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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 “모든 사람이 일상의 다정한 전사가 되었으면”

이것이 내 마지막 사회적 역할이다, 생각할 만큼 아주 본질적인 거였어요.
채널예스 작성일자2018.10.29. | 7,354  view

식수 부족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 한 디자이너가 큰 공(드럼통) 모양의 물통을 만들어 사용하게 했다. 양동이에 물 길어 오다가 절반을 쏟았던 아이들은 공 모양의 통 덕분에 공놀이를 하듯 통을 굴리며, 동시에 물을 하나도 쏟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 통에 물을 저장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일상적이고 간단한 기술로 삶을 바꿔놓는 이 적정기술 사례는 어느 날 정신과 의사 정혜신에게 “화선지 위의 먹물처럼”(13쪽) 스몄다. 전문가들의 심리학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적정심리학’이 필요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이번 책이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당신이 옳다』 에 담은 정혜신의 30년 치유 활동 경험은 공 모양의 물통처럼 우리들 스스로가 치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실전 적정심리학이다.

“지금이 평화시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길을 걸어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눈물을 갑자기 뚝뚝 흘릴 수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일상이에요.”라고 말하는 정혜신. 트라우마 현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꾸준히 만나온 그는 ‘심리적 CPR’이라고 부를 만한 질문 하나,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는지 목격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한 ‘다정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존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충분한 공감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정혜신은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있으면서도 낌새조차 내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스러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라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심장 충격기 같은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간단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이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진 성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실화처럼 심리적 CPR 또한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은 꼭 배워야 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살리게 된다.(58쪽)

나한테는 이게 책이 아니에요

이번 책에 대한 작가님의 남다른 마음이 유독 크게 느껴졌어요. 책 나오고, 어떠세요?

전에도 책을 내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쓸 때 막 몰입을 하다 책이 나올 때쯤 되면 나는 멀리에 있는 느낌이잖아요. 그랬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인터뷰도, 북토크도 하겠다고 했어요. ‘심리적 CPR’워크샵도 하고 싶다고 했죠. 왜냐하면 그것을 하려고,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책을 쓴 거니까요. 우리 사회는 전문가를 만나기도 전에 일상에서 소리 없이 쓰러져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그런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 책에서 ‘이렇게 하면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라는 말을 막 얘기하고 싶었고요. 그 이야기를 할 도구가 책이었던 거예요. 말하자면 나한테는 이게 책이 아니에요. 이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면 그들이 마구 자기 일상에 들어가 다정한 전사가 되었으면 했고요. 이것이 내 마지막 사회적 역할이다, 생각할 만큼 아주 본질적인 거였어요.

방금 말씀하신 다정한 ‘전사’라는 표현도 그렇고요. 책 앞부분에 실린 ‘읽는 이에게’라는 글에서 이명수 작가님이 표현한 “고통의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온몸으로 그것을 감당하며 전진해야 하는 최전방 치유자”라는 말들이 결코 은유적으로만 들리지 않았어요. 이런 표현을 써야 했던 이유를 직접 듣고 싶어요.

저는 지금이 평화시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길을 걸어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눈물을 갑자기 뚝뚝 흘릴 수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일상이에요. 아닌 듯 살지만 실제 내면은 그렇지 않다는 걸 저는 너무 잘 알죠. 물론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이성복 시인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걸 계속 감지해왔으니까 다급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심지어 이걸 트라우마 현장에서만 느낀 것이 아니라 곁에서도 느끼거든요. 내 후배, 내 친구, 내 조카, 내 지인, 이런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내면이 이런 거죠.

그래서 심리적 CPR이라는 표현을 쓰신 거군요.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요.

심리적 CPR이 필요한 상황이 우리 일상 속에서 계속 벌어지거든요. 삼시세끼 끼니를 먹듯이 찾아와요. 어떻게 이럴 때마다 상담가를 찾아가겠어요. 그럴 수 없잖아요. 우리 삶이라는 것, 일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곁에 있는 모두가 다정한 전사가 되어야죠.

“우울은 삶의 보편적 바탕색”(83쪽)이라고도 하셨죠. 그렇다고 한다면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적정 기술, 적정 심리학에 관한 것이 더 많이 이야기 되어야 했을 텐데요.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전문가와 상의하세요”가 나오잖아요. 하지만 우리 마음이 어렵거나 어떤 갈등이 있을 때 전문가를 찾아서 어떤 도움을 받았었는지를 하나씩 성찰하고, 복기해볼 필요가 있어요. 진짜 도움이 되는 도움이 무엇인지, 그것의 본질이 뭔지 잘 따져봐야 해요.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네, 깨달을 수도 있거든요. 집밥처럼 말이죠. 맛은 셰프의 음식보다 덜할 수 있지만 집밥만 잘 먹을 수 있다면 평생 셰프의 음식 안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진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도움이란 무엇인가, 그 실체가 뭔가, 이걸 알아야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일상의 회복이나 일상적 교감에 집중하지 않고 전문가적 치유에만 기대려는 행위, 그게 일상의 외주화다.(중략) 일상의 외주화로 인한 결과는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어 내 삶의 고통과 외로움이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진단 영역으로 한계가 지어지는 순간 나의 존재 자체는 다시 소외되고 우울증 환자 일반으로 대상화되기 쉽다. 고통으로 피폐해졌을 때 사람은 무엇보다 정서적 공급이 시급한데, 그런 순간에 결정적으로 정서적 소외가 일어나는 것이다.(81쪽)

그렇다면 이때 필요한 ‘적정심리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CPR이라는 게 어린 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단순한데 결정적인 순간에 성인의 목숨도 구하죠. 단순하지만 목숨을 구할 정도의 결정적인 의학 지식이 다 집약되어 있는 건데요. 20년 전만 해도 사람이 쓰러지면 아무도 손쓰지 않고 그냥 들것에 실어 보냈거든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의학자들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연구하고, 업데이트해서 최종적으로 만든 것이 CPR이에요. 파괴력이 있는 근본적인 동시에 단순한 것인데요. 심리적 CPR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며 발견한 지점인 거죠.

그 지점이라는 것은 ‘존재를 확인 받는 것’이고요.

존재의 핵심까지 들어가 그 지점에 집중하고 그 지점에 공감을 퍼부으면 목숨을 구한다는 거예요. 반드시 반응해요. 그 존재에 들어가는 과정과 과녁에 관한 이야기,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 등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한 것이 결국은 그 한 지점을 들어가기 위함이 아닐까 해요.

이를 테면 영혼의 심장이겠군요. 존재를 온전히 확인하는 심리적 CPR이 자극하는 부분이란 말이에요.

그렇죠. 바로 그 부분만 자극을 하면 멈춘 심장이 뛰어서 온몸이 살아나듯 사람이 살 수 있어요. 존재의 핵심, 그 존재 자체를 봐야 하는 거예요.

관련 책
당신이 옳다
당신이 옳다
저자
정혜신
발행일
2018.10.10
출판사
해냄출판사
가격
정가 15,800원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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