인터뷰 과정에서 들은 말 중에 오래도록 남는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면 더 들려주세요.

윤제균 감독과 인터뷰할 때였는데요. ‘감독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말을 했어요. 이병헌 감독도 마찬가지였고요. 감독은 자기의 톤을 유지해나가는 조율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스태프와 배우로부터 도움을 얻어야 하는 입장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부리는 입장이 아니라는 거죠. 최동훈 감독은 감독 자리에서 마이크로 지시를 해도 되지만 마이크를 내려놓고 배우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서 배우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기를 계속 했어요. 본인이 실수를 했으면 바로 인정을 하고요.


실수를 곧장 인정하는 것, 많이 못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기도 해요.

조직 내에서 하급자만 실수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급자도 실수한단 말이에요. 괜히 창피하니까 인정하지 않고, 대충 덮으려고 하고, 누가 지적하면 면피하려고만 하는데요.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인정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얘기하면 좀 다르겠죠. 최동훈 감독의 소통은 솔직함의 소통이고요. 윤제균 감독은 역지사지의 소통이에요. 이준익 감독은 만사가 인사라는 거고요. 스태프고 배우고 캐스팅하는 순간 디렉션은 끝났다는 거죠. 그들이 감독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해오기 때문에 믿고 맡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흥행하는 영화들의 비밀

영화 산업 전반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 계기가 있었나요?

YTN 기자 시절, 시간이 지날수록 신나지가 않았어요. 불행하더라고요. 그러던 때 <FILM2.0>이 창간되면서 옮기게 됐어요. 전문성에 대한 갈증도 있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영화 평론을 대단히 유려한 어휘를 동원해 잘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죠. 방송 기자 하다가 갑자가 영화 평론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영화 산업, 흥행, 박스오피스 쪽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죠. 그게 다른 평론가에 비해 산업 흐름이라든가 흥행이라는 현상에 대해 조금 더 천착해서 바라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봐야겠죠.

영화 시장, 관객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하고 요구도 달라지잖아요. 그 요구에 대응하지 못해 실패하는 영화도 종종 보게 되는데요. 최근에 보고 있는 흥미로운 변화나 눈에 띄는 트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최근의 변화는 아닌데요. 사극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2003년 즈음 이준익 감독이 <황산벌>과 <왕의 남자>를 히트시킨 이후의 일이거든요. 그 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을 넘기면서 불을 지폈죠. 그전에는 사극이 거의 없었어요. 80년대에는 거의 에로 사극이었고요. 90년대, 한국 영화가 어느 정도 산업화되면서는 로맨틱코미디라든가 액션물 같은 현대물 쪽으로 많이 왔죠. 사극은 망하는 길로 생각했어요. 그러다 몇 편의 흥행작이 나오니까 시대극이 붐을 탄 거죠. 요즘 영화를 보면 40% 정도가 시대극이잖아요.

또 한 가지는 사회고발 드라마가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점인데요. <내부자들>, 최근에 <아수라>도 있고요. 예전에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에서 악이 주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였고 거기에 맞서는 주인공의 싸움을 보여줬죠. 반면 최근에는 악당이 상류층으로 올라갔어요. <내부자들>은 아예 정, 재계, 언론계의 결탁을 보여주고 있고요. <아수라>는 경찰과 시장, 검사가 모두 거기서 거기잖아요. 누가 더 착하고 악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벌이는 지옥도 같은 모습들을 한국 영화가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이것은 최근 감독들이 느끼는 대한민국 사회의 공기기도 할 거예요.

국내 인구를 생각하면 천만이란 숫자가 정말 엄청나기도 하고요. 워낙 트렌드에 민감하니까 흥행을 예측하거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큰 숙제기도 할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흥행이 잘 되는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를 잘 읽어내는 것 같아요. 결핍이란 보고 싶어 한다는 의미죠. 열망이라는 말과 이음동의어로 볼 수 있어요. 그건 시대에 대한 관심 없이는 읽어낼 수 없어요. 촉수를 항상 시대, 사회 현실에 대고 있어야 해요. 그런 영화가 흥행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가령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면요. 민족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접근하되 유치하지 않아야 하거든요. 이 영화는 유치하게 하고 있죠. 배타적 민족주의 같은 건데요. 타자를 설정해두고, 우리 민족은 억울했다는 식의, 영화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하는 그런 민족주의였거든요. 이것을 저는 ‘초딩적 민족주의’라고 해요. 민족주의라고 왜 안 되겠어요? 사람들 독도 문제 같은 데 관심 많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걸 억지로 갖다 붙인다는 거예요. 영화를 보면 고산자가 독도를 그리기 위해 독도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와요. 의도는 너무 뻔하죠. 설득력이 없는 거예요. 관객들을 계몽하려는 영화는 안 되는데요. 계몽하려는 감독 자체가 계몽이 안 됐기 때문이에요. 계몽된 감독이라면 그런 식으로 계몽하려고 하지 않죠. 당대 관객과의 공감 능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예요. 낡아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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