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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김태균 “조금 먼저 아팠던 거라고 생각해요”

먼지가 대단히 움직인다고 해서 크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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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암 판정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인생…, 이 더러운 자식…’이란 생각을 한 이후로 운명은 정말이지 창의적인 방법으로 꾸준히 저희 태클을 걸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운이 좋은 20대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해야 했어도 잘생김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6쪽)

김태균 저자가 혈액암에 걸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스물두 살이었다. 별다른 증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코피가 자주 났는데 원래 그런 사람도 있다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코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둔감한 후각 때문에 주변에서 먼저 알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가족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간 병원에서 혈액암 판정을 받고 1년간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다. 코 연골과 주변 세포가 모두 죽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다음 해 편입학원에 등록하던 날 재발 판정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는 일종의 싸움 일기다. 어떤 날에는 병과 싸우고, 어떤 날에는 자신과 싸운다. 시선과 싸우기도 하고, 내면의 고요함이나 외로움,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과 싸우기도 한다. 스물둘부터 시작한 싸움을 들여다보며 무심하게, 어쩌면 지나간 지금에서야 내뱉을 수 있는 문장 하나가 남았다. ‘잘생김은 이번 생에 포기한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이 문장에 담긴 의미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문득, 나는 무엇과 싸웠으며 싸움의 대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기억할 자료가 너무 없다

출간된 지 2주 정도 지났어요. 주변에선 어떤 반응이었나요?

의외라고들 해요. 주변에 출판한 작가가 있는 게 신기한 것 같아요.

원래 글을 쓰던 분일 거라고 추측했어요.

전혀 아니에요. 주변에서 좀 당황했어요. 평소 외향적인 편이었어요. 책 읽는 건 어릴 때부터 취미였는데, 그걸 자랑하듯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전혀 책과 관계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거예요. 독자로는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쓰는 건 병원에서 처음이었어요.

생각했던 감정이나 마음이 글로 잘 표현이 되던가요?

좋은 책을 많이 읽었던 것 때문에 힘들었어요. 쓰는 건 몰라도, 읽는 건 항상 수준 높은 작가의 글을 읽잖아요. (웃음) 그러다 보니 제가 쓰는 글이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다 문득 누가 나한테 대단한 작가의 수준을 기대하는 게 아니니까. 친한 친구랑 대화하듯이 쓰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쓰는 것도 자연스러워졌어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어요?

글을 올릴 때는 암 치료 자체는 끝난 상황이었고, 성형수술을 할 때였어요. 성형수술을 8차까지 했거든요. 투병하며 썼던 글을 그동안 올렸어요. 원래는 개인 출판을 해서 간직하려고 했어요. 알아보던 중에 친동생이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알려주면서 한번 올려보라는 거예요. 드러내서 활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고민했어요. 안 될 거로 생각하고 작가 신청을 했는데, 된 거예요. 책에 담긴 글을 쓴 시기는 암 투병 시작했을 때부터 2016년 정도까지인 것 같아요. 그때그때 생각나던 순간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썼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든 게 더 괴로웠다고 하셨어요. 마음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글을 쓰면서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이 해소됐는지 궁금해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힘들잖아요. 매일 아프다는 걸 이야기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도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생각 없이 썼던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매일 차올랐던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아팠던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하지는 않았나요?

아팠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나 아플 수 있는데 내가 좀 더 일찍 아팠던 거고, 글로 썼더니 사람들이 좋아해 줬다.’ 이 정도로 생각해요. 다만 사람들에게 보이는 글이니까 좀 덜 냉소적으로 쓰자고 생각했어요. 자칫 제 글을 본 사람들이 ‘암 별거 아니네.’같은 인식이 생겨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잖아요. 글을 올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주로 아픈 분들이나 상처받은 분들이 제 글을 읽고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나는 내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아픈 사람이 하는 이야기니까 저 때문에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주로 어떤 피드백이 오던가요?

투병 중인 분이 많았어요. 어떤 병을 앓고 있고, 얼마나 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힘을 받았다는 글이었죠. 그러다가 저랑 나이가 비슷한 분에게 메일이 오면, 그런 날은 힘들었어요.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지, 지금 어떤 상황일지 짐작이 가니까요. 그런 날은 멍하게 보냈어요. 브런치 할 때는 이따금 연락이 왔는데, 책을 낸 후에는 꾸준히 오는 것 같아요. 

초음파 검사를 받는 중, 불편한 부분은 없냐고 물어보는 간호사님께 “저… 배 속의 아기는 건강한가요?”라고 물었지만 웃어주지 않았다. 아…,병원 생활 중 베스트 5 안에 드는 상처로 남을 것 같아. (108쪽)

암 투병 전 김태균 저자의 모습.

2009년 카투사 복무 중에 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와 2011년에 재발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처음 암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는 와닿지 않았어요. 누구나 아플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아프구나. 그랬어요. 친구들이 문병 오면 ‘암이래.’ 했던 거 같아요.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로 생각했거든요.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좀 암담했어요.

주변에선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어땠는지 궁금했어요.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친한 친구 셋은 아무 생각 없었어요. 저랑 비슷했던 거죠. 암에 걸렸으니까 이제 이별 여행 가야겠다고 온천으로 이별 여행도 갔거든요. 어머니가 이별 여행이 뭐냐고 어이없어하시고요. 재발했을 때는 친구들도 다 바쁜 시기였어요. 군대 가기 직전인 친구도 있었고, 외국에 있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땐 친구들도 저도 좀 슬펐죠.

책을 읽으면서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암 환자의 이미지가 병실과 병원복 같은 것에 고정되어 있었어요. 아픈 사람에게도 입체적인 감정과 모습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누구에게 어떤 부분을 알려야겠다고 쓴 글은 아니었어요. 그냥 개인적인 치료 목적으로 썼던 것 같아요. 마음이 정말 힘든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도 그렇잖아요. 이야기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생각 없이 썼던 것 같아요. 매일 느끼는 감정을 따라갔어요. 그래서 글을 보면 슬픈 날에는 슬픈 글, 기쁜 날에는 기쁜 글을 썼어요. 계속 쓰다 보니까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평소에는 그렇게 자기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잖아요.

맞아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매일 누워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그때 들었던 감정 상태나 떠오르는 걸 핸드폰 메모장에 쓰고, 글로 풀었어요. 

병원에서 쓴 글인데도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만 담긴 게 아니라 상황을 객관화하고, 곳곳에 농담이 있어요.

처음 쓸 때는 모든 감정을 다 털어놓았죠. 그러다 브런치에 올릴 때는 감정을 절제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감정을 드러내는 글보다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읽는 사람이 감정을 느끼게끔 하고 싶었어요.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의 외모를 자신과 비교하며, 어쩐지 그의 비뚤어진 성격이 이해가 된다고 하셨어요. 치료를 받으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거나 관점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엔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을 그러려니 한다고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이든 각자 생각한 바대로 살겠구나.’ 하는 거예요. 굳이 이해한다기보단 저런 사람도 있다고 인정하게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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