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우, 이운재 다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라고 봐도 무방한 레전드 골키퍼
54년 스위스 월드컵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홍덕영 옹
당시 전쟁 직후라 여권 발급이 까다로워 스위스를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이동했다. 1진 선수들 11명만 이동을 했는데 스위스에 도착한 시각은 1차전인 헝가리전 이틀 전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미군 수송기를 얻어타고 도쿄에서 유럽으로 가야했다. 근데 티켓이 2장 부족했다. 그 때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온 영국인 부부가 사정을 듣고 "월드컵인데 못가는게 말이 되냐"며 티켓을 양보해 가까스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해서 만난 1차전 상대 헝가리는 당대 최고의 팀이었다
그 유명한 푸스카스상의 주인공 푸스카스가 버티고 있는 팀이었다.
이 경기에서 헝가리는 우리에게 100개 이상의 유효슈팅을 기록했다. 당시 기록이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이라 100개 그보다도 훨씬 많을 수 있다.
대표팀은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장거리 이동을 한 탓에 쥐가 났고 당시 교체규정도 없어서 4명이 나가고 7명만이 풀타임을 기록했다. 헝가리 당시 세베슈 감독은 한국의 용맹함을 칭찬했다.
2차전이 되서야 2진 선수들이 도착해서 진행했지만 0대7로 패배했다. 한국팀의 이런 내막을 알게 된 유럽 축구팬들은 갑자기 한국팀 선수들의 숙소에 찾아와 여러 옷들과 먹을 것들, 그리고 돈을 주고 돌아갔다고 한다.
특히나 헝가리전에서 선방쇼를 펼친 홍덕영 골키퍼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현지인들은 사인까지했다고 ㄷㄷㄷ
홍덕영 선수는 푸스카스의 슛이 매우 강해 소리가 날 정도였고 맞으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다고 회고록에 남긴 바 있다.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은 월드컵의 경기 입장료의 일정액을 출전국에게 분배하는 것 조차 몰라 스위스월드컵 조직위가 대한민국 선수단이 묵었던 호텔로 경기 배당금을 받아가라고 통보했지만 선수단은 귀국을 서둘러서 이미 스위스를 떠난 뒤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처럼 그래도 시스템이 갖춰진 상황이 아닌 전쟁 직후의 시기에 저런 정신력과
활약을 보여주셨던 고 홍덕영 옹
저 당시 월드컵에서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마저 7대1로 발라버린 헝가리였기에
우리 대표팀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는 박수받아 마땅했다.
우리 축구의 근본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 : 에펨코[북드리아노]
움짤 – 온라인 커뮤니티