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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박흥수 “시베리아 횡단열차,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전 구간을 여행하고 나면 ‘이제 안 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갔다 오고 나니까 횡단열차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아주 멀지 않은 시간대의 한국인들의 사연이 녹아 있으니까 계속 가고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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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박 19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베를린에서 막을 내린 여정이었다. 그는 줄곧 ‘인간이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걸음 내딛는 곳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사람들이 있었고 위대한 자연의 민낯과 만났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황무지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던졌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러했고, 억압받는 소수자를 위해 그러했다. 그 시간을 더듬으며 가슴이 텁텁해질 때쯤이면 그 크기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것들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길이란 무엇인지’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시베리아 시간여행』 은 철도 기관사 박흥수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기다. 2015년 8월부터 2016년 3월까지 <한겨레21>에 연재됐던 ‘박흥수 기관사의 유라시아 기차 횡단기’를 엮었다. “잊혀 가는 역사적 인물들을 되살리는 것은 후대를 사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라 말하는 저자는 독립운동가와 이주 한인들의 흔적을 되짚으며 뒤를 따라 걸었다. 희미해져 버린 그들의 삶은 우리를 오래지 않은 과거로 이끌었다가, 현재를 곱씹게 하고, 미래를 그리게 한다. 제목이 말해주듯 ‘시간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로 23년째 열차를 운행하고 있는 박흥수 저자는 첫 책 『철도의 눈물』 을 펴내며 철도 민영화 계획을 비판하고 철도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 바 있다.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이기도 한 그는 철도와 관련된 이슈가 있을 때마다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왔다. 두 번째 저서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에서는 철도의 역사를 통해 ‘근대’를 설명하며 ‘책 덕후’, ‘철도 덕후’의 면모를 드러냈다.

횡단열차,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2015년에 떠나신 여행이었죠?

네, 그해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

<한겨레21>에 연재하신 기간은 상당히 길었어요.

분량이 많아서 매주 연재할 수 없었고요. 2주에 한 번씩 연재했었어요.

이전에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셨었나요?

3박 4일간 맛보기로 갔다 온 적이 있었고요. 이 여행을 다녀온 후에 너무 좋아서,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다녀오기도 했어요. 같이 갈 사람을 찾아서 떠난 적도 있고, 노조에서 조합원들과 떠나는데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느냐고 해서 가기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갔다 온 게 여섯 번쯤 돼요.

책에 실린 여정에서는 전 구간을 여행하신 거죠?

네, 횡단열차의 전 구간을 간 건 그때 한 번이에요. 18박 19일 동안.

그 뒤에도 또 떠나신 이유는 뭔가요?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전 구간을 여행하고 나면 ‘이제 안 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갔다 오고 나니까 횡단열차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아주 멀지 않은 시간대의 한국인들의 사연이 녹아 있으니까 계속 가고 싶은 거죠. 횡단열차를 한 번 탔다고 해서 횡단열차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열차를 운전할 때도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 다르거든요. 그런 부분들까지 조금 더 넓게 보려고 하다 보니까 시간을 내서 가게 되는 거죠.

한동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시베리아 여행 이야기만 하셨다면서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같이 다녀온 친구들도 사람들만 만나면 시베리아 이야기를 한대요. 한 친구는 저한테 전화를 해서 ‘네가 애 망쳐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술만 마시면 여행 이야기를 한다고요.

요즘도 그러세요?

래퍼토리가 계속 바뀌는데, 요즘은 더 이야기하죠. 남북이 조금 화해 모드가 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원래는 서울역이 국제역이었거든요. 국제선 표를 파는 창구가 있어서, 거기에서 베이징 가는 표를 사고 그랬어요. 지금도 경의선만 연결하면, 아침 일찍 서울에서 떠나서 저녁쯤 베이징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철로는 아니지만, 육로 경의선으로 북한 방문단이 온다고 해요. 서울역에서는 KTX를 타고요.

그래서 요즘에 제가 점쟁이 소리를 듣고 있어요(웃음). 1월 초에 남북 직통전화가 연결됐다는 뉴스를 보고 <프레시안>에 기고를 했었거든요. 북한 대표단이 서울역에서 평창 가는 KTX를 타는 상상을 해본다고요. 그리고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썼었는데, 일이 급진전되더니 실현이 됐어요.

감회가 남다르시죠?

네. <프레시안>이 저한테 북한과 내통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제가 말한 대로 되고 있다고요.

경의선 철로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으신 것 같던데요?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때는 임진강역이나 도라산역도 없을 때여서 선로를 놔야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는 완전히 중무장이라서 도로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선로가 놓인 끝 지점에 자재를 갖다 놓고 조금씩 연장시키는 중이었어요. 그때 자재를 실은 화물열차를 몰고 갔었죠. 어느 날은 임진강을 넘어가는데 ‘아, 이게 경의선이었지. 신의주랑 만주까지 갔던 노선이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장동료 두 분이 여행에 동행하셨어요.

네. 한 명은 지금 해고 생활을 하고 있어요. 철도민영화 반대 관련한 파업에 참여했다가 해고당해서... 아마 올해 복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죠.

해고자가 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가장 오래된 분들은 15년 됐어요. 15년 전에 해고된 제 친구 기고나사는 가끔 기관차 운행하는 꿈을 꾼대요. 가슴이 너무 아프죠. 그리고 여행을 같이 다녀온 이만호라는 친구는 9년 정도 됐어요. 올해 복직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부풀어 있어요.

그동안 너무 힘드셨을 텐데, 견뎌낸 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황폐해지고, 조울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이 세계에서 바깥으로 튕겨져 나간 삶인 거잖아요. 한 때는 정말 당당한 철도노동자였는데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수도 없고, 그런 삶이죠. 그래서 쌍용차라든지 다른 해고노동자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해고 노동자 치유 프로젝트’로 친구들을 시베리아에 데려갔는데, 치유가 많이 됐어요. 120% 치유된 것 같아요.

치유에 도움이 된 건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세계라는 창을 보면서 다시 내가 존재하는 세계를 보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땅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다른 곳에서는 이상한 것일 수도 있고, 여기에서는 굉장히 이상하고 문제가 되는 것들이 다른 세계의 창으로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다른 세계를 본다는 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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